음악과 시장

/ 나도원 음악평론가,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준비위원장, 노동당 문화예술위원장

대중성을 다시 생각한다

종종 찾는 음악카페에서 외국인 청년들이 노래를 신청했다. 첫 번째 신청곡인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s>가 흘러나올 때 이건 한국으로 치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이고 뒤따라 이어진 곡의 주인공이 오프스프링Offspring이었을 때엔 이건 한국의 ‘노 브레인’이라고 일행에게 속삭이자 그럴 듯했는지 웃었다. (그린데이Green Day는 한국의 ‘크라잉 넛’?)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 흐를 땐 한국의 ‘산울림’이라며 농담을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송골매’는 한국의 딥 퍼플Deep Purple쯤 되려나? 그만큼 널리 알려진 유행가를 듣는 외국인 청년들의 취향이 고국에선 평범하고 무난한 수준이라는 뜻의 장난이었다.그런데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그다지 평범하지도 무난하지도 않게 된다.

순수음악 혹은 전통음악과 구분하려 사용되었으니 다분히 차별의 용어인 대중음악을 해외의 팝pop으로 대체해 볼 수 있다. 단순히 ‘popular music’에서 나온 말로 쓸 경우에 대중성은 대중음악의 필요충분조건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한국과 일본의 역사 및 문화의 차이가 뉘앙스의 차이를 만들어 낸 ‘풍속’이란 말처럼 같은 어휘가 다른 뜻을 갖게 된 예는 많다. 카우보이가 단지 목동이란 의미가 아니듯이 어원과 다른 의미가 통용되고 고착되는 사례도 많다. 예전에 ‘문학의 밤’이라 통칭한 교회 학생회의 정기 행사는 음악과 연극을 포괄한 문화 이벤트였다. 영미의 가치를 담아 온 팝이 오늘날 일정한 장르 혹은 스타일로 통용되는 것처럼, 대중음악이란 팻말이 붙은 방 안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니 대중성 강박의 이유는 어원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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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_음악과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