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좌파』와 이 시대의 좌파

작년에 탄생한 월간 『좌파』가 2014년 1월 어느덧 통권 9호를 낸다. 창간준비호까지 합친다면 열 권, 작년 4월부터 매월 빠짐없이 한 권씩 『좌파』가 등장했다. 『좌파』를 발행하면서 우리는 좌파를 “신자유주의의 즉각적인 종식을 이 시기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삼는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에는 이 시대가 위기의 시대라는 당대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제 위기, 민주주의 위기, 지구생태계 위기라는 복합적인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신자유주의 종식을 목표로 하는 담론 진영을 구성하고자 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종식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를 중심으로 하는 담론 전선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전선 설정을 넘어서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했다. 즉 우리는 『좌파』를 통해 좌파운동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했다.

『좌파』라는 제호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낡은 좌파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가도 우리가 어떤 고정적인 이론적 기준에 매달려 낡은 좌파는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규정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현실의 투쟁에서 뒤로 밀려 패퇴한 좌파의 형이상학적 태도를 경계했을 따름이다. 좌파란 정치적 정체성도 아니고 철학적 입장도 아니며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 구체적인 진영의 문제일 뿐이다. 시대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 없이 반자본주의적 근본 태도만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코 좌파가 아니라고 우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감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대의 좌파는 『좌파』라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좌파』가 제출하는 현실의 쟁점과 이론적 내용들이 격렬히 논쟁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부터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또한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기초에 관한 탐구를 경유하여 그러한 논의가 더욱 풍부해지는 경로를 원했다. 우리에게 출발점은 언제나 현실이어야 했다. 물론 동일한 시점, 동일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과제는 주류 담론이 주목하는 문제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좌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기본소득, 불안정노동사회 해소, 또는 생태적 전환의 문제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문제가 이 시대의 중심 문제이며, 오직 이에 대한 대안을 가다듬고 실천적 주체를 조직할 때에만 시대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표류 중인 국정원 대선 개입의 뒤처리, 또는 장성택 처형 등으로 가려졌지만 지난 12월에도 우리가 주목하는 문제들은 이미 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거나 시한폭탄처럼 터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제일자리 확대를 연동시키려는 박근혜 노동로드맵, 밀양 송전탑 문제 등은 근본적 수준에서 한국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대는 분명 민주주의 위기 시대이며 전쟁 위기의 시대이지만 그러한 문제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나 한반도 문제보다 결코 가벼운 문제이거나 덜 중요한 문제라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좌파』가 주목한 문제들이 이 시대의 중심 문제라고 생각한다. 『좌파』를 내면서 우리는 이 잡지가 여러 갈래의 비판적 흐름과 해방적 운동들이 한곳으로 흘러드는 저수지가 되기를 원했고, 또한 마찬가지로 언젠가 이 잡지가 좌파라는 큰 흐름이 구체적인 과제에 따라 분화되어 흘러나가는 수원지水源池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의 긴급한 문제로서 기존의 진보운동을 좌파운동으로 전환하고 민주노총의 혁신을 통해 좌파노총을 건설하는 산파가 되고자 했다.

열 권의 잡지를 통해 이러한 과제가 충분히 수행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좌파』가 주목한 새로운 실천의 흐름들은 몇 달 전에 출범한 알바노조처럼 이제 막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노동자운동의 전환은 민주노조운동 상층기구의 혁신과 맞물린 국면을 지나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대중적 힘을 키우며 내실을 기해야 할 국면에 들어섰다. 정치운동의 좌파적 전환은 2013년에는 가시적 성과가 없었고, 금융수탈체제와 불안정노동사회 종식과 생태적 전환을 하나의 상호연동된 목표로 하는 포괄적인 사회운동의 구성은 아직 기획 중일뿐이다. 전환의 대안을 준비하는 이론적 과제 역시 방향을 확정한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 풍부하고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올해의 과제는 이처럼 포괄적인 문제들이 『좌파』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해결의 열쇠를 얻어가며 또한 『좌파』가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과정에 일조하는 데 놓여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새해에는 『좌파』가 논쟁의 장이자 논쟁의 한 축이 되기를 희망한다.『좌파』의 제안들이 독자들에게 해당 문제를 둘러싼 지형과 구도 속에서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약속과 함께 『좌파』 편집위원회는 독자 제현께 힘찬 새 출발의 새해 인사를 올린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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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9호(2014년 1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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