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새로 보는 봄을 위하여

올 겨울이 예년보다 덜 춥긴 했지만 계절이 바뀌는 지금은 그래도 겨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또한 언제나 그런 것처럼 빨리 봄을 맞이하고 싶다. 물론 봄은 따뜻함이 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하는 세 모녀의 사연이 옛일이 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그 자리로 돌아가고, 파렴치하게 조작된 증거가 사실로 둔갑하거나 편향에 따른 심증으로 판결을 내리는 법정이 사라지고, ‘그대로 살기’ 원하는 수많은 밀양과 강정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철도나 의료 등등이 탐욕스러운 이윤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되는 날이 오고,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삶의 고비마다 오직 인간의 내적 번뇌 이외에는 다른 고통과 마주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그 따뜻함이 오기를 바라는 건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따뜻한 날은 그저 오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봄은 보는 것이고, 또한 새로 보는 것이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좌파』는 낡은 ‘진보’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정치적인’ 태도로 읽어내고, 급진적이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제출하자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로서 ‘좌파’라는 자리를 자임하였다. 그것은 우선 도그마를 벗어나는 태도를 말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구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물론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잘 했는지는 시간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런 『좌파』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의 지난 1년은 단순히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말로 묘사하거나 ‘공안 통치’라는 낡은 항의를 불러내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황은 설명을 요구하지 즉물적 반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후퇴라는 말과 ‘데자뷰’ 같은 것은 정세를 무시하고 불성실과 무책임을 낳을 수 있다. 물론 이미 지난 정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물리적, 초법적 통치의 양상이 이번 정권 들어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 상황을 일종의 예외 상태로 보고자 한다. 이 예외 상태는 특정한 방향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혹은 추구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시도는 지금의 축적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성장률이나 고용률, 내수 소비 같은 직접적인 거시경제 지표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회적 ‘병리’ 현상은 이를 징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할 때 우리는 후퇴를 저지하거나 데자뷰를 폭로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 우리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삶이 있기 때문이며, 그 삶이 살아 움직일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신자유주의 종식기를 ‘왼쪽으로’ 넘어서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기본소득 지급, 조세체계 개혁 등을 추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제출했다. 또한 ‘공안 통치’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될 뿐만 아니라 ‘급변 사태’ 속에서 민중의 삶을 날려 버릴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평화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1년만큼 이런 우리의 대안이 도드라질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강조한 바 있지만, 대안이 대안 자체로 전진하거나 승리하지는 않는다. 대안이 사람들을 적절하게 호명할 때 전진도 후퇴도, 승리도 패배도 가능하며, 이를 위해 ‘최초의 움직임’이 요구된다. 이번 호에 간단한 리뷰가 실렸지만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의 출범을 우리는 그런 움직임으로 본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와 제안을 통해 대안의 동심원이 커지기를 기대한다.

 

목차에 나와 있는 글의 제목과 필자들을 통해 내용을 짐작할 수 있기에, 여느 때처럼 글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또 하나의 약속≫의 실제 주인공인 황상기 님, 바다 건너에서 생생한 분노를 전해 준 사코다 히데후미 님, 꽁트라는 형식으로 기본소득의 정신을 묘사해 준 최영기 님께 감사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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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1호(2014년 3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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