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 항쟁, 학살 그리고 그 후 66년
/ 양정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제주4·3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접근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첫 번째는 남조선로동당(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 4월 3일 새벽을 기해 무장봉기를 일으킨 단계이다. 두 번째는 1948년 10월 이후1949년 봄까지 유격대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이 자행된 단계이다. 마지막은 제주 4·3에 대한 평가의 단계이다. 성격규정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세 단계를 중심으로 4·3항쟁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

항쟁-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4·3항쟁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조직 보위, 단독선거 저지를 내걸고 경찰서, 선거기관, 관련 인물 등을 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도당이 육지와 연계 없이 독단적으로 무장봉기를 결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1947년에 있었던 3·1시위와 3·10총파업, 그리고 인민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 남로당 등 좌파에 대한 제주도민의 우호적인 인식 등이 배경으로 언급된다. 이런 것들이 봉기의 배경인 것은 맞지만,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48년 1월 22일에 있었던 남로당 제주도당 조직이 노출된 사건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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