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난국 속에서,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이 역동적인 사회라는 말은 그리 사실이 아닌 듯하다. 아니역동적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표면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잔물결에 불과하며 심층은 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점에서 난국亂局이다.

대통령의 국가개조 발언부터 ‘도대체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모두가 파국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인식은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하다. 지난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고’와 그 이후 사태를 맑은 눈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능, 부패, 탐욕에서 시작해서 기만과 회피까지 이어지는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두들겨도 대답 없는 성문처럼 버티고 선 어떤 벽(물론 이것은 은유만은 아니다) 앞에서 사람들은 그만큼 좌절하고, 그만큼 냉소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를 왼쪽에서 혹은 ‘진보’라는 깃발 아래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분명 좀 더 나은 공감 능력,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용기, 벽과 부딪히는 전투성 등은 여전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행동Handeln은 전망이 없을 때 도리어 더 큰 좌절 속에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공허한 관성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니 기꺼운 마음으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원점은 독트린이 아니라 태도다. 혹은 브레히트적인 의미에서 자세Verhalten를 말한다.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선언하거나 자본주의가 유죄라고 선고하는 것은 별다른 현실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두고 보자’는 말처럼 의미 없이 흩어져 버린다. 그 반대편에서 외쳐지는 ‘열심히 싸우자’라는 구호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다수가 그것을 실제적인 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 사람의 삶이 우리 실험의 대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가 우리 논리학의 연습 문제인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을 예비하고 그것을 필요할 때 적절하게 구사할 능력을 보유하는 상태로서의 적절한 자세다.

 

이 자세는 당연하게도 시대 인식과 현실 인식에서 나온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이 위기는 하루아침에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의 한 국면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방책을 지속하려는 시도만큼이나 자본주의 황금기의 복지국가를 목표로 내세우는 전략도 시대착오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복지국가를 낳고 지속시켰던 버팀목인 산업노동자계급은 신자유주의적 변형 속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끝으로 생태적 한계도 물질적 유효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의 성장 체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좌파의 출현을 요구했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기본소득 도입, 연대경제의 추구 등을 통해, 분배를 늘리는 데 골몰하는 게 아니라 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고, 노동이 아니라 활동의 시간을 늘리는 한편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여 선순환의 생태적 경제, 생태적 사회를 도모하고, 국가의 목표가 국익이라는 이름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자유와 발전이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내는 것 등등,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과제라고 보고 이를 정치적 목표로 삼는 좌파의 출현 말이다.

물론 이런 선언이 좌파와 좌파의 정치를 직접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를 열정적으로 추구할 자기의식적인 정치세력의 형성부터 자기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당대의 보편적인 관심을 위해 싸우는 사회세력의 구성까지, 이른바 주체의 정립과 복무가 필요하다. 이런 불일치 상태가 이른바 위기 혹은 답답하게도 난국이라는 부르는 상황을 초래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로 표출된 파국과 그에 이어지는 난국을 분노와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그것은 세상을 향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두 가지 소식이 있다. 하나는 2016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의 오랜 약속인 임원 직선제가 멀지 않아 실시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위한 우리의 구상이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는 계기가 될 것이며, 후자는 말로만의 혁신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조직, 전략,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입장과 상관없이, 바라보는 사람이건 관계된 사람이건, 열린 자세로 접근했으면 한다.

 

끝으로 이번 호부터 『좌파』 편집위원이자 음악평론가인 나도원님이 자신의 주변 삶을 관찰하고 거기에 끼어든 경험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독자들의 관심과 비판을 부탁드린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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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6호(2014년 8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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