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꽤나 어려운 패러다임 전환

파파 프란치스코의 방문은 뭔가 단단히 막혀 있는 한국 사회가 환기구를 만난 느낌을 주게 했다. 메시지가 아니라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만나고 소탈하게 대화하는 모습 자체로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특징이 된 불통과 대조되어 특히 그런 것으로 보인다. 새삼스럽게 대중민주주의에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역설한 막스 베버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쨌거나 한국 정치가 그 원리로 삼고 있는 대의제민주주의의 기준으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사람들은 살아야 하기에 이를 뚫고 나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몇 년전 영도의 한진중공업에서 시작된 ‘희망버스’는 밀양을 거쳐 이제 구미의 스타케미칼로 이어졌으며, ‘유민 아빠’의 단식은 40일이 넘었다. 위대한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은 40일의 단식으로 깨달음을 얻었건만 이 땅의 지도자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도 공감과 연대의 느낌이 묻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군대 내 폭행 사건(과 언제나 그렇듯이 이를 은폐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국가 자체를 도마 위에 오르게 했다. 그렇다면 왜 국가가 문제인가? 세월호 사건이든 군대 내 폭력이든 주류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은 이런 사건을 정상적인 국가의 작동 불능 상태로 본다. 그나마 개인들의 일탈로 보지 않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한 번도 ‘정상적으로’ 작동한 적이 없는 국가를 가지고 정상/비정상을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정상은 이상理想을 잘못 쓴 말인가?

사회과학에서 쓰는 ‘조작화’의 방법이나 ‘추상화’의 방법을 통해 나온 어떤 모델이나 이념형은 사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현실을 인식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이 근대화론이나 진보주의와 결합할 경우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결여로만 파악된다. 결여가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추동하는 힘이라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반대로 결여에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마취 효과도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은 우선 그동안 우리가 말했던 몇 가지 위기를 말한다. 현재 지구 환경은 지금까지의 산업적 생산방식과 소비 양태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생태적 위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그 어떤 말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스스로도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신자유주의의 위기, 끝으로 처음부터 잘못되었건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러했건 간에 이른바 진보의 담론과 정치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아니라 위기와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라는 성찰이 담긴 진보의 위기 등이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주저와 외면이라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위기다. 주저와 외면의 주된 원인으로 흔히 ‘기득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에서건 기득권이 있으며, 이는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커다란 사회 내에 있는 작은 주변부 집단 내에서도 안팎의 기득권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저 기득권이라는 말을 원한의 감정을 담아 정치적 공세로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습속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습속habit은 서식지habitat나 주거지habitation와 같이 가지다habeo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각자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 사는지를 성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붙들고 있을 것인지, 그곳에서 계속 살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애써 살펴야 한다. 적대감이 아니라 배우려는 자세로.

눈이 맑은 독자라면 당연히 알아차렸겠지만 우리 지면은 1년 넘게 위기에 대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고찰해 왔다. 최근에는 위기를 설파하는 자에 머물지 않고 구성의 방식과 행동의 방향에 대해 구상하는 건축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특정 정책이 아니라 이행의 패러다임이자 다수의 의제로 만들려고 하는 기본소득공동행동(준), 2016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유치 등의 활동,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전략노조’에 관한 논의 및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노력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이른바 생태주의를 더 급진적으로, 더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참여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습속을 버리고 기존의 거주지를 떠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것이 꽤나 어려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습속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아니 그러기 위해서 더욱 현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호부터 “문학이 죽은 시대”에도 여전히 말과 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작가 집단의 르포를 싣는다. 어려운 사정에도 그리 크지 않은 지면에 글을 보내 준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장기 투쟁의 상징이자 신자유주의적 노동형태 가운데 가장 극악한 것이라 할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투쟁의 거점인 재능지부의 유명자 전 지부장이 글을 보내왔다. 이제는 꽤 알려져 있지만 재능지부는 사측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싸움의 방향, 강도, 절차 등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도’ 그리고 민주노총이라는 상위조직과도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전 조합원의 글이 사태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지면은 연단이기도 하지만 포럼이기도 하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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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7호(2014년 9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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