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우리라고 언제나 부당한 폭력의 피해자일까?

박정훈 수감 중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맞을 만하니깐 맞았겠지.” 윤 일병 사건이 신문과 뉴스에 나왔을 때 같이 생활하는 감방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충격도 있었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폭력을 위한 대의와 명분

먼저 일상적 폭력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군 복무를 수행한 40, 50대의 개인적 경험과 그 어려움을 극복한 자부심이 존재했다. 고난을 이겨낸 승리자인 자신과 패배자인 윤 일병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승리감은 군대에서 탈락한 예외적인 인물들이 등장할 때에나 드러낼 수 있는 소극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폭력을 자랑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행위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대의와 명분들이 동원된다. 나라를 지킨다는 대의는 가장 명분이 있는 이유이지만, 군대 내에서 폭력이 일어나고 후임병들을 구타하고 괴롭히는 이유로 삼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가까운 대의인 ‘사람 만든다’는 이유, ‘진짜 사나이’라는 이정표가 제시된다. 이것은 사람의 구체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사람’ 또는 ‘사나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타인이 개입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사람’과 ‘사나이’의 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상 속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규정한다. 요컨대 이유 없는 폭력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역시 망가뜨리기 때문에 명분을 요청하게 되고,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폭력은 불려나온 명분과 대의의 이름으로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훈육으로 전환되게 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갑자기 ‘교육이 문제다’라고 외쳐도, 김무성이 국방장관을 상대로 ‘장관은 자식도 없냐?’라고 호통 치는 것이다. 군대는 부모가 잠시 자신의 남자아이들을 맡기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다리는 훈육기관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김무성의 위치다. 그는 책임자가 아닌 사태의 구원자 위치에 있다. 이것은 군대라는 곳의 본질이 전도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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