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자기 비하가 아니라 전망을!

나비 효과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떠올리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및 국정원의 선거 개입 재판은 “정치 개입은 인정하나 선거 개입은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일단락되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과정 자체가 훼손되고 책임 정치가 실종되었는데도 커다란 움직임은 없다. 도리어 ‘폭식 시위’라는 철면피하면서도 자기 비하적인 ‘정치’행위만이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은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으니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는 점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다만 한 가지, 새로운 윤리는 관념의 변화로만 생겨나지 않으며 적절한 물질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확인해 두자.

자기 비하적인 정치적 양상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만들어진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다. 권력투쟁을 벌이는 것이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적절한 포지션도 방향도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하나의 정치세력이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강력한 구심점 혹은 지도력의 부재 탓이라고 하는데, 죽은 이의 무덤에서 오고가는 말을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디아도코이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치 혹은 좌파정치를 한다는 입장에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장기지속 중인 ‘진보 재편’ 논의도 속을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바 없다. 최소한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어 2012년 중반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 및 정의당 창당으로 일단락된 당시 ‘진보대연합’ 논의와 실천에 대해 평가는 고사하고 기억조차 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슬며시 고개를 내민 진보 재편 논의를 보면 백치병과 과대망상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언제나 근거는 ‘이대로는 안 된다’ 혹은 ‘우리만으로는 안 된다’다. 가장 노골적인 자기 비하!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지금의 어떤 세력과 함께하거나 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다. 의지의 행위인 정치가 과거 및 현재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래를 향한 행위라 할 때, 전망의 공유 없는 재편은 반복을 낳을 뿐이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소극笑劇으로 끝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망을 노동시간 단축 및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한 ‘노동’사회의 재구성, 생태사회주의로 전환하는 데 필요하거나 교차하는 사회적 전환, 노동조합운동 전략의 재구성 등에서 찾고자 한다. 물론 이런 전망 혹은 프로젝트가 정치적으로 현실에서 성공할지, 그러기 위해 사람과 집단이 어떻게 모여야 하는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정치는 군사작전이나 치안 활동과 같은 완벽한 도상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자. 새로운 인식이 시차視差에서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도 시차時差에서 구성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그 간극에 놓이는 고통과 두려움을 견디는 의지다.

 

이번 호에는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와 관련하여 우리의 전망의 일단을 내놓는다. 「기획: ‘우리’의 정치를 위하여」에서 정진우와 금민은 각각 낡은 (진보)정치가 터 잡고 있던 계급과 정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주체의 구성 문제와 위기 시대를 넘어서는 프로그램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저 세력 재편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토론을 제기한다. 물론 우리의 전망은 관념의 조합이나 사고실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응시와 참여 속에서도 그 근거를 끌어온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통신비정규직, 그리고 그냥 ‘알바’ 등은 우리 프로그램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한편 ‘구체적 보편성’의 추구라는 무거운 책임도 지운다.

새들의 심상치 않은 날갯짓이 폭풍우가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날갯짓이 폭풍우를 몰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찻잔 속의 태풍을 일으키는 날갯짓이 아니라 폭풍우를 타고 넘을 수 있는 넓고 튼튼한 날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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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8호(2014년 10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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