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쎄

인권의 정치와 인도주의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측은지심 혹은 인류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불행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마음이‘ 착한 사람’ 혹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의 행위를 ‘정의로움justice’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하거나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항상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무엇이 훌륭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행동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최악의 것들이다. 따라서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아도 마음의 움직임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 보면 정의로움이라는 것도 따뜻하고 착한 마음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을 나의 아픔과 슬픔으로 느끼는 ‘공감 능력’이 없다면 애초에 정의로움은 성립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러하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기적인 사람’, ‘냉혹한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이 차갑고 이기적인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체의 기질에 따라 마음의 기질이 일정 정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정서적 공감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사이코패스psychopath나 소시오패스sociopath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은 타인의 행복에 기뻐하고(이 타인이 나와 경쟁 관계에 있지 않는 한에서), 타인의 불행에서 슬픔을 느낀다(이 타인에 대해서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에서). 이 메커니즘은 철학자들에 의해 ‘공감sympathy’ 혹은 ‘감정의 모방’으로 불렸다. 이것이 인간들 사이에 작동하는 보편적인 메커니즘인 한에서, 인간은 누구나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요컨대 누구에게나 측은지심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다

원문보기
이후 생략, 전체 글은 PDF파일을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