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개입을 통한 혁신을!

눈앞에 보이는 사태가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한 마디로 상식 밖의 일일지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진실에 이르는 길을 발견해야만 한다. 사실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가 접하거나 당한 일은 꽤나 그로테스크한 것이었다. 알아서 흐르고 알아서 정화하는 강물에 시멘트를 퍼붓는 일이 강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고,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는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손배소로 무력화하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차벽으로 가로막고, 노후한 핵발전소를 살리기 위해 괴물 같은 송전탑을 올리고, 무엇을 겨냥하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남쪽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일 등등. 이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터무니없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한쪽에서는 후퇴라 소리치면서 회복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사태이며 새로운 분석과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개별 사태를 가까이서 보면 전자가 피부에 와 닿는 말이며, 조금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후자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쪽도 인식의 번개를 대지에 내려치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땀과 피를 흘리며 끊임없이 싸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땅에 묻고, 또 누군가는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시적인 ‘분석’이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아마도 정세에 맞는 ‘개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개입에 의해 정세를 ‘조성’하지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제인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처럼 너무 많은 것을 시간에 맡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적극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밀한 분석에 기초한 집요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세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지도 그리기가 필요하다. 정말로 사람들은 무엇을 원할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조용히 살고 싶어도 휴전선과 인접한 자기 마을에 와서 북쪽으로 삐라를 날려 보내고 거기에 맞서 총질을 해대는 데 어떻게 조용히 살 수 있겠는가? 다른 식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성해야 하며, 철지난 완전고용이 아니라 더 독립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추구해야 하며, 물질적 재분배에 기초한 대량소비가 아니라 생태적인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혁신을 말한다면 바로 이런 맥락일 것이다. 혁신은 그저 지금까지 잘 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하든 돌려 보려는 절망적 시도가 아니라 내일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정치 지형도에서 그 밑그림의 바탕색은 초록색일 것이다. 이 초록색 위에 다양한 색깔이 겹쳐지는 그림을 우리는 그리고자 한다.

그 다양한 색깔 가운데 하나가 노동사회의 전환, 다시 말해 해방된 노동사회의 수립이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장시간 노동, 힘든 노동, 낮은 소득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정규불안정노동자의 자각이 필요하겠지만,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그런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기성 노동자들의 회심回心이다. 이것이 없다면 이 사회는 수많은 게토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지옥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목표, 주체, 투쟁, 조직, 노동자정치 등 5대 분야의 혁신을 내세운 우리들의 시도는 세밀한 분석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정세를 조성하기 위한 능동적 개입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 개입은 새로운 녹색좌파정치의 구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새로운 그림에서 전략적 위치를 점하게 될 기본소득 의제로 수렴할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시간에 맡겨 왔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의 관심을 바란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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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9호(2014년 11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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