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정치의 재편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재구성을 위하여

실제 날씨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의 시간 리듬은 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때다. 이런 바람에 맞춘 듯 멀리 지중해에서 변화의 시간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봉기를 통해서이건 선거를 거쳐서이건 한 나라에서 ‘좌파’의 집권이 마주하게 되는 곤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처럼 지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와 유로그룹 사이의 협상 과정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4개월의 ‘가교’를 거쳐 바람이 어디로 불어갈지는 사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전망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시리자의 이른바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고 있으며’ 그 역동성이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세력과 만날 때, 아니 그 방향으로 흐를 때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리자가 패배한다 하더라도 남을 수밖에 없는 유산이며, 만약 시리자가 패배한다면 이 힘을 제대로 흐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직 봄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언땅이 갈 라지는 소리는 들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새누리당에서도 나오고 있는 ‘복지를 위한 증세’라는 움직임이 내는 소리다. 물론 집권 2년 동안 그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현 정부가 ‘비정규직의 확대 등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소리들의 마주침이 내는 (불)협화음이 오른쪽의 추세를 좌우할 것이다.

반대파의 선두에 선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을 계기로 정부와 좀 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을지로위원회’ 등을 통해 대중의 삶의 불만을 자기 기반으로 가져가려는 노력을 계속 하겠지만 보수적인 잡동사니 정당으로서의 구조나 태도 자체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대중의 불만을 달래려는 호민관의 태도는 보이지만 이를 보편적인 대안으로 바꾸어내려는 유기적인 노력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87년체제의 미완성과 전이 속에서 53년체제가 융기하여 만들어 낸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지형도 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수세에 몰려 있는 진보/좌파 세력은 사회적, 정치적 균열이라는 계기 속에 다시 한 번 지나간 영광을 누리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이들도 자본주의의 현 국면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도, 생태적 위기에 대해 느끼는 강렬도라는 면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좀 더 커진)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생태좌파’라는 이념적, 조직적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증세와 복지’라는, 한국에서는 현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대착오적인 프레임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가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슬로건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증세는 당연한 일이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마련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안전판으로서의 복지인가 아니면 전환을 위한 토대로서의 복지인가, 낡은 정치의 토대로서의 복지인가 아니면 새로운 주체 구성의 에너지로서의 복지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그 탈출 방식은 대중의 삶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이 몇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불안’의 근원이지만, 이것이 왜 정치적 변동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또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의문이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를 보면 결국 대답은 불안을 대안으로 바꾸어내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이념적, 조직적 혁신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정치 자체의 재구성이라 부른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민들의 봄’이 찾아올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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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3호(2015년 03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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