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시리자의 역사, 구조, 기획 – 인터뷰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세바스티안 버전, 번역과 해설 / 안효상 편집위원

아래의 인터뷰는 시리자의 역사적 승리가 있었던 지난 1월 25일 선거 직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담자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는 영국 런던의 킹스 칼리지 교수로서 맑스주의 정치사상 전문가다. 그는 시리자 중앙위원이며, 시리자 내부의 좌파플랫폼의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질문자인 세바스티안 버전 Sebastian Budgen은 영국에서 발간되는 저널「역사유물론」의 편집위원이자 버소Verso출판사의 편집자다. 이 대담이 실린 「자코뱅Jacobin」은 미국에서 발간되는 좌파의 온-오프라인 잡지다. 원문은 www.jacobinmag.com/2015/01/phase-one/ 에서 볼 수 있으며, 번역은 쿠벨라키스의 허락 하에 이루어졌다.

지난 호에 실린 「시리자의 그리스, 유럽연합의 약한 고리?」는 급하게 썼다는 난점보다는 깊이 있는 분석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두드러진 글이다. 언어 장벽과 인적 네트워크의 부족함은 말할 것도 없고 배경 지식도 얕은 상태에서 ‘전달’이라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를 구성한 시리자가 트로이카와 협상을 벌이고 있고 일단 4개월의 ‘가교’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말 그대로 숨 가쁜 시간이 흐르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흔들이는 영상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인터뷰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서 시리자를 그리스 좌파운동의 맥락에서 롱테이크 샷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좀 더 차분하게 사태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인터뷰의 뒤로 갈수록 어느 때는 접사촬영이 또 어느 때에는 좌파의 전망이라는 필터촬영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이론적 문제는 갑작스러운 페이드아웃으로 끝난다. 그리고 과제가 남는다.
인터뷰의 부제가 ‘첫 번째 국면’ 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사태로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인터뷰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월 18일 자로 코스타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sas의 인터뷰가 실렸으니 참고할 수 있겠다.

한국의 독자를 위해 번역자가 보충한 것은 꺾쇠괄호 안에 넣었다.

그리스 : 첫 번째 국면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 세바스티안 버전

시리자에 대해 말해 달라. 이 급진적인 좌파정당엽합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질문자 세바스티안 버전은 『역사유물론』의 편집위원이며 바소 출판사의 편집자다.>

시리자는 2004년 서로 다른 몇 개의 조직이 모인 선거 연합으로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조직은 알렉시스 치프라스의 당인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였다. 이 조직은 처음에는 좌파진보연합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좌파운동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91년부터 독자적인 정당으로 존재해 오고 있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공산주의운동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열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른 한편, 시리자에는 훨씬 더 작은 조직들도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의 구 극좌파운동에서 왔다. 특히 그리스공산주의조직KOE이 있는데, 이는 그리스에서 주요한 마오주의 그룹 가운데 하나다. 이 조직에는 2012년 5월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 3명이 있다. 국제주의노동자좌파DEA도 있는데, 이는 트로츠키 전통에 속한다. 다른 그룹들도 대부분 배경이 공산주의다. 예를 들어 혁신공산주의생태좌파AKAO는 구 공산당Iinterior에서 나온 것이다.

시리자 연합은 2004년에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우리가 보통의 성공이라 말하는 정도의 결과를 얻어 간신히 3% 장벽을 넘어 의회에 진출했다. 긴 역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리자는 그리스 급진 좌파의 상대적으로 복잡한 재구성의 산물이었다.

1968년 이래 급진 좌파는 두 개의 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극은 그리스 공산당KKE인데, 이것 또한 두 번의 분열을 겪었다. 우선 1968년에 ‘대령들의 쿠데타’ 체제[1967년 4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는데, 주요 인물들이 대령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며, 이 체제는 1974년까지 지속되다 무너져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적 헌법이 채택되었다] 하에서 그리스공산당interior이 등장했는데, 이는 유럽공산주의 경향이었다. 다음으로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한 후 두 번째 분열이 있었다.

<스타티스 쿠벨라키스는 런던 킹스칼리지의 교수이며, 시리자 내부 좌파플랫폼의 주요 인물이자 시리자 중앙위원이다. >

이 유럽공산주의 경향의 정당은 1987년에 분열을 겪어, 우파는 그리스좌파EAR를 만들고 처음부터 시나스피스모스에 합류했으며 좌파는 혁신공산주의생태좌파로 바뀌었다. 두 번의 분열을 겪은 그리스 공산당은 특히 전통적이었고 스탈린주의적 프레임에 집착했다. 이는 1991년의 분열 이후 더욱 완고해졌다. 이 정당은 전투적이고 분파적인 기초 단위에 근거해서 재구성되었다. 노동자계급과 기층 대중, 그리고 특히 대학생 속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활동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극인 시나스피스모스는 2004년 시리자 창립의 길을 열었다. 시나스피스모스 자체는 예전에 있던 그리스공산당의 두 번의 분열이 합쳐져 등장한 것이었다. 시나스피스모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초에 시나스피스모스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찬성하는 정당이었고 주로 중도좌파적인 색채를 띠었다.

그러나 시나스피스모스는 매우 다양한 경향들로 구성된 이질적인 정당이기도 했다. 당내 좌파와 우파 사이에 심각한 내부 투쟁이 있었고, 결국 우파가 점차 힘을 잃었다. 시리자의 창립은 시나스피스모스가 좌선회한 것을 승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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