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그리스에 관해 쓴 글을 아감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게 사유란 희망 없음[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지난 1월말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환호 속에 집권한 시리자가 지루한 협상과 국민투표라는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채권자들에게 굴복한 모습을 다루는 글의 시작으로 꽤나 어울리는 제사이다.

하지만 그리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장투’에서 ‘장기’란 거의 인생을 바치는 시간이 된 세상, ‘삼포’를 넘어서 사포, 오포, n포 등등 끝없는 포기 그리고 희망 없음의 다른 말인 달관이 세대를 묘사하는 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사회, 그 어떤 몸짓에도 아무런 메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탈정치화된 정치, 목함지뢰에서 시작해서 정신적 대량살상무기인 확성기로 이어진 전투가 유감과 이산가족상봉으로 나아가는 부조리한 대립의 땅. 이런 상황만큼 우리에게 희망 없음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어떤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유란 대안이라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을 낳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유로부터 나온 대안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인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행동이란 말을 들으면 일부는 (소수의) 격렬한 전투와 결기 있는 대립을 떠올릴 것이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행동은 다수가 모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공간을 여는 행동이며, 그런 행동의 울림과 퍼짐이다. 그렇다면 당장 떠올릴 수 있는 행동의 계기는 아마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이런저런 전문가나 언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건 불평등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불평등의 정도 자체가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는 구조화된 불평등에 맞서 개별적인 해결책을 도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투사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적 대변자 주위로 모이거나, 구체적인 적을 대상으로 해서 전선을 형성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았을 때 아마 후자가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전자가 형성되지 않은 채 분노가 모여 커다란 전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분노를 넘어서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하다. 낡은 진보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교차점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다시 사유로 돌아간다. 그동안의 사유에 따르면 지금은 정치 체제 혹은 정당 체제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심원한 위기, 그 위기에 대한 인식의 시대이며, 새로운 정치 세력은 그 위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책적, 정치문화적 대안을 제출함으로써 그러한 인식에 조응할 때 비로소 출현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역사와 구조에 대한 이성적 사유의 산물일 뿐이며, 잘해봐야 손쉬운 대안, 잘못하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우리의 사유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비정규불안정노동자라는 구조화된 주체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는 잠재적인 어떤 것일 뿐이며, 현실정치적으로 일종의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조직화된 사람들 이외에 어디에 정치에 근거가 있는가? 혹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또 다른 조직화가 필요하다 등등. 아직 우리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턱 자체를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발견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문턱은 발견하는 것이지 고안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가장 인간적인 덕목인 꾸준함만이 이 문턱을 찾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집단의 조직이나 흐름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할 때 그 꾸준함은 낳은 것이기도 하다. 꾸준함은 분노의 계기를 찾을 것이고, 그 분노는 공간을 열 것이며, 그 속에서 형성된 신뢰는 대안 속의 주체, 주체 속의 대안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것이 “희망 없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대답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원문보기
이 글은 제29호(2015년 09월호) <책 머리에>이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