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

목적론적인 진보사관을 버린 다음 그래도 역사를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삼고자 할 때,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의 ‘보고寶庫’ 를 뒤지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엿보는 것이라면, 역사의 보고를 뒤지는 일은 현재적 과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 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라는 그람시의 말을 따르자면, ‘진보의 위기’란 진보가 거의 죽어가는 데도 이를 대신할 만한 어떤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물론 진보의 위기란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고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에 내놓는 처방은 정치적으로 보자면 ‘패권주의’ 버리는 것이고, 조직적으로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해진 노동자계급을 다시금 하나의 틀로 묶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하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정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도리어 지금의 위기는 커다란 순환이 끝났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대안이 있을 경우에만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대안의 필요성은 우리 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각국의 지배계급 혹은 글로벌 지배계급은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며, 한국의 경우 ‘창조 경제’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 지 오래이다. 이렇게 기존 지배계급 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이며, 이것이 “이상하게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 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출구는 왼쪽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다.

꽤나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사태를 보는 방식은 이렇다. 현재 한국 정치는 53년 체제, 87년 체제, 97년 체제가 중층결정하고 있지만, 중심축은 87년 체제라 할 수 있다. 이때 중심축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모든 정치 행위의 준거점이라는 의미에서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치적 자유 및 제도로서의 정당정치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약간의 요구가 그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87년 6월에 뒤이은 7월과 8월이 보여 주었듯이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부문의 목소리가 발화되고 교차되었다. 물론 이 공간은 여전히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

87년 체제가 준거점이라는 마지막 이유는 이 속에서 발전주의 국가 시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87년 체제에서 열린 공간은 모두가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었고, 여기서 발전주의 국가에서는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97년 체제가 겹치게 된다.

물론 97년 체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서 IMF 등 글로벌 자본의 대행 기구가 설계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 정부와 대기업 등은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극악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체제, 사회체제를 만들어냈다. 다수의 사람을 생존의 극한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이 체제는 분명 인도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위기를 낳았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와 배제는 87년 체제 자체를 위태롭게 했고, 이른바 형해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개가 시차를 두고 벌어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일종의 착시를 낳았고, 결국 사후 인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사후 인식이란 것은 결국 위기 속에서의 인식일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위기에 대해 우리는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정치의 귀환’과 ‘주체의 발견’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정치의 귀환은 둘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새로운 보편적 의제를 제출함으로써, 다원화되고 ‘정체성의 정치’로 축소된 정치를 더 넓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 제도화된 정당정치 및 시민사회운동을 넘어서는 운동정치의 시작이다. 이는 곧장 주체의 발견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때 주체란 실정적인 사회계급이나 계층에서 연원하긴 하겠지만 직접적으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주체로 청년층과 불안정 비정규노동자를 지목할 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가능성이지 자동적 형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정치의 귀환과 주체의 발견이라는 문제는 의제로 돌아간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의제가 제출될 때 새로운 주체에 의한 운동정치가 가능하고 이것이 다시 체제 자체를 바꿀 힘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새로운 의제가 제출되기 위해서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이는 대항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때 ‘광주항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는 이와 관련한 실마리를 준다.

 

“민중 만들기The Making of Minjung”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이남희의 책은 대항 공론장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이남희,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 후마니타스, 2015년). 이때 민중은 실정적인 민중은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지식인과 대학생 들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1970년대 노동자운동과 1980년 광주항쟁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재발명했다. 저자는 이를 “민중 프로젝트”라고 하며, 이 프로젝트는 “억압적인 군사정권 및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민중운동이 스스로 배태한 ‘정치 문화’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 문화인데, 이는 프랑스혁명 연구자인 린헌트의 개념을 빌려 온 것이다. 정치 문화는 “비전, 언어, 코드, 이미지 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 행위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이 형성된다.” 민중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식인과 대학생 들은 특유한 정치 문화 속에서 하위 대항 공론장을 구성한다. 이 정치 문화와 대항 공론장에는 “실패한 한국 근대사”에 대한 인식부터 억압적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급속한 산업화가 낳은 자본주의의 다양한 모순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공동체적 유토피아까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위 대항 공론장이 어떻게 해서 보편적 정치적 장을 구성하거나 아니면 전환의 준거점이 될 수 있는가”다. 근대사회의 의미 있는 정치적 변동이 대중의 진출 혹은 “틈입”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 특정 사회집단이 구성한 하위 대항 공론장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계기나 의제가 필요하다. 물론 민중 프로젝트는 그 말이 표현하는 것처럼 잠재적으로 그럴 계기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지배적인 공론장과의 교집합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항 공론장을 “하위” 공론장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지배적인 공론장과 대결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지배적인 공론장이 실패한 지점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지배층의 실패하고 불완전한 민족주의에 맞서는 민중으로서의 민중, 근대화와 산업화의 그늘로서의 민중, “한국적 민주주의”의 피억압자로서의 민중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항 공론장을 이런 식으로 보면 이른바 대항 이데올로기도 유사한 문제틀로 볼 수 있다. 잊혀져가는 사건 혹은 과거로서의 사건이 되어 버린 ‘광주항쟁’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김정한의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2013)는 사건으로서의 대중 봉기와 대항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 준다.

광주항쟁 혹은 ‘5·18’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풀어낸 이 책의 핵심적인 테제는, 주로 발리바르에 기대어, “대중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회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 보편성을 현세에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중 봉기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mass를 이루고, 상상할 수 없던 행위를 발명하며 잡다한 목소리와 언어를 쏟아내고 비범한 자발성을 표출하는 시공간time-space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5·18을 대중 봉기로 개념화하려는 것은 “대중 봉기를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시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이런 “영웅 신화는 오히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5·18을 탈정치화하고 5·18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정치화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대항적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대중 봉기의 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진보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파악하고 새로운 대항적 공론장, 대항 이데올로기,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광주항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라는 보고의 먼지를 털어낸 후 이를 현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과 겹쳐 놓을 경우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대항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급진적인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때, 형해화된 87년 체제의 새로운 완성을 위한 노력이 새로운 의제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항적 공론장의 구성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민중운동을 뒷받침한 주요한 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실패에 대한 인식이라는 ‘역사 주체성의 위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분명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생태적 위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우선 이를 통한 ‘운동권’의 구성이 요청된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주체를 요청한다. 이를 발견하고 재발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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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8호(2015년 08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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