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철학 산책

어느 철학자의 자화상

/ 임영근 도서출판 지식의 풍경 대표

 

어른이 된 뒤에 그림을 몇 번 그린 적이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였다. 아이를 키운다는 큰 명분이 있긴 했지만, 마음 맞는 아빠들끼리 모여 노는 재미는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아이들이 더러 어린이집을 졸업하기도 하여,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아빠들끼리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부모들 가운데 화가 부부가 있어 그림을 그려 보기로 하였다.

고양시와 파주시 경계 어디쯤 한적한 곳에 작업실이 있었다. 수업 첫날, 선생님은 다짜고짜 손거울을 하나씩 나눠주며 자기 얼굴을 그려 보라는 것이 아닌가? 첫 수업인데 미술사와 관련된 고상한 이야기나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예비지식 같은 것을 알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제대로 그려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어렵사리 구한 12색 크레용과 스케치북을 준비하고 미술 시간을 맞이했지만, 크레용이 뚝뚝 부러지기 일쑤고, 더러는 기름기에 굳어 버렸는지 색깔은 칠해지지 않고 찍 하며 종이를 찢어 놓기도 했다. 게다가 어렵게 선을 몇 개 그려보면 영 마음에 차지 않아 망쳤다는 생각에 다음 종이, 또 다음 종이를 찾곤 했으니, 제대로 완성된 그림을 몇 편 그려 보지 못한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도 똑같이 그려 내는 것이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으니 도대체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렇게 초장부터 흥미를 잃어 버렸고 그 뒤의 미술 시간은 별 의미 없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이었다.

손거울을 받아 쥐고 내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그 순간이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최대의 적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적은 바로 ‘미술은 모방이다’라는 뿌리 깊은 관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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