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대한민국 자본주의

“다시 반노예 생활을 할 순 없어”

– 파업 투쟁 80일을 넘긴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풀무원분회

/ 신정임

또 다시 두 명의 노동자가 고립무원, 하늘 위로 올랐다. 땅 위의 외침이 응답받지 못하자 감행한 마지막 선택. 그들을 삶의 절벽으로 내몬 존재가 ‘바른먹거리’를 내건 ‘풀무원’이란 사실도 아이러니다. 소비자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겠다는 기업에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받기 힘든 것인지.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안고서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충북지부 음성진천지회 풀무원분회 조합원들(연제복, 유인종)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의도 국회 앞 대형 광고탑 아래 파천교 한강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지난 9월 4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풀무원분회 조합원들의 임시 거처인 대형 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전국을 달리던 풀무원분회 조합원들의 화물차들은 어디에 멈춰 서 있을까.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을 삼키면서 윤종수 풀무원분회장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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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탑에서 풀무원 노동자 둘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전국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자영업 징역살이 피해 택한 일이 화물 징역살이 돼

“초반에 운전하면서 몇 번이나 졸았는지 몰라요. 이러다간 죽겠구나 싶어서 살 방법을 찾았죠.”
윤종수 분회장이 풀무원 제품 운송을 처음 하던 때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그는 자영업자였다. 장난감 가게도 하고 자전거도 팔아 봤다. 자영업은 고됐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가게 문을 열어야 했다. 명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게에 매인 몸이었다. 꼭“징역살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생징역살이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다. 보험 일도 해 봤지만 적성에 안 맞았다. 그러다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풀무원 로고가 박힌 화물차를 봤다.

‘저거다. 저 차 정도면 식구들 밥은 굶기지 않겠어.’

5년 전, 집을 담보로 11톤 화물차를 샀다.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풀무원 같은 좋은 회사에서 어련히 잘해 줄까. 기대가 컸다. 기대는 기대일 뿐. 막상 일을 시작하니 화물차도 또 다른 징역살이에 지나지 않았다. 오후 2시에 출근해 새벽 4~5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집은 잠만 자고 나오는 하숙집이 돼 갔다. 휴무도 한 달에 주말 2일, 평일 2일뿐이었다. 몸이 피곤하니 휴무도 잠자는 걸로 허비해 버렸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나날을 보내던 중 화물차주들이 만든 상조회의 총무가 됐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한 그는 회사에 간담회를 하자고 청했다. 회사와 머리를 맞대면 좀 바뀌겠거니 했다. 회사도 요청을 받아들여 3개월에 한 번씩 간담회가 열렸다. 잠자기도 바쁜 휴일 시간을 쪼개 간담회를 준비했다.

“그때 우리가 다른 업체들은 어떤지 조사했어요. 몇 시간을 일해 몇 킬로미터를 달리는지, 한 달에 운송비는 얼마나 받는지 등등. 그걸 보면 우리가 다른 데보다 월등히 일을 많이 하더라고요. 운행 거리가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게다가‘월대’도 낮고요. 회사에 자료를 다 갖다 줬지요. 그런데 바뀌는 건 없었어요.”

 

빛 좋은 개살구, 특수고용노동자

그가 말한 회사는 풀무원이 아니다. 풀무원의 물류 계열사인 엑소후레쉬가 화물 운송을 맡긴 대원냉동운수 등의 운수사가 그와 다른 조합원들이 계약한 회사다. 법적으로 이들은 자기 차로 사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빛 좋은 개살구’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화물 노동자들의 화물차 번호는 운수사 명의로 등록돼 있다. 엄밀히 말하면 화물 노동자들의 소유가 아닌 것이다. 운전 스케줄도 업체에서 정해 준 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이들이 매달 운송한 대가로 받는 돈이‘월대’다.

그렇다면 풀무원의 자회사인 엑소후레쉬는 이들과 아무 상관이 없을까? 이들이 계약한 운수사하고만 관계가 있다면 이들은 물건만 실어 나르면 된다. 실상은 아니다. 이들은 엑소후레쉬의 지시에 따라 각 센터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도 따로 한다. 보통 다른 회사에서는 화물차 기사가 하지 않는 일이다. 엑소후레쉬는 또한 운수사가 운전 스케줄을 짜는 데 아우트라인을 제시한다. 풀무원의 계열사이기에 본사의 경영 방침에 영향도 받을 것이다. 화물차 기사는 말만 사업자이지, 운수사에 엑소후레쉬, 풀무원 본사까지 2중 3
중의 ‘갑’들의 지휘와 통제 밑에 있는 노동자인 셈이다. 우리는 이들을 ‘특수고용노동자’라 부른다.

윤 분회장은 이런 구조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잘못돼서 사고가 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원래 화물차 일이 이렇게 힘든 건가 보다 했다. 간담회라도 잘 돼서 조금씩이라도 바뀌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2013년 초, 회사가 갑자기 10명에게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회사가 11톤 화물차의 두 배를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속칭‘추레라’) 7대를 새로 뽑으면서 11톤 차를 10대 줄이겠다고 한 거예요. 회사에서 대기실에 연식이 오래된 순으로 감차 명단을 붙였는데 7년 된 차까지 있어요. 할부도 안 끝난 차들인 거죠. 보통 11톤 차가 2억 가까이 가거든요. 월대를 한 푼 안 쓰고 꼬박 5년을 모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이죠. 그런데 할부도 안 끝났는데 그냥 나가라니. 저는 명단에 없었는데도 화가 막 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사람을 막 대하는 회사에 들어왔나 싶어서…….”

기사들도 난리가 났다. 이건 불법이라고 회사에 따지기도 했다. 결국 회사는 감차를 하지 않았다. 물론 기사들의 항의 때문은 아니었다. 트레일러가 들어오고 나서도 차를 놀리지 않을 정도로 물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의 강도가 엄청나게 세졌다. “회사가 언제든 화물차주들을 자를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후 더 막하는 것 같았다.”

 

/ 신정임
제21회 전태일문학상 기록부문 수상. 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비정규직

풀무원분회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2-944-805069 한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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