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철학 산책

귀게스의 반지와 『투명인간』

/ 임영근 도서출판 지식의 풍경 대표

쉬는 시간에 교실에 모여 앉은 친구들이 『투명인간』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투명인간』이라면 나도 진작에 점찍어 둔 책이었다. 미이라처럼 붕대를 두르고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남자의 그림이 실린 표지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학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기분이 들곤 했다. 우선, 빵집에 들어가 달콤한 빵을 실컷 먹어야지. 문방구에도 슬쩍 들어가 과자와 사탕도 한 움큼 집어 오고, 탐나는 문구와 책도 이제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겠구나.
그리고 저기 앉아 있는 저 녀석, 얄미운 짓만 하는 저 녀석도 혼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달콤한 상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내 예상과 아주 달랐다. 투명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추위에 벌벌 떨고, 유리 조각에 베일까 무서워 아무 길로나 다닐 수도 없다니.

동양에서는 손오공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둔갑술이나 분신술이 인기 있는 이야기다. 서양에서는, 하데스의 황금 투구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투명인간을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지어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국가』 2권에서 글라우콘의 입을 빌려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귀게스는 뤼디아 왕에게 고용된 양치기였다. 하루는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졌다. 땅이 갈라진 틈으로 내려가 보니 속이 빈 청동 말 속에 큰 체구의 시신이 있었다. 맨몸뚱이 시신이었는데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귀게스는 금반지를 빼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반지의 보석을 만지작거리게 되었는데, 반지의 보석을 안쪽으로 돌리면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바깥쪽으로 돌리면 도로 보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왕궁 안으로 들어가 왕비와 간통하고 왕비의 도움으로 왕을 공격해 살해하고 왕권을 장악했다.

글라우콘은 귀게스의 전설을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정의를 고집하여 남의 재물에 손대기를 삼갈 만큼 의지가 철석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시장에서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키지 않고 훔칠 수 있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교합할 수 있고, 아무나 마음대로 죽이거나 감옥에서 풀어 줄 수 있고, 인간들 사이에서 제반사에 신처럼 행동할 수 있을 테니 말예요.”

정의가 개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어떤 사람이 올바르다면 자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그렇다는 주장이다. 결국, 사람들은 불의를 행할 수 있겠다 싶으면 언제든 불의를 행하려 하고, 그러므로 가장 불의한 자는 본격적으로 불의한 일을 행하고도 들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강력한 동기는 내면에서 생겨나는 정의로운 마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 흔히 말하는 사회적 평판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직접적인 논박을 펼치지는 않고 있다. 큰 글자와 작은 글자의 비유를 들어가며, 우리 눈에 잘 보이는 큰 글자, 곧 국가의 정의를 먼저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국가』전체의 주제가 “정의로운 국가란 무엇인가”이므로 정의로운 국가의 모습이 드러나면 정의로운 인간이 무엇인지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위의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되는 것이다. 물론, 결론은 도덕적 판단에서도 우리의 이성에 근거해서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나중에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의 논박을 받게 된다. 우리의 이성은 감성의 하인일 뿐이며 도덕적인 판단에서도 언제나 감정이 우선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두 관점의 대립을 검토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마음껏 누릴 수 없는 자유

투명인간 이야기를 들으며 멋진 모험을 기대하는 마음이 어긋나 실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서양의 합리적 정신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투명인간이 된 순간, 알몸이 될 수밖에 없고, 알몸의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이런 문제를 발견한 저자의 너무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사고에 어린 마음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인공인 그리핀도 이런 문제를 고백하고 있다. 그리핀이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 런던은 추운 겨울이었다. 처음에는 자기 발을 자기도 볼 수 없어 계단을 내려가는 일조차 버거운 일이어서 몇 번이나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알몸의 투명인간을 괴롭힌 것은 런던의 추위였다. 추위 때문에 재채기가 나오려고 해 정체가 드러날 위기도 자주 겪는다. 질척한 런던의 흙길을 쏘다니다가 발에 묻은 진흙 때문에 발의 윤곽이 드러나 어린이들에게 쫓기기도 한다. 더군다나 눈이라도 맞는 날에는 금방 정체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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