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알튀세르주의자들 (3) : 자크 랑시에르

/ 박기순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1. 알튀세르와의 결별과 그 교훈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1940∼)는 알튀세르와 함께 『자본 읽기Lire le Capital』의 공저자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오랜 침묵의 시간을 보낸 뒤에, 1980년대부터 일련의 정치철학과 미학 관련 저작들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며, 국내에서는 최근에서야 소개되고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맑스주의 전통은 랑시에르의 지적 여정에서 중요한 출발점을 형성한다. 그는 일찍이 1960년대에 자신의 스승인 알튀세르와 함께 “맑스주의 개조”라는 철학적 기획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 7 0년대 초 『알튀세르의 교훈』을 시발점으로 자신의 스승과 단절하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아갈 때도, 그의 철학적 사유를 추동했던 것은 맑스주의 전통, 특히 맑스주의 정치를 구성하는 주요 문제들과 개념들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맑스주의 정치가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로 설정하며 제시하였던 “해방”의 기획을 재전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성과는 『프롤레타리아의 밤La nuit des prolétaires』(1981), 『무지한 스승Le maître ignorant』(1987), 『불화La mésentente』(1995)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저작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랑시에르의 독자적인 철학적 행보는 알튀세르로부터, 정확히 말하면 그와의 단절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출발점은 알튀세르였습니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정치와 사회의 행위자들이 실천했던 것, 그러나 그들 자신은 사유하거나 사유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담론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던 알튀세르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는 출발했습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알튀세르에게는 이론주의적 시기와 정치주의적 전환의 시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관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별이다. 그런데 이 구별은 사회를 두 계층으로, 즉 생산하지만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과 그들을 대신해서 사유하는, 사유를 자신의 고유한 임무로 삼고 있는 자들, 즉 철학자 혹은 지식인들로 분할한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주의는 분할과 불평등의 논리다.

랑시에르는 이 분할을 통해 알튀세르에게서 정치는 소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알튀세르는 계급투쟁을 역사를 만드는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대중이 한갓 스스로 사유할 수 없는 자들로 규정되고 있는 한에서, 정치적 주체화를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실제로 정치는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그 대신에 철학이 정치를 대체하게 된다. 정치를 봉쇄하는 이 분할의 논리는 이미 정치철학의 정초자였던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된 논리다.  즉 그것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대중들이 왜 정치에 참여할 수 없고 정치는 오로지 철학자들의 몫일 수 밖에 없는지를 논증하기 위해서 생산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 분할의 선을 그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랑시에르의 이러한 평가와 비판에는 “예속”과 “해방”이라는 정치적 개념들에 대한 특정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예속의 본질은 힘들의 관계 혹은 의지들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속은 힘이 없는 자들이 힘을 가진 자들의 의지를 따르는 것에 있지 않다. 따라서 힘이라는 관점에서의 분할은 근본적이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분할, 지배와 예속의 본질적인 분할은 존재론적 분할이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 사유하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차별과 분할은 지능의 분할, 우월한 지능과 열등한 지능의 분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와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는 자의 분할, 지식을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가르칠 수 있는 자와 스스로는 배울 수 없고 가르침을 통해서만 깨우칠 수 있는 자 사이의 분할이다. 실제로 부유한 자들, 지배자들의 언어는 이 분할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이 분할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자본가이고 당신들은 노동자’이며, ‘우리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당신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의 말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당신들의 말에는 근거가 없다’ 등등.  결국,그들은 대중들에게  ‘당신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고 우리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우리와는 다른 존재이고 당신들의 언어는 진정한 언어(logos)가 아니라 한갓 소리(phone)에 불과하며’, 따라서 ‘당신들은 말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지배는 이 분할의 논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재생산된다. 요컨대, 가장 근본적인 분할, 지배와 예속을 정초하는 분할은 지능, 즉 사유하고 이해하는 능력에서의 분할이다. 알튀세르는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분할을 긍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지능의 불평등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J. Rancière, Et tant pis pour les gens fatigués. Entretiens, Editions Amsterdam, 2009, p.118.
** Cf. J, Rancière, Le philosophe et ses pauvres, Fayard, 1983, p. 17∼85(Flammarion, 2007); La mésentente, p. 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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