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소리

구치소 체험기

/ 우람 알바노조 정책팀장

2016년 9월 2일 금요일, 나는 재판 불출석이라는 이유로 구속됐다. 작년 세월호 투쟁 때 일반교통방해로 기소되었는데, 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재판부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굳이 출석하지 않은 이유를 변명하자면, 전혀 몰랐다.

나는 아침에 집을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한다. 법원은 등기로만 우편을 보내니 애초에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첫 재판은 그대로 날렸다. 재판이 있었다는 것도 법원에서 연락이 와 ‘오늘이 재판인데 올 것이냐’ 물어서 알게 되었다. 일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다. 그날은 알바노조의 단식 첫 날이었다. 그럼 다음에 기일을 잡을 테니 그땐 꼭 출석하라는 말을 남기고 법원 직원은 전화를 끊었다. 그 통화 다음 날, 난 단식에 돌입했다. 그렇게 투쟁하며 재판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검사에게 다른 용건으로 연락이 와 통화하던 중, 재판이 내년으로 연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땐 그냥 ‘엄청 멀게 잡았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재판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렇게 지내다 국회 앞 단식농성 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조사 막바지에 경찰이 나에게 구속영장을 들이민 것이다.

처음에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법원이랑 통화도 했고 재판 기일도 잡혔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웬 구속영장이냐고 경찰에게 따졌다. 경찰은 자기들도 잘 모른다며 아마 서약서 같은 것을 쓰면 금방 풀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에 일단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도 내심 그 말을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약서를 쓰러 갔더니 웬 걸.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다. 8시쯤 호송차가 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그때야 시급하게 막 주변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이미 한 번 더 재판 기일이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 8일에 이미 재판 날짜가 잡혔었던 것이다. 난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단식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했었고, 그렇게 두 번 불출석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은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혹시라도 재판 받을 일이 생긴다면 절대 귀찮다고 빼먹지 말고 꼬박꼬박 출석하기 바란다. 이렇게 구속되면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보상도 못 받는다. 그렇게해서 구치소라는 곳에 난생 처음 가 보게 되었다. 수갑 차고 호송차를 타고 인천구치소로 갔는데, 하던 일들에 대한 걱정이 좀 되었지만 생각보다는 담담했다.

신입대기실이라는 곳에 가서 입소 수속(?)을 밟게 된다. 철창을 너덧 개 통과했는데, 그 길을 걸어가면서 구치소가 진짜 감옥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입소 수속은 별 건 없다. 신원 확인하고, 소지품 압류(?)하고, 수인복(거기서는 ‘관복’이라고 부른다)으로 갈아입는 것이 전부다. 다만 그 과정에서 검신을 하는데, 꽤나 치욕적이다. 알몸 상태에서 검신을 하고 항문까지 검사한다. 예전에 항문 검사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어 들어가며 가장 신경이 쓰였는데, 기계로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발판 위에 올라가서 쭈그리면 렌즈가 밑에서 확인하는 구조다. 끝나고 나서야 그게 항문 검사라는 것을 알았다. 얼떨결에 화도 못냈다.

교도관들의 태도는 굉장히 재밌다. 오랜만에 고등학교를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었다. 다리 꼬지 말라고 명령하고, 대학교 이름을 묻기에 꼭 말해야 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지장을 찍는데 일어서서 찍으라고 하기도 했다. 마치 학창 시절 왜 있는지 모를 규칙들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지만 괜히 싸웠다가 트러블이 생길까 봐 참았다. 이런 식으로 이러한 규제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런 식의 규제는 이 단계에서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상적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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