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부조리한 현실, 넓은 행동과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꼭 반인간주의의 입장에 서지 않더라도 지금의 현실은 연극을 보는 듯하다. 그것도 여러 편이 동시에 상연되는 일종의 연극 축전이다. 물론 삶의 축제는 아니다. 국정원의 은밀한 선거 개입은 노골적인 정국의 재구성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갈라진 또 다른 비밀스러운 힘은 한편으로는 ‘내란’을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폭파하는 변주로 나아갔다. 이렇게 무대장치가 설치되고 소품이 놓이자 저마다 자기 대사를 읊는다. 가끔 애드리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외워서 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감흥은 없다. 모두가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있다고 말한다. 가끔 ‘유신 독재’를 불러내는 주술이 행해지기도 한다. 관객석에서 시종일관 “종북이다!”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마스크 뒤에서는, 등장인물의 그림자에서는,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전 정권 시절 이명박 계와 박근혜 계의 약속대련 수준이었던 지배계급 내의 갈등은 거의 섬멸전으로 전화하고 있는 중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원전 비리, 4대강 비리, 그리고 언제나 잠복해 있는 친인척 비리 등등이 난마처럼 얽혀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찰총장이 이런 방식으로 정국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회 자체를 흔들 폭발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사람의 삶이 견딜 수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그리고 어떤 돌파구가 생길 때, 커다란 변동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결국 문제는 주체화이다. 물론 지금도 무대 뒤편에서는, 관객석의 어느 구석에서는, 치열한 삶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단식 농성, 장애인들의 투쟁, 밀양 사람들의 저항……. 이들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과 가슴에서 솟구치는 피는 연극이 아니다. 이 피와 땀을 코러스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를 위해 『월간 좌파』는 삶의 전투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의 운동인 알바연대와 알바노조 활동에 적극 가담하려고 한다. 또한 끈질기게 주장했듯이 신자유주의 종식기에 걸맞은 급진적 개혁의 요구를, 사태의 주요한 돌파구라 보이는 기본소득 운동으로 전개할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금민 편집위원장의 글은 제언이면서도 선언이다. 글쓴이는 한국 기본소득운동의 전체적 수준을 고양하기 위한 전략이자 매개로 ‘기본소득공동행동’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 이래의 활동을 개괄하면서 온 길과 서 있는 자리에 대한 일종의 시간적 지도 그리기를 수행한다. 그동안 기본소득운동은 학술운동과 정치운동이 ‘응답적 순환 고리’를 형성하면서 진행되었다는 긍정성을 보이지만,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지 못했고, 이는 다시 학술운동이 심화되지 못하게 하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기본소득운동을 “보편주체에 근거한 폭넓은 사회운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지금이 신자유주의의 종식기이자 화석연료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동안의 활동속에서 드러난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러한 필요성을 현실성으로 전환하는 계기로서 ‘기본소득공동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들어온 원고들을 죽 늘어놓으니 부조리한 만화경같은 느낌이다. ‘세계를 우습게 뒤흔든’ 박정근 씨 사건이 ‘전부 무죄’라는 제자리로 돌아온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검열의 역설을 드러냈다고 말하는 김대환의 글부터, 제시간에 배달하기 위해 법규를 위반하지만 또 다른 법규와 정의를 주장하는 배달 알바이자 알바연대 위원장인 구교현의 일기, 소득이라는 간단한 돋보기를 통해 대다수의 삶이 출구 없는 성에 갇혀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니 즐겨야 한다는 역설을권하는 김성일의 제언, 이 땅에 만연한 배제, 억압, 착취, 그리고 죽음을 언급하면서 간명하게 “이런 나라의 병사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지난함과 따뜻함으로 드러내고 싶은 박정훈의 고백까지, 어쩌면 우리는 왼쪽에서 바라본 카프카적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용산학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이충연 님의 이야기와 송전탑의 진실을 알림으로써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삶을 전달하려는 이계삼의 이야기에는 부조리한 세상의 지층을 뚫고 나오는 마그마 같은 열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그마가 흐를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의사로서 살아가려는 행동하는의사회 회원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 준 세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기억의 아련한데, 여전히 등급제 철폐와 소득 보장이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또 다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과 박경석 님의 글은 만연할 뿐만 아니라 익숙한 배제를 드러냄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때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햇볕을 가리지 말아주기 바란다”일까? 하지만 그런 감각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기도 하다. 수많은 동지들, 아니 벗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혜정 님의 수필은 그래도 산 자들의 살아 있는 말소리로 끝난다. 이 이야기의 인연이 이어지길 바란다.

그런데 인연은 사실 우연이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교환연구자로서 서울을 방문한 어느 핀란드인의 인상기를 대하는 일은 그가 마주친 우리 삶의 단면들만큼이나 우연적이다. 하지만 이방인의 고유한 감각은 그만큼 우리의 또 다른 고유한 감각을 자극한다. 흔쾌하게 ‘동지적 연대’로 글을 써 준 일카 레베에게 감사한다.

또 다른 인연은 감옥의 창살을 넘기도 한다. 병역거부자로서 감옥에 갔다 온 최기원은 구체성과 총체성으로 『좌파』 기획에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여기서 끝났다면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당성과 야망이라는 덕목부터 편집 방향과 형식에 대한 소소한 제언도 잊지 않았다. 약이 쓰지만 한 번의 큰 함성으로 예리코 성벽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40번이라도 달게 삼킬 생각이다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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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6호(2013년 10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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