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단

탈자본주의 이행과 기본소득 전략

/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I. 논의에 앞서

이 글은 기본소득을 탈자본주의 전략으로 다룬다. 이를 위하여 이 글은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을 포함한 탈자본주의 이행 프로그램을 제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프로그램의 정치 전략으로서의 타당성을 논할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하기 이전에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혀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이 글에서 제시하는 이행 프로그램은 2016년을 기점으로 중中범위 전략의 시야에서 한국이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반영하는 특수한 프로그램이다. 기본소득을 이행의 중요한 수단과 경로로 포함하는 여러 종류의 탈자본주의 프로그램이 설계될 수 있으며, 그러한 프로그램들의 타당성은 주어진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 글은 탈자본주의 전략으로서의 기본소득을 다루는 것이기에, 여기서 언급하는 기본소득의 개념은 넓은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라 ‘해방적 기본소득’이라는 좁은 범위다. 넓은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란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일체의 자산 심사 없이 국가 등 정치 공동체로부터 개별적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되는 소득을 뜻한다. 즉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을 충족시키면 넓은 의미의 기본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방적 기본소득’은 이와 같은 세 가지 기준 이외에 ‘충분성’ 기준을 기본소득의 본질적 지표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즉 지급 액수가 인간다운 삶에 충분하며 사회정치적 참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충분한 소득이라는 기준에 부합될 경우에만 기본소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려면 기본소득 지급 액수가 상당히 많아야 한다. 발전된 국민경제의 경우에도, 충분성 기준에 부합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총조세부담률을 70% 이상으로 올리거나** 조세 이외의 재정 기반, 즉 사회화된 부문이나 공유경제 등을 전제로 해야만 할 것이다. 이처럼 기본소득 지급액만으로 충분한 삶이 가능한 경우를 ‘강한 기본소득 모델strong model of basic income’이라고 부르며, 그렇지 않을 경우를 ‘약한 기본소득 모델weak model of basic income’이라고 부른다.

셋째, 이 글에서 다루는 기본소득 모델은 1인당 월 30만원 정도를 지급하는 ‘약한 기본소득’ 모델이다. ‘약한 기본소득 모델’이 탈자본주의 이행 모델이기 위해서는 ‘강한 기본소득 모델’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아야 하며 또한 이러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경로가 모델의 내재적인 요소로서 설계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약한 기본소득 모델’이 ‘해방적 기본소득’이기 위해서는 기존복지의 축소로 재정을 충당하지 않아야 하며***, 경제모델의 전환 및 노동체제의 전환과 기본소득을 긴밀히 연동하여 결과적으로 비록 기본소득 지급액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에 충분하지 않더라도 임금이나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특별수당 등과 기본소득을 합쳐서 사회구성원 모두의 총소득이 인간다운 삶에 충분하여야 한다. 결국 ‘약한 기본소득 모델’이 해방적 기본소득인가의 여부 또는 탈자본주의 전략인가의 여부는 구체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포함된 이행 프로그램 전체의 성격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약한 기본소득 모델‘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체제를 유지하면서 적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생활 보조금 식으로 나눠 주는 형태가 되면, 그것은 해방적 기본소득 모델이 아니며 탈자본주의 전략일 수도 없다.

넷째, 기본소득의 개념에는 통상적으로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는 현물 형태의 공공서비스, 즉 무상공공의료, 무상공공교육, 무상공공교통 등도 포함되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이러한 현물 공공서비스를 ‘기본복지’ 또는 ‘공공서비스’라고 표현하고 기본소득은 ‘현금기본소득’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다섯째, 이 글은 기본소득의 재정 기반을 이행 전략의 관점에서 다룬다. 기본소득의 재정 기반을 유형화하자면 조세형과 공유경제형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세형의 경우, 직접세 중심인가 간접세 중심인가, 자본소득 증세인가 보편 증세인가로 다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공유경제형 기본소득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화된 부문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이는 탈자본주의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기본소득 재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세형과 공유경제형의 혼합 모델을 기본소득 및 현물공공서비스의 재정 모델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미리 밝혀 둔다.

여섯째, 이 글에서 탈자본주의 이행이라고 말할 때 목표점은 사적 자본주의경제,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사회화된 부문의 공유경제가 국민경제 전체에 대해 각각 1/3 정도의 비중을 가진 혼합경제라는 점을 밝혀 둔다. 이와 같은 사회 상태를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상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이라 부르든 탈자본주의적 혼합경제를 목표로 하는 일련의 이행 프로그램에서의 기본소득의 역할과 기능, 기본소득 도입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연동된 사회경제적 이행 프로그램의 내용, 나아가 그러한 경제적 이행 프로그램 전체의, 특히 그중에서 기본소득의 정치 전략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정관은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만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충분성’도 기본소득의 기준으로 포함시키자는 개정안이 독일 네트워크, 오스트리아 네트워크, 네델란드 네트워크의 발의로 제출되어 오는 7월의 지구네트워크 총회에서 다루어질 예정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는 총회에서 정관 개정안 지지를 의결하였다.

** 신자유주의 감세 기조에서는 70% 과세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쉽게 발견된다. 실제로 제한적 합리성에 관한 연구로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2000년(Boston Review, Oct. 1)에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여 획득한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90%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정당하지만 경제활동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70%로 과세하고 그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나누자고 제안한 바 있다. https://bostonreview.net/forum/basic-income-all/herbert-simon-ubi-and-flat-tax

***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네트워크가 발의한 지구네트워크 정관 개정안은 단서 조항을 두고 있는데, 지급 액수가 충분하지 않은 기본소득도 재정을 기존 복지의 축소로 조달하지 않고 충분한 기본소득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과도기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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