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2016

지연과 결여

201605책머리에_지연과결여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은 2016년 총선은 환희나 실망만큼이나 숙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어떤 면에서 변화가 있되 또 다른점에서 보면 변화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며, 더 중요하게는 변화를 이끌 만한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 아는 것처럼 새누리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다. 멀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응부터 가까이는 공천 파동까지 새누리당과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했고,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균열을 낳았다. 여기에 더해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행태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럼에도 선거 전까지 이런 정도로 민심이 이반했는지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야당의 내홍과 분열,답보와 정체가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분위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밑바닥에서 거대한 흐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흐름을 형성한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적 공포’일 것이다.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이 공포를 조성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공포와 탈출 욕망이 선거라는 틈을 통해 흘러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흘렀다. 더불어민주당은 내홍과 분열에도 불구하고 김종인이라는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을 전선에 투입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은 호남이라는 진지를 확보했고,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선무 방송을 여전히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의당은 그저 기존 지지 세력을 확인하는 데 그쳤고, 노동당과 녹색당은 선거 결과를 평가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그 결과, 주요 야당이 하나 더 생기긴 했지만 정당체제와 정치 자체는 제자리걸음한 셈이다. 이렇게 변화의 열망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기성 질서를 유지하는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숙고는 시작된다. 그 숙고는 절망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사회적 전환과 생태적 전환을 유토피아적인 이상으로 제출한 게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출했다. 그런데 유토피아적이라는 비난조차 받지 못했으니, 이게 현실적인 대안인지 아닌지 자체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이때 우리 앞에는 층위가 다른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는 힘과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최소한 당분간은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그 나름 근거가 있는 생각이다. 이른바 분단 체제 하에서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심성의 지형도가 한쪽으로 심하게 쏠려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니 이런 체제 자체에 어떤 변화가 있기 전에는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범위를 넘어서는 대중적인 움직임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전자는 지연의 일종이다. 이미 갖추었어야 할 어떤 것이 부족한 것이다. 후자는 말 그대로 결여이며, 이는 불가능성의 조건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일종의 왕복운동을 하거나 하나는 지반 역할을 하고 다른 하나는 퍼포먼스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절망을 하는 것도, 절망 속에서도 어떤 모색을 하는 것도, 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연과 결여 모두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정할 때만 새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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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7호(2016년 05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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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 2016

‘말 걸기’로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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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근대의 시간이 균질적이고 공허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시계의 시간에서만 그렇게 느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쁨의 시간은 찰나이고 슬픔과 고통의 시간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를 분명하게 느낀다. 이런 느낌이 어떻게 해도 세상은 잘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과 겹쳐질 때 우리는 중지 상태에 들어간 것 같은 제곱의 느낌을 가진다. 이런 시간 감각은 막혀 있다는 공간 감각과 닿아 있다. 막혀 있다는 공간 감각이 주로 통치자와 주권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왔다고 보지만, 주권자들 사이의 관계도 흩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갑갑한 시간적, 공간적 감각이 현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열려 있는 합법적인 집단적 의사 표출과 충돌의 장인 선거에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지켜보는 것은 일단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현행 대의제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고 또 이 정당들을 정치계급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흐를 수 있는 방향과 틀이 사전에 상당히 정해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보통선거권이 가진 위력 때문에 그 정당들도 대중이 느끼는 어떤 것을 최대한 (자기 식대로 포장해서) 제시하려 한다. 또한 정당민주주의의 선거는 정당체제라는 구도 속에서 진행되기에 반사적인 행위와 결집이 교차한다. 다시 말해 저들을 찍지 않기 위해 이들을 찍기도 하고, 저들이 모일 것을 두려워 해 우리가 모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이른바  민의를 제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우리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 물론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만한 조건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기회의 평등’이 허구적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처지는 그 이전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예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권자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그 첫걸음을 누구는 ‘말 걸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서발턴이 말할 수 있기 위해 말을 건다는 것이다. 물론 선거 때는 모든 정치계급이 말을 듣겠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내건 공약이 그 말을 들은 결과이거나 말을 듣기 위한 매개인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말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리의 정치’라는 문제틀과 마주한다. 저들이 거는 말과 우리가 거는 말은 어떻게 다르고,왜 우리의 말은 맞는 말이고 저들의 말은 거짓인가? 물론 여기서 제3항 혹은 신의 자리는 없다. 있는 것은 정세라는 말로 표현되는 관계뿐이다.

시간의 중지와 공간의 봉쇄 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메시아의 시간’을 요청한다. 아니면 지루한 사도 바울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하나가 원망願望이고 초월적인 시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위안이고 일상의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세적인 시간과 역사적인 시간, 그리고 그 둘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이를 위한 말 걸기, 우리가 발화하는 것이 진리라는 확신과 이를 위한 행위. 이것들이 교차하는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발화하는 것이 정세에 조응하는지, 정치의 임무인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기댄다. 물론 이때 역사는 과거로 향한 것이든 미래로 향한 것이든 도피처가 아니라 참조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말 걸기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셈이다. 물론 그 말 걸기가 제대로 된 발화를 끌어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치가 거기서 시작되는 한 이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선거만이 아니겠지만, 선거는 그런 말 걸기가 광범위하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고 지나갈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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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6호(2016년 04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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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2016

새로운 시작(!)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시간이 꼭 같지 않다는 것을 해가 바뀔 때만큼 심하게 느낄 때가 없다. 마음 같아서야 모두가 한 해를 보내고 또 맞는 시간을 차분한 휴식과 정리의 호흡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렇지 못하다. 우선 한국의 정치 일정 자체가 이를 가로막는다. 예산을 다루는 정기국회에 의해 언제나 임시국회가 국민과 민생의 이름으로 열린다. 그런데 이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는 법안들이 지금의 ‘노동 개악’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 국민과 민생을 어렵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연말연시는 고단하다. 물론 이것만이라면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순들이 일부 해결되면서 언제나 새롭게 중첩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의 개악도 경제 위기 시대에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한국의 대자본이 결국 노동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를 벗어나 보려는,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고육지책에 불과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헬조선’이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가져야 하는 것은 섬광처럼 비치는 열망과 변화다. 2015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중의 정치적 표현이 가장 의미 있게 드러난 것은 1월에 있었던 그리스 시리자의 집권과 12월에 드러난 스페인 포데모스의 약진이다. 물론 시리자의 ‘굴복’이 커다란 실망감을 준 것이 사실이고, 포데모스의 약진도 등장할 때의 열광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보자.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이제 꽤나 오래된 일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받은 상처는 뿌리가 깊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지나면서, 좌파는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히틀러가 차근차근 군비를 증강하고 주변의 약한 곳을 침략할 때마다 거기까지만 양보하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른바 유화 정책과 비슷한 태도를 보인 게 좌파였다. 자기들은 살릴 수 없는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자들이 살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게 아닐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좌파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성공과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전면적인 전쟁 속에서 당시에는 어쨌든 반파시즘 동맹이 형성되었고 결국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오기는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밀린 좌파는 광범위한 전선의 형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모방하는 길을 택했다. 트로이의 목마를 탄 셈이다. 정치적 대안이 없던 대중이 차선으로 이들을 지지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에서는 다시금 좌파가 약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한 좌파가 한 일은 신자유주의를 되돌리거나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발밑을 파는 것이었다. 이미 트로이의 목마는 살아 있는 말이 되었고 자기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시애틀 전투’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수준의 대중 저항은 가능한 곳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적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여기에 맞서는 대안의 형성 등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라틴아메리카의 ‘핑크 타이드’를 형성했고,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변화는 또 다른 ‘약한 고리론’을 낳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2008년 중심부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는 지배층의 뉴딜을 낳지 못하고 대중의 ‘누벨 바그’를 형성했다. 2011년에 시작된 점거 운동이 그것이다. 이것이 1930년대와의 차이다. 당시에는 경제 위기 속에서 지배층이 ‘수동 혁명’을 벌였고 좌파는 전통적인 대응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떤 수동 혁명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대혁명 직전의 귀족의 ‘전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여기에 맞서는 길은 대중의 분출일 수밖에 없다. 대중의 분출이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 2015년 1월 그리스 시리자의 집권이다. 어쨌든 시리자의 승리는 대중이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비록 물려받은 부채 때문에, 그리고 유럽이라는 스핑크스 때문에 단번의 탈주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일단 알렉시스 치프라스라는 정치인 개인의 야심은 논외로 하자.) 그리고 12월에 스페인 포데모스의 약진이 있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양당 체제가 끝나고 ‘불안정한 상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따라서 앞날은 안개 속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리자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포데모스는 ‘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대중의 분출이라는 파도를 타면서 등장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사반세기 이상 새로운 좌파 정치세력의 등장을 이만큼 강렬하게 보여 준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핵심은 대중에게 어떻게 대안을 제시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광이 아니라 냉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열광의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냉정한 사고다. 지금까지 나타난 대중의 열광은 ‘반긴축’으로 표현되듯이 기존 체제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을 뿐이다. 물론 앞서도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감안할 때 이는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래된 미래’와 ‘주변의 미래’를 벼려 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지전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전을 시작하기 위한 기동전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비판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좌파는 기동전의 패기를 잃어버리고 진지전만을 고수함으로써 그 진지마저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유형의 싸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전략의 부재를 보여 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중도파의 일부마저 청년 세대를 향해 ‘분노하라’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무너지는 느낌 속에 ‘두 개의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때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는 개입이라는 방식의 기동전이다. 물론 이는 언제나 뇌관만 불타고 끝나 버릴 수 있다. 또 다른 과제와 결합할 때만 그 뇌관은 마른 풀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 다른 하나는 기존 체제의 불가능성에 대한 설파인데, 이는 오직 대안의 제시로만 가능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스스로를 좌파라고 한다면,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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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3호(2016년 01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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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2016

숭고함과 우스꽝스러움

35호책머리에

혁명이나 위기는 맑스의 말처럼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낸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과거의 투쟁들을 흉내 내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들을 찬양하기 위함이었고, 주어진 과제의 현실적 해결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 혁명의 정신을 재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이른바 테러방지법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한 것에 맞서 야당들이 필리버스터로 맞서고 있는 모습은 지금이 바로 위기라는 것을 보여 준다. 47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라는 망령, 기본적으로 10시간씩 사자후를 토하는 스펙터클을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른바 “독소 조항”을 제거하면 이 법안을 합의하여 처리하겠다는 야당의 태도를 보면 맑스가 같은 글에서 헤겔을 수정해서 인용한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분명 9·11 이후 (새로운 기술의 발전 및 확산과 더불어) 테러는 언제든 보통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편재된 현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가장 근본적인 권리인 생명권이 잠재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인식 속에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유보하거나 폐기하는 역설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역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자유주의 이외의 사상을 용인하지 않는 자유주의의 배반이나,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가 다른 종파를 박해하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더 근 본적으로 인간의 조건인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라는 정치적, 윤리적 질문이 있다. 이런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생각과 더 넓은 실천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의 테러방지법은 이런 질문과 비판 이하에 있다. 이른바 독소 조항이라 불리는 것에는 국정원이 초법적 권한을 쥐고 광범위한 자의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영장 없이”계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은 말 그대로 법의 정지 상태를 말한다. 이런 모습은 위기를 정치 공동체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편익과 권한을 확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기회로 보는 세력과 개인 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된 테러방지법에 대한 합의 운운하는 것은 발화자의 소심함을 보여 주는 일이거나 사실은 테러방지법 같은 간편한 처방전으로 위기를 해결하자는 무능함을 나타낼 뿐이다. 만약 이럴 경우 보통 10시간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필리버스터라는 숭고함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필리버스터는 “새로운 투쟁을 찬양하기” 위한 게 아니라 “골동품 연구가나 알고 있을 사항”에 불과한 어떤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긴 누구 말대로 숭고함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는 한 발의 간격만 있을 뿐이다.

이런 사태는 총선을 계기로 해서 좌파와 녹색의 새로운 의제로 떠오른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치가 미래의 이상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한다고 할 때, 그 문제를 구성하는 근원이 ‘사회 양극화,’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과 같은 말로 표현되는 삶의 위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분명하다. 이럴 때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권리로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우선적으로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경제적 해결책이다. 또한 1968년과 1989년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적 의제는 시민, 즉 정치적 주체의 (자기) 구성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기본소득은 그럴 수 있는 조건의 확보를 자기 목표로 한다.

이런 기본소득에 대해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라는 비판은 자신의 신조를 엄숙하게 고백하는 일이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태도는 아니다. 도리어 재원이 많이 든다는 비판은 소심하긴 하지만 현실적이긴 하다. 그러니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자. 현실의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면서도 이것이 미래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수단과 경로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시대에 사회주의를 말하는 사람의 숭고함을 믿는다. 그건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숭고함은 그 자체로 비극일 뿐만 아니라 다음번 비극을 위한 디딤돌이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움은 약간의 웃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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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5호(2016년 03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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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 2016

경제민주화의 시대(?)

총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정당 내부에서 그리고 정치체제에서 꽤나 격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변화의 시작은 안철수 의원이 작년 12월 중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커다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고, 이는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180석까지 이번 총선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까지 낳았다. 하지만 “정치란 생물”이란 말처럼 정치는 두려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어떤 것인가 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영입’하면서 지형은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인격은 추상적인 가치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정치에서 인격은 사실 ‘의제’의 체현자다. 이런 점은 과거의 이력이야 어떠하든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김종인 전 의원에 잘 들어맞는다. (김종인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영입한 한상진 교수와는 효과가 다르다. 한상진 교수도 한때 ‘중민 이론’이란 것을 제출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어떤 정치적 효과가 있는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김종인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의 주창자이며, 현행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 즉 119조 제2항이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김종인이기에 경제민주화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고, 정부와 새누리당이 급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얼마나 잘 이행되었는지를 발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격이 어떤 의제의 체현자라 하더라도 아무 것이나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시대의 과제 일 뿐이다. 옥스팜이 얼마 전에 내놓은 보고서인 「1퍼센트를 위한 경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62명이 가진 부가 하위 36억 명이 가진 것보다 많다고 한다. 지난 5년 사이에 62명이 가진 부는 44퍼센트가 늘어난 데 반해 36억 명이 가진 것은 41퍼센트가 줄어든 결과다. 더 안 좋은 통계는 상위 1퍼센트가 가진 부가 나머지 전체의 부보다 커 졌다는 것이다. 원래 예상은 2016년이었으나 1년 앞당겨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굳이 숫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러니 김종인 전 의원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안철수 의원의 대권 의지가 탈당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극화와 불평등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의제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정치공동체의 일부 구성원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경우, 그건 정치공동체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묻는 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인권선언」에 나오는 “인류 가족”의 의미를 묻는 일로 나아간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 즉 생존의 권리, 더 나아가 자기 공동체에, 인류의 삶에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치와 도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소득 기반 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거나 추상적인 목표만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수단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다면 경제민주화는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은 경제 위기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위기 탈출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저성장’이 ‘뉴노멀’이라고 말해지는 시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교의인 공급 위주의 경제학이나, 신조라 할 수 있는 감세와 규제 완화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수출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경제체제도 해답이 될 수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교의와 신조는 바로 오늘날의 양극화와 빈곤의 주범이기에 오로지 극복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양극화와 빈곤을 줄이는 획기적 인 조치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헌법 119조 제2항은 이에 대해 “적정한 소득의 분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저성장 시대에 맞는 경제 모델을 찾아야 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강의 방향을 말하기는 한다. 바로 ‘내수 중심 경제’,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극단적인 수출 의존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경제 말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비물질적 노동과 케어 경제가 더해져야 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문화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양극화와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도,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다수의, 아니 모두의 소득이 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최저소득이 보장되어야 하고 일자리 자체가 안전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21세기에 최저임금 1만 원과 주당 35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게 부당한 일인가? 맑은 눈과 뜨거운 가슴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다양한 인간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고용을 통한 소득 이외에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오로지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의 기본적인 생존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에 대해, 이 속에서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다시 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정치공동체를 ‘리셋’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한 헌법 조항이 보장하는 바이다. “국가는 ……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이 87년이라는 격동을 거치면서 만들어졌고, 경제민주화라는 문제의식 자체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 속에서 핀 꽃이며,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복지가 대공황, 파시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화 속에서 맺은 열매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말하는 경제민주화, 즉 거대한 사회 변화가 쉽게 일어난다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경제민주화가 당장 어떤 결실을 낳을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총선이라는 열린 정치적 공간이 경제민주화로 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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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4호(2016년 02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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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2015

역사라는 이름의 피난처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이런저런 이데올로그들이 벌이는‘역사 전 쟁’에 어떤 교훈적인 효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역사인식의 제고일 것이다. 이때 제고된 역사인식은 진보의 역전 가능성과 역사의 반복에 대한 깨달음이다. 에릭 홉스봄은 역사가의 임무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오른쪽에 있는 정치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 떠맡은 모양새다.

‘단기 20세기’의 시작인 제1차 세계대전이 진보의 부정적 효과 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면, 그 끝자락인‘역사적 사회주 의체제’의 붕괴는 진보의 역전 가능성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되었다. 이로부터 두 방향의 윤리가 나왔다. 하나는 인간의 분투를 포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감시하고 환기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역사의 반복이라는 주제는 헤겔과 맑스 이후 진부한 것이 되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으로!”

맑스가 헤겔의 말을 이렇게 수정한 것은 아무리 위풍당당한 모 습으로 등장한다 하더라도 시대착오적일 때 그 끝은 우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 이다. 딸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읽어 내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 일 수 있지만, 죽은 전직 대통령까지 이 싸움에 불러내는 얄팍한 시도는 영결식장에 참석하지 않은 현직 대통령의 모난 마음과 어울려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돌려놓는 일에 불과하다.

현직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되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이 두드 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공과 과를 병렬하는 식의 평가는 참으로 익숙한 일이다. 무릇 세상 어떤 일에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 법이다! 분명 김영삼 대통령은‘87년 체제’가 성립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이 체제를 형식적 민주 주의로 제한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토대로 만들었다. 뒤이어 같은 자리에 오른 김대중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로 가는 길을 연 것은 그런 토대 위에서였고,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은‘양 김’이라고 불리는 게 확실히 어울린다.

현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면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말하는 것은 사태의 반만 이해하거나 사태를 이해할 수 없어 과거로 도망치는 것이다. 도리어 역사를 보면 지난 40여 년 사이에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과거에 민주화운동이 최소한의 형식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면,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다수의 삶을 지키는 싸움으로 위상이 변화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추상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면 오늘날에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고, 이는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경제성장 예상치 및 내년 경제 전망을 보면 한국도 세계경제 위기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노동부 발표조차 늘어난 일자리의 많은 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실토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가‘노동 개악’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권의 업적주의라기보다는 경제 위기를 피해가려는 자본의 선제공격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는 가운데 오직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으로만 이윤을 짜내려는 무능한 자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이건 그 반대편이건 성장이 고용을 낳고 경제를 선순환시킬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과 폭의 성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행밖에는 답이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이행인가다. 폭발적이긴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이행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이행인가? 이런 양자택일 속에서 양 진영 모두에서 이데올로기적 동요가 일어난다. 글로벌 자본가들이 소득불평등에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케인스주의자들이 노동의 권리 확대만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현상 자체가 이미 우리 시대가 거대한 전환을 시작했음을 알린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때 과거를 그냥 불러내서 현재와 대비시키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일일 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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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2호(2015년 12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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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15

[제28호(15년 08월호) |책 머리에| 대항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 / 안효상

대항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

목적론적인 진보사관을 버린 다음 그래도 역사를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삼고자 할 때,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의 ‘보고寶庫’ 를 뒤지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엿보는 것이라면, 역사의 보고를 뒤지는 일은 현재적 과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 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라는 그람시의 말을 따르자면, ‘진보의 위기’란 진보가 거의 죽어가는 데도 이를 대신할 만한 어떤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물론 진보의 위기란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고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에 내놓는 처방은 정치적으로 보자면 ‘패권주의’ 버리는 것이고, 조직적으로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해진 노동자계급을 다시금 하나의 틀로 묶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하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정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도리어 지금의 위기는 커다란 순환이 끝났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대안이 있을 경우에만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대안의 필요성은 우리 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각국의 지배계급 혹은 글로벌 지배계급은 적절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며, 한국의 경우 ‘창조 경제’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 지 오래이다. 이렇게 기존 지배계급 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이며, 이것이 “이상하게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 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출구는 왼쪽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다.

꽤나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사태를 보는 방식은 이렇다. 현재 한국 정치는 53년 체제, 87년 체제, 97년 체제가 중층결정하고 있지만, 중심축은 87년 체제라 할 수 있다. 이때 중심축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모든 정치 행위의 준거점이라는 의미에서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치적 자유 및 제도로서의 정당정치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약간의 요구가 그것이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87년 6월에 뒤이은 7월과 8월이 보여 주었듯이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부문의 목소리가 발화되고 교차되었다. 물론 이 공간은 여전히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

87년 체제가 준거점이라는 마지막 이유는 이 속에서 발전주의 국가 시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87년 체제에서 열린 공간은 모두가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었고, 여기서 발전주의 국가에서는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97년 체제가 겹치게 된다.

물론 97년 체제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서 IMF 등 글로벌 자본의 대행 기구가 설계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 정부와 대기업 등은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극악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체제, 사회체제를 만들어냈다. 다수의 사람을 생존의 극한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이 체제는 분명 인도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위기를 낳았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와 배제는 87년 체제 자체를 위태롭게 했고, 이른바 형해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개가 시차를 두고 벌어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일종의 착시를 낳았고, 결국 사후 인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사후 인식이란 것은 결국 위기 속에서의 인식일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위기에 대해 우리는 ‘진보의 재구성’이 아니라 ‘정치의 귀환’과 ‘주체의 발견’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정치의 귀환은 둘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새로운 보편적 의제를 제출함으로써, 다원화되고 ‘정체성의 정치’로 축소된 정치를 더 넓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 제도화된 정당정치 및 시민사회운동을 넘어서는 운동정치의 시작이다. 이는 곧장 주체의 발견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때 주체란 실정적인 사회계급이나 계층에서 연원하긴 하겠지만 직접적으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주체로 청년층과 불안정 비정규노동자를 지목할 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가능성이지 자동적 형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정치의 귀환과 주체의 발견이라는 문제는 의제로 돌아간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의제가 제출될 때 새로운 주체에 의한 운동정치가 가능하고 이것이 다시 체제 자체를 바꿀 힘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새로운 의제가 제출되기 위해서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이는 대항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때 ‘광주항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는 이와 관련한 실마리를 준다.

 

“민중 만들기The Making of Minjung”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이남희의 책은 대항 공론장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이남희,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 후마니타스, 2015년). 이때 민중은 실정적인 민중은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지식인과 대학생 들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1970년대 노동자운동과 1980년 광주항쟁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재발명했다. 저자는 이를 “민중 프로젝트”라고 하며, 이 프로젝트는 “억압적인 군사정권 및 급속한 산업화, 그리고 민중운동이 스스로 배태한 ‘정치 문화’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 문화인데, 이는 프랑스혁명 연구자인 린헌트의 개념을 빌려 온 것이다. 정치 문화는 “비전, 언어, 코드, 이미지 등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 행위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이 형성된다.” 민중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식인과 대학생 들은 특유한 정치 문화 속에서 하위 대항 공론장을 구성한다. 이 정치 문화와 대항 공론장에는 “실패한 한국 근대사”에 대한 인식부터 억압적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급속한 산업화가 낳은 자본주의의 다양한 모순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공동체적 유토피아까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위 대항 공론장이 어떻게 해서 보편적 정치적 장을 구성하거나 아니면 전환의 준거점이 될 수 있는가”다. 근대사회의 의미 있는 정치적 변동이 대중의 진출 혹은 “틈입”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 특정 사회집단이 구성한 하위 대항 공론장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계기나 의제가 필요하다. 물론 민중 프로젝트는 그 말이 표현하는 것처럼 잠재적으로 그럴 계기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한데, 그것은 지배적인 공론장과의 교집합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항 공론장을 “하위” 공론장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지배적인 공론장과 대결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지배적인 공론장이 실패한 지점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지배층의 실패하고 불완전한 민족주의에 맞서는 민중으로서의 민중, 근대화와 산업화의 그늘로서의 민중, “한국적 민주주의”의 피억압자로서의 민중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항 공론장을 이런 식으로 보면 이른바 대항 이데올로기도 유사한 문제틀로 볼 수 있다. 잊혀져가는 사건 혹은 과거로서의 사건이 되어 버린 ‘광주항쟁’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김정한의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2013)는 사건으로서의 대중 봉기와 대항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 준다.

광주항쟁 혹은 ‘5·18’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풀어낸 이 책의 핵심적인 테제는, 주로 발리바르에 기대어, “대중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회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 보편성을 현세에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중 봉기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mass를 이루고, 상상할 수 없던 행위를 발명하며 잡다한 목소리와 언어를 쏟아내고 비범한 자발성을 표출하는 시공간time-space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5·18을 대중 봉기로 개념화하려는 것은 “대중 봉기를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시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이런 “영웅 신화는 오히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5·18을 탈정치화하고 5·18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정치화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도 새로운 대항적 공론장과 대항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대중 봉기의 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진보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파악하고 새로운 대항적 공론장, 대항 이데올로기,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광주항쟁을 전후로 한 현대사라는 보고의 먼지를 털어낸 후 이를 현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과 겹쳐 놓을 경우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대항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급진적인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때, 형해화된 87년 체제의 새로운 완성을 위한 노력이 새로운 의제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항적 공론장의 구성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민중운동을 뒷받침한 주요한 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실패에 대한 인식이라는 ‘역사 주체성의 위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분명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생태적 위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우선 이를 통한 ‘운동권’의 구성이 요청된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주체를 요청한다. 이를 발견하고 재발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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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8호(2015년 08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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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0, 2015

[칼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와 장기 집권의 꿈

양정필 (제주대 사학과)

박근혜 대통령의 총지휘 하에 정부와 여당 등 현 집권세력은 연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를 위한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교과서의 국정제는 행정고시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즉 입법부와 무관하게 정부 의지대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역사 관련 대학 교수들과 야당, 시민단체 등이 국정제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현 집권세력의 목표대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추진될 것이다. 그 결과물인 국정제 교과서는 2017년 2월쯤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전국의 모든 학생은 그 하나의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명분이나 정당성도 없는 국정제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있다. 그런 측면이 존재한다.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리고 학교의 한국사 수업에서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 아니라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군사 정변’으로 가르친다. 이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국 근대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일파’이면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 된다. 대개 자라나는 세대는 박정희를 이렇게 배울 것이다. 장녀로서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역사교육을 정상화’ 시키려고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미래세대가 ‘올바른 박정희관’을 갖게 하는 것을 ‘당연한 과제’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역사만을 바로잡기 위해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국정제를 추진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더 큰 포석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정제 도입은 집권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한 준비가 아닐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집권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종편 허가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다수의 공공장소에서는 종편이 온종일 방영된다. 집안에 계신 어르신들도 대개 종편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종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같은 내용을 매일 반복해서 듣다 보면 대개의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거기에 동화되게 마련이다. 종편 허가 이후 사회의 보수화가 더욱 진전되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여당이 매번 선거 때마다 대형 악재가 있음에도 승승장구하는 것이 과연 야당의 무능함 때문일까? 야당의 무능, 무력에 더해 종편 이후 사회의 보수화가 그러한 선거 결과를 낳는 데 기여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낮에 종편을 시청할 수 있는 분들은 대개 어르신들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그 시간에 학교에 있다. 종편을 통한 보수적인 의식을 주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학생은 졸업 후 투표권을 가진 젊은 유권자가 되는데, 그들은 여당을 잘 지지하지도 않는다. 혹자는 젊은이들의 이런 반여당 성향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도록 ‘역사교육을 정상화’시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을 ‘당연한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역사교육은 현 집권세력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 예컨대 친일파 대신 독립 운동가를 일제강점기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 구성원 가운데 독립운동가 후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반면 친일파 후손으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인물은 있다. 그리고 1950-80년대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시련기’로 서술되어 있다. 1960-70년대 ‘구국의 혁명,’ ‘조국 근대화,’ ‘산업화’ 등은 ‘민주주의 시련’이란 프레임에 의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대체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은 현 집권세력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는 한국사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가 그렇기 때문이며, 그러한 통설을 교과서에 실은 것이다. 즉 역사 연구자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대개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서술에 대해 현 집권세력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에서 자신들은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권세력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한국사 연구자는 90%가 좌파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에.

현 집권세력이 역사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정도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내세울 인물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내세우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째든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현 집권세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그에게 매달리는 이유이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에게는 박정희만한 상징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는 긍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들과 관련이 없으므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오직 ‘한강의 기적’뿐이다. 그래서 국정 교과서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절대적으로 부각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근현대사를 박정희 전 대통령 중심으로, 달리 말하면 집권세력 중심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로 승격시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칠 것이다. 혹 차기 대선에서도 집권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국정 교과서가 그대로 사용될 것이고, 차기 정권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집권세력과 그들의 역사를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로 배운 젊은 층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그것이 집권세력에 대한 호감과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그렇다면 현 집권세력의 아킬레스건인 젊은 층 공략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종편과 국정 교과서라는 두 날개로 어르신들과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다면 정권 재창출은 훨씬 쉬워지고 장기 집권도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를 추진하는 현 집권세력의 의지에서 정권 재창출, 더 나아가서 장기 집권이라는 그림자를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1410, 2015

가지 않은 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긴축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틀렸다.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초봄에 아테네에서 작성되었다.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리스에서 진정으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려가 큰 시기였다.

시리자 정부는 이미 악명 높은 2월 20일의 합의안에 서명했고, 이는 궁극적으로 패배로 이어졌다. 이 합의안은 그리스에 대한 신규 대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균형 예산을 유지하고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도 약속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그리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더구나 그리스 정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유동성의 풀을 전혀 남겨 놓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 그리스는 오로지 마리오 드라기의 유럽중앙은행(ECB)의 후의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것은 급진적인 사회 변화의 전망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었다. 시리지 의원단의 다수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합의안 승인을 거부했다.

드라기는 지체 없이 행동했다. 점점 그리스의 은행과 공공 부문은 말라갔고, 이로 인해 국가가 뭔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시리자 정부는 몇 달 동안 공공 부문 임금, 연금, 기타 의무적 지불금을 위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숨가쁜 노력을 경주했고, 유럽중앙은행은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나사를 조였다. 결국 시리자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시리자가 권력을 쥔 역사적인 1월 25일 이전에 그리스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

치프라스는 그리스가 유럽통화동맹(EMU)에서 나가지 않으면서 기존의 구제금융 합의안을 제거하기 위해 “강경하게” 협상할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그리스가 협상 과정 동안 살아남고 혹시 구제금융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동성이 규칙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불행하게도 드라기와 유럽중앙은행은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2월 20일 합의 이후 그리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극명하게 대조적인 것이었다. 독립적으로 유동성을 창출하는 것이 하나인데, 물론 이는 유럽통화동맹을 포기하고 국가 화폐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채권자들에게 비참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치프라스는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시도할 수 있었지만 선거 공약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끔찍한 딜레마가 대부분의 시리자 유권자에게도 의원과 장관들에게도 명료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심지어 치프라스 본인도 명료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시리자의 대다수는 “유럽”이 분별력을 찾을 것이고, 타협안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이전에 있었던 그리스 구제금융안보다 나은 협상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노력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2월 20일 합의 이후의 시기 동안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실시하고 국민적 존엄을 회복한다는 생각은 타협을 위한 숨가쁜 시도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이 작성된 배경이다. 그 목표는 그리스가 채권자들의 명령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구제금융 전략에서 채택할 수 있는 일련의 일관되고 명료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기초는 내가 하이너 플라스벡(Heiner Flassbeck)과 함께 한 작업에 나와 있다. 영국의 버소 출판사는 이 작업을 시리자의 1월 25일 승리 하루 전에 책으로(『트로이카에 반대하여』) 출판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유럽통화통맹에는 “불가능한 3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회원국은 부채를 탕감 받을 수 없으며, 긴축을 제거할 수 없고, 유럽통화동맹의 회원국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시리자와 같은 급진적 정부는 자기 사회와 나라의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시하려면 앞의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대안적인 정책을 구성할 수 있는 통합된 방책들을 제시했다. 부채를 탕감하고, 균형 예산을 거부하며, 은행을 국유화하고, 조세 개혁을 통해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노동관계 법률을 회복하고, 공공 투자를 늘리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책들은 유로존이라는 엄격한 틀 내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급진적 정부라면 이를 실시하기 위해 국가 통화를 재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이전 작업에서는 국가 통화로 이행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새로운 통화를 도입하고, 동시에 이어지는 혼란과 그리스의 광범위한 경제적, 사회적 전환을 시작하는 것을 다루는 일에 필요한 행동을 고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이 프로그램은 그리스에 파멸적인 통화 동맹에서 나오는 일관된 길을 제시하는 29개 단계의 윤곽을 그렸다. 이것이 풍부한 경험적, 이론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긴 하지만 로드맵 이상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분석이 가지고 있는 결점과 한계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는 이 프로그램이 작성된 이후 그리스와 유럽에서 많은 것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내용의 몇몇 부분은 경험적으로 좀 더 상세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분석이 아테네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별다른 자원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에서 이에 대한 공적 토론을 벌이려 했던 절망적인 노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 아, 그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이 계획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좌파에서 우파까지 그리스의 정치 계급이 대부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토론이 완전히 부재한 가운데 치프라스는 자신의 끔찍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항상 부정직한 일이긴 했지만 이로 인해 그의 정치적 목적은 분명하게 달성할 수 있게 된다.

7월의 소란스러운 몇 주 동안 치프라스는 새로운 구제금융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가지고 벌인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이 보인 자랑스러운 “반대”를 “찬성”으로 바꾸어냈다. 유럽의 면모를 바꾸어보려고 했던 이 사람은 이제 가혹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고, 국민 주권에 신식민주의적 제약을 가하는 새로운 구제금융안에 서명하기 위해 나섰다. 선동가가 고양이로 바뀐 것이다.

더 나빴던 것은 지난달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한 것이다. 새로운 구제 금융안 수용을 거부한 시리자 내 그룹을 포함해서 새로 만들어진 정치 전선인 민중연합은 의회에 들어가는 데도 실패했다.

민중연합이 패배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유럽통화동맹에서 나오는 것을 포함해서 대안적 프로그램을 확보하게 제시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체적인 대안의 부재하고,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했어야 하는 사람들이 상투적인 해결책을 권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권자들은 대규모로 기권했고, 이로 인해 민중연합은 의회 밖에 머물게 되었다. 좌파는 또 다른 터무니없는 정치적 과오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결국 9월 20일 선거 이후에 공론화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역사적 기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늦긴 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실질적인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실상 최면 상태에 있던 유럽 좌파는 유럽통화동맹이라는 재난과 유로라는 한계 내에서는 급진적인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최근에 유럽적인 “플랜 B”를 가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등의 일부 좌파 정치가들이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렉시트가 문제가 되었을 때 이 그리스 정치가들은 그렉시트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두어야겠다.

유럽 좌파의 자각은 시리자의 실패 및 유럽통화동맹과 유럽연합의 보수적 경직성에 대한 교훈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 환영할 일이다. 현재 유럽에 필요한 것은 유럽통화동맹에서 나가는 것과 관련해서 좀 더 민족적인 차원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도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의 전통과 고유함을 반영하는 좌파적인 접근법이 나오고 난 이후에야 유럽을 실패한 통화동맹의 쇠사슬에서 해방시키고, 자본에 맞서 노동에 유리한 길을 여는 초국가적 접근법을 유럽 좌파가 발전시킬 수 있는 적절한 기초가 놓일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의 사례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민족적인 것은 국제적인 것이 실질적인 기초이다. 민족적 수준에서 발전된 계획 없이는 국제적인 계획을 발전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토대가 없는 일이며, 정치적 태도 이상이 되기 어렵다.

내 생각에는 유럽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민족적 수준에서 필요한 작업을 하게 될 때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서 필수불가결한 도움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가치이며, 유럽의 미래 및 좌파의 역할에 대해 앞으로 전개될 논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thepressproject.gr/details_en.php?aid=82285

코스타 라파비차스는 런던 대학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교수이며, 민중연합 회원이다.
번역: 안효상

610, 2015

권력에 대한 집착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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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킹스 칼리지 교수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는 시리자의 전 중앙위원이었으며, 지금은 민중연합에 속해 있다. 이 인터뷰는 지난 총선 이틀 전인 9월 18일에 클레망틴 아타나시아디스(Clémentine Athanasiadis)와 다비드 두셰(David Douchet)가 프랑스어로 한 것을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가 영어로 번역해서 『자코뱅』에 게재한 것이다.

(https://www.jacobinmag.com/2015/09/greece-austerity-syriza-election-tsipras-varoufakis) 한국어 번역은 안효상이 했으며, 쿠벨라키스의 허락을 받았다.

인터뷰의 전반부는 시리자 정부와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평가이며, 후반부는 민중연합 및 기타 정치세력에 대한 입장을 담고 있다. 9월 20일 선거에서 시리자는 145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다. 민중연합은 2.9퍼센트를 득표해서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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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반 동안의 시리자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시리자는 실패로 끝났다. 재난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난 수십 년 간 있었던 어떤 좌파 정부보다도 심각한 실패이다. 역사에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시리자는 감옥의 엄중 경비 사동을 폐지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이른바 인도주의적 조치를 취했지만 제스처 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모든 것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을 들라면 이제 정치적 환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시리자의 전략은 그리스 사회와 유럽 여론에 유럽연합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악의적인 성격이 있는지를 설득하려 했던 극좌 선동 이상의 것이었다. 시리자는 이것을 실천적으로 비할 바 없이 입증했다.

 

이것이 제3차 양해각서를 받아들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측의 배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치프라스는 자신의 약속을 완전히 저버렸다. 그러나 배신이라는 사고방식은 사태를 주관적인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개별 지도자의 심리라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는 배신을 하겠다는 사전 계획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개인의 실패라기보다는 정치적 파산의 사례라고 본다. 그와 동일한 접근법 및 전략을 추진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같은 결과로 끝날 것이다.

협상을 통해 우호적인 조건으로 긴축과 신자유주의를 끝낼 수 있다고 본 시리자의 환상은 무너졌다. 이 정부는 1월 25일 선출된 이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유럽인들의 야만적인 공격에 직면해 완전히 무장해제당했다. 치프라스는 양보를 거듭하면서 전투마다 패배했고, 7월 13일 제3차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써 완전히 굴복했다. 이것은 7월 5일의 국민투표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그리스 국민은 긴축 계획을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치프라스가 이 투쟁에 돌입했을 때 유럽연합을 물러설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긴축과 양해각서의 종식에 관한 치프라스의 담론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했다. 진짜 문제는 유럽주의적 맹목이다. 시리자 지도부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유럽의 민주주의자들 사이에 있으며, 우리는 합의에 이를 것이다.”

2012년 파리에서 치프라스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의 통역을 해줄 때였다. 우리는 유로 문제를 꺼냈는데, 나는 치프라스에게 유럽의 다른 지도자들이 통화 지역에서 나가는 문제를 치프라스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에서 강제로 나가야 하거나 그들의 요구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반응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그는 유럽연합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모순적이고 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진짜로 맹목이었다. 그는 진짜로 나이브했다.

 

1월에 알렉시스 치프라스에게 투표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번 선거에서 다시 그에게 투표하려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현재 치프라스는 그 이전의 모든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다르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적 신조를 말하고 있다. “대안은 없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지배적인 감정은 거대한 환상 같은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기를 잃었다. 그들은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치프라스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사회당)와 안토니스 사마라스(신민당)가 실패했던 일에 성공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로 하여금 대안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믿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안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제안한 것인데, 유로존을 떠남으로써 화폐 주권을 되찾는 것이다.

 

현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받고 있는 공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정치적으로 180도 바뀌었음에도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의 인기는 신민당 후보인 에반겔로스 메이마라키스(Evangelos Meimarakis)의 인기와 마찬가지이다. 메이마라키스는 하찮은 인물이며 별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안토니스 사마라스가 사임한 후 거의 자동적으로 대표가 되었다. 치프라스의 인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를 구한 한 가지는 그리스의 정치 계급이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치프라스가 차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부채에 관한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일어난 일이 너무 실망스럽게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희망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시스 치프라스도 이제는 사라진 인물이 된 파판드레우 및 사마라스와 같은 운명으로 끝날 것이다.

우선 치프라스는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리오넬 조스팽 같은 인물이 아니다. 조스팽은 실패했을 때 인정하고 물러났다. 치프라스는 좌파 인물이 가지는 윤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났다. 최소한이나마 정직했다면 그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치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리오넬 조스팽은 이보다 훨씬 더 작은 일로 그만두었다.

오늘날 시리자는 돌연변이 정당이며, 팔 수 있는 물건은 알렉시스 치프라스밖에 없다. 이들의 선전은 완전히 인격화되어 있다. 시리자는 무언가를 열심히 했고, 그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의 이미지를 자랑스레 떠들고 있다. 이 사람은 브뤼셀에서 17시간 동안 볼프강 쇼이블레와 앙겔라 메르켈에게 고문당했다.

이런 이야기는 수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실제로 고문당했던 이 나라에서 일종의 외설이다. 시리자는 감성에만 호소할 뿐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없다.

 

치프라스가 다른 정치가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는 확실히 다르다. 신체적으로도 그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2008년부터 알고 있는데, 현재 그를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다. 그의 보디랭귀지가 바뀌었다. 그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미소와 신선함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거짓으로 들린다.

 

왜 시리자 내부에서 당신들의 주장을 말하지 못했는가?

지난 1월 선거 이후 치프라스는 당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들을 내렸다. 나는 중앙위원회에 있었는데, 중앙위원회가 약화되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 1월 25일 이후 중앙위원회는 거의 소집되지 않았다.

2012년 이래 치프라스와 시리자 다수파는 이중 트랙의 담론을 채택했다. 여론에 대해서 그들은 양해각서를 무효화하고 빈곤층을 도와주는 조치를 하는 긴급 프로그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치프라스가 해외여행을 할 때 그의 말은 좀 더 온건했으며, 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며,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치프라스는 영예로운 타협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진심으로 믿었지만, 유럽인들의 완고한 태도를 보고 자신의 도박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시리자 내부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유로존에 머무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현재 민중연합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민중연합은 실망한 시리자 지지자들과 좌파플래폼이 재결성된 것만은 아니다. 민중연합 대표인 에너지부 전 장관인 파나지오티스 라파자니스는 다른 경향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참가하도록 했다. 규모는 매우 작을지 몰라도 정치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는 경향들 말이다. 실제로 시리자 자체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리자는 작은 조직들 및 다른 모든 조직들을 합한 것보다 약간 큰 한 정당이 연합한 것이었다.

오늘 그리스 의회 의장인 조제 콘스탄토풀루가 민중연합에 합류했다. 상징적인 인물인 마놀리스 글레조스(Manolis Glezos)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93세이며 역사적인 “레지스탕스”이다. 1941년 5월 아크로폴리스에서 나치 깃발을 찢어버린 사람이 그이다.

 

민중연합은 야니스 바루파키스와도 접촉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와 계속 접촉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관계를 더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공통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점에 동의하고, 어떤 점에 동의하지 않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말은 너무 모순적이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렵다.

 

민중연합이 의회에 진출할 경우 시리자가 제출하는 안건에 찬성할 것인가?

시리자는 양해각서를 실시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자가 사회적 조치들, 예를 들어 동성애 결혼이나 이민 관련 법안을 완화할 경우 물론 우리는 지지할 것이다.

 

네오나치인 황금새벽당이 이번 선거에서 놀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나?

이 정당이 지지를 더 얻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스 정치 계급의 배신과 파산이라는 맥락에서 대중적 분노의 일부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스의 상황은 극단적이며, 따라서 급진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시리자는 좌익적이고 진보적인 급진주의를 체현할 수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우익 급진주의가 반드시 이런 변화를 이용할 것이다.

 

앞으로 커다란 시위를 예상할 수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알기 어렵다. 사람들은 아직 최근의 양해각서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체가 아직 실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짜로 야만적이고 과격하다.

오늘날의 그리스는 2010년 가을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때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가 그해 5월 양해각서를 수용한 직후였다. 그리스인들은 심각한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경제적 결과가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사회당(Pasok)이 쉽게 2010년 가을의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완전한 붕괴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현재 유럽연합이 그리스에 대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럽연합은 그리스 국민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박해를 계속하기 위해 완전히 실패한 우리 정치인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스는 신자유주의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경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용 쥐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 안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