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2015

[제30호(15년 10월호) |책 머리에|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 안효상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섬나라와 사실상 섬나라에서, 같은 로고를 쓰는 정당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었다. 같은 점 또 하나는 둘 다 당명이 노동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영국의 노동당은 보수당과 집권을 다투는 양당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노동당은 1퍼센트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는 소수 원외정당에 불과하다. 물론 더 큰 차이는 역사다. 전자는 100년이 넘은 정당이지만, 후자는 100년 정당을 꿈꾸지만 1년 앞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끝으로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레미 코빈은 60세가 넘은 ‘구닥다리 좌파’(old left, 당내 우파가 이런 말로 공격했을 때 만약 나이를 거론한 것이었다면 아마 난리법석이었을 것이다)지만, 구교현은 30대말의 알바노동자 출신 신세대(!) 활동가이자 정치가다.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비교는 심심풀이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말기, 경제 위기와 인도주의적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사실상 같은 현상으로 두 사람이 출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민중적인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를 형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물론 지역마다 상황과 맥락이 다르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이런 체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른바 정치계급이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다수의 정치와 삶이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의 판 자체가 먼저 바뀌는 일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이렇게 삶과 체제의 간극, 보통사람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틈이 새로운 정치를 구상할 수 있는 근거다.

물론 양쪽 다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서쪽의 노동당은 그 오랜 역사 속에서 굳을 대로 굳었고, 변화하더라도 블레어 시대의 정치처럼 포스트민주주의 양상의 탈정치의 정치를 노련하게 구사하는 것 이외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그 반대편의 노동당도 감성만 좀 더 왼쪽일 뿐 기존 정당체제의 틀과 감수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철 지난 질문은 집권하기 위해 혹은 대중적 기반을 넓히기 위해 좀 더 왼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좀 더 모던해질 것인가 포스트모던해질 것인가 정도의 질문이 있다.) 앞서 말한 영국 노동당 내 우파의 질문이 이런 식이다.

하지만 연원은 더 오래되지만 짧게만 잡아도 2008년 이후 정치의 양상이 바뀌었고, 대중이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레미 코빈이 등장한 것은 더 많은 분배라는 말로 이해되는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며, 구교현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그저 젊은 정치가의 출현은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안과 동원의 이중 운동일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공감의 감수성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어떤 인격은 그런 믿음과 감수성을 체현하는 공간이자 다른 이들의 그것을 교차시키는 통로여야 한다. 또한 거꾸로 새로운 정치는 거칠게만 보이는 대중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모아내고 또 다시 흐르게 하는 물길이어야 한다. 제레미 코빈은 노동당을 그저 집권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하지 않고 사회운동으로 바꾸어 내겠다고 말했고, 구교현은 자신이 속한 당을 사회운동정당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을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 시대가 저물었다든지, 어떤 흐름의 순환이 끝났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울려 퍼진 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전 시대가 제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 준다. 우리가 열려고 하는 시대를 후대 사람들이 서술하려고 할 때 ‘신자유주의적 소비주의 대중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정치적 대중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우리는 그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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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0호(2015년 10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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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2015

[제26호(15년 06월호) |책 머리에| 분명한 것과 맹목적인 것

분명한 것과 맹목적인 것

몇 달 전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을 다룬 글을 “인간의 철학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천지간에 많다”라는 햄릿의 말로 끝낸 적이 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국민모임’의 창당 선언, 노동당 대표의 진보 결집 행보 등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4·29 재보선이 코앞에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맑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헤게모니 있는 결집은커녕 책임 있고 내용 있는 논의조차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조된 국민모임은 반성한 자칭 진보 인사 정동영의 영입으로 주목을 받으려는 것 이상의 힘을 보여 주지 못했다. 도리어 과거에 보여 준 거간꾼의 모습을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당은 스스로 설정한 판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몫을 인정하지 않고, 면벌부 판촉 사원의 과장 광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진보 결집이라는 금화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면벌부 함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노동당은 연옥에서 튀어나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한편 정의당은 별 소득 없는 꽃놀이패를 즐겨 볼까 하고 있었고, ‘노동정치연대’는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부상을 당해 재활 중이었다. 이러니 재보궐선거가 어떤 계기가 되기보다는 괜한 소란만 만드는 달갑지 않은 사건이 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정동영은 내부의 만류, 외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선언했고, 이른바 진보 진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괜히 당선된 이후를 선거 막판까지 걱정하거나 즐겼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꿈도 꾸지 못할 일”은 그 다음부터다. 우선 정동영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던 노동당 후보가 몇 마디 말로 후보 등록도 하지 않고 사퇴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진보를 결집하고 제1야당을 교체하겠다는 결기로 출마 선언을 한 것이 누가 봐도 우습게 되었다. 결국 정동영에게 양보하기 위해 그런 퍼포먼스를 했다는 건가?

그 다음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한 행보와 사태에 대한 별다른 평가 없이 9월말까지 진보 결집을 완료하겠다는 노동당 당권파의 ‘선언’이 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9월 말이라는 시한은 창당준비원회를 구성한 국민모임의 수명이 다하는 시점이다. 물론 생명을 연장하고 자기 뜻을 펼치려면 창당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정말로 큰 뜻을 펼치고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겠다면 정동영을 영입한 자세로 널리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일을 먼저 하면 된다. 그렇지않고 노동당 당원으로 창당을 하겠다는 건 어떤 셈법인지 모르겠다.

끝으로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책임을 정동영에게 돌리려는 움직임이다. 간단한 질문을 해 보자. 정말로 정동영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 어떻게 움직일지 몰랐다는 말인가? 물론 조직과 노선의 힘으로 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로서는 잘못된 계산일 뿐이다. 자기를 잘못 알았건, 상대방을 잘못 알았건 말이다. 그러니 최소한 자신의 무능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기 않을까?

 

정동영이 국민모임에는 참가하지만 재보궐 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던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입장이 다르지만 굉장히 훌륭한 결정이다, 내년 총선 전까지 이른바 ‘민생 탐방’ 같은 것을 하면서 힘을 모을 수 있겠구나, 그러면 전주 덕진에서 출마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사람을 잘못 보았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를 위한 시사점이 있다. 과거에 항상 제출했던 장기 성장 전략 말이다. 이 자리에서 이것이 왜 잘 안 되었는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로 삼는 것은 이런 노선을 제출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는 그 나름 성공한 판사다. 출세에 관심이 많은 만큼 이를 이룰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렇다고 속물도 아니고 부패한 사람도 아니다. 말 그대로 괜찮은, 성공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원인 모를 죽을병에 걸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에 그는 거듭 질문한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 그것도 남들보다 먼저 죽어야 하는가,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신과 운명이 원망스럽다. 주변 사람들도 원망스럽다.

의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을 뿐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 같고, 아내와 딸도 그의 병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원망을 넘어 저주를 퍼붓고, 그 때문에 또 고통스럽다. 과거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보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나 삶의 구도자였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는 그 상태로 죽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고 빛을 보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삶이 모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걸 바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며 ‘용서해 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보내줘’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환해지고 마음속에서 그를 괴롭혔던 모든 것이 나가 버렸다. 당연히 통증에서도 벗어났다. 게다가 죽음마저 사라졌다. 그가 죽음과 동시에.

정치보다 언제나 더 큰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지금의 진보 정치를 바라보는 게 무리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와 민중을 이야기하고 의지와 희생을 말하는 게 진보정치이지 않았던가? 그 무게를 생각하면 크게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툼을 진정성 있게 이해하자면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출발한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기 때문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일종의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맹목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의 철학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천지간에 많다”라고 할 수 있지만, 삶과 죽음만큼 명료한 게 어디 있을까? 그 명료한 것을 명료하지 않게 하는 맹목을 버리자고 권한다.

 

이번 호가 나올 때 우리는 권문석의 2주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는 사멸했지만 우리의 삶은 그의 불멸을 바라고 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고 불확실함과 단단함이 교대하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비극과 희극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숙함으로 나타나는 비극과 시대착오로 드러나는 소극笑劇 사이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 오솔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 우리는 최저임금 1만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그가 얼마나 조숙했는지를 새삼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위대한 비극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이럴 때 비극보다 훨씬 더 넘쳐나는 소극을 마주하는 우리는 거기서 희망보다는 좌절을 느낀다. 새로운 정치는 어쩔 수 없이 잿더미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소극이 아니라 가벼운 희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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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6호(2015년 06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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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2015

[제29호(15년 09월호) |책 머리에| 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그리스에 관해 쓴 글을 아감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게 사유란 희망 없음[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지난 1월말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환호 속에 집권한 시리자가 지루한 협상과 국민투표라는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채권자들에게 굴복한 모습을 다루는 글의 시작으로 꽤나 어울리는 제사이다.

하지만 그리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장투’에서 ‘장기’란 거의 인생을 바치는 시간이 된 세상, ‘삼포’를 넘어서 사포, 오포, n포 등등 끝없는 포기 그리고 희망 없음의 다른 말인 달관이 세대를 묘사하는 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사회, 그 어떤 몸짓에도 아무런 메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탈정치화된 정치, 목함지뢰에서 시작해서 정신적 대량살상무기인 확성기로 이어진 전투가 유감과 이산가족상봉으로 나아가는 부조리한 대립의 땅. 이런 상황만큼 우리에게 희망 없음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어떤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유란 대안이라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을 낳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유로부터 나온 대안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인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행동이란 말을 들으면 일부는 (소수의) 격렬한 전투와 결기 있는 대립을 떠올릴 것이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행동은 다수가 모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공간을 여는 행동이며, 그런 행동의 울림과 퍼짐이다. 그렇다면 당장 떠올릴 수 있는 행동의 계기는 아마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이런저런 전문가나 언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건 불평등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불평등의 정도 자체가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는 구조화된 불평등에 맞서 개별적인 해결책을 도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투사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적 대변자 주위로 모이거나, 구체적인 적을 대상으로 해서 전선을 형성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았을 때 아마 후자가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전자가 형성되지 않은 채 분노가 모여 커다란 전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분노를 넘어서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하다. 낡은 진보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교차점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다시 사유로 돌아간다. 그동안의 사유에 따르면 지금은 정치 체제 혹은 정당 체제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심원한 위기, 그 위기에 대한 인식의 시대이며, 새로운 정치 세력은 그 위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책적, 정치문화적 대안을 제출함으로써 그러한 인식에 조응할 때 비로소 출현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역사와 구조에 대한 이성적 사유의 산물일 뿐이며, 잘해봐야 손쉬운 대안, 잘못하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우리의 사유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비정규불안정노동자라는 구조화된 주체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는 잠재적인 어떤 것일 뿐이며, 현실정치적으로 일종의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조직화된 사람들 이외에 어디에 정치에 근거가 있는가? 혹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또 다른 조직화가 필요하다 등등. 아직 우리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턱 자체를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발견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문턱은 발견하는 것이지 고안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가장 인간적인 덕목인 꾸준함만이 이 문턱을 찾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집단의 조직이나 흐름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할 때 그 꾸준함은 낳은 것이기도 하다. 꾸준함은 분노의 계기를 찾을 것이고, 그 분노는 공간을 열 것이며, 그 속에서 형성된 신뢰는 대안 속의 주체, 주체 속의 대안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것이 “희망 없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대답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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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9호(2015년 09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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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2015

유로 드림에서 벗어나기

니콜 골케 + 야닌 비슬러(Nicole Gohlke + Janine Wissler)

 

영어 원문

아래 글은 독일 좌파당 연방의회 의원인 니콜 골케와 헤센 주 의원인 야닌 비슬러가 함께 쓴 것이다. 이 글에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좌파당이 ‘사회적 유럽’ 건설이라는 전략에 머물러 있었고, 이에 따라 유로존 외부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사실 치프라스 정부가 트로이카의 요구에 굴복한 이유도 이런 ‘좌파 유럽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제 금융 협상 과정과 그 결말에서 드러났듯이 유로존에 머물면서 긴축을 종식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유럽 좌파 내에서 유럽연합 및 ‘사회적 유럽’이라은 자신의 기본 전략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해졌다. 이 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영어 원문

“모든 곳에서 오히! 모두가 반대라고 말한다!” 그리스 국민을 지지하는 블로큐파이 운동의 슬로건이다.

 

논쟁의 조건

7월 17일 좌파당의 의원단은 그리스에 가해진 최종적인 긴축 프로그램을 거부했다. 53명이 반대투표를 했고, 2명이 기권했다. 좌파당의 표결은 안겔라 메르케, 볼프강 쇼이블레, 지그마르 가브리엘(독일 사민당 소속으로 부총리이자 경제부 장관) 등이 그리스 정부에 가하는 협박에 대해 분명한 ‘반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좌파의 관점에서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우리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2월 좌파당 의원단 다수는 구제금융 연장에 ‘찬성’했고, 소수가 기권했으며, 더 소수가 ‘반대’ 투표를 했다.

물론 표결해야 하는 결정의 무게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월 표결은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막 성립한 그리스 좌파 정부가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에는 특히 중요시되었다. 비록 유럽 기구들의 협박 전술과 신자유주의적 요구가 이미 명백하긴 했지만 말이다.

2월과 달리 이번에 좌파당은 ‘반대’를 했는데, 왜냐하면 독일 정부가 2010년 이래 가장 가혹한 긴축 패키지를 그리스 정부에 강요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시리자 의원 다수는 이 협박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고, 긴축 패키지를 받아들였다.

이 패배는 반성하고, 질문하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경제 위기가 발발한 이래 유럽연합 내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진정한 좌파 정부가 독일 정부 및 독일의 지도를 따르는 기타 유럽 정부에 굴복한 것은 결국 우리의 패배이며, 유럽의 전체 좌파의 패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기회에 지난 몇 달 동안 우리의 정치를 이끌어온 중심적인 전략적 전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 전제란 원칙적으로 유럽연합에 ‘찬성’하고, 유로존을 떠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좌파 정당으로서의 우리의 전략 전체를 재사고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좌파 정당으로서 우리는 유럽 대륙 그리고 특히 그리스에 있는 우리 동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해야만 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다.

시리자를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그들의 정치적 사망을 선고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고, 생산적이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각성을 억누르려는 우리의 정적들이 하려는 일이다. 하지만 판에 박힌 반응을 하면서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광범위하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그리스 국민의 빈곤을 종식하기 위해 시리자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거부해서도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서도 안 된다. 독일인이자 ‘외부인’인 우리는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견해나 비판을 밝힐 권리가 없다고 하는, 일종의 경멸적인 도덕주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교훈도 배울 수 없게 할 것이다.

우리 자신과 그리스의 동지들은 지난 몇 달 동안의 실수와 전략적 성공 모두에 대해 솔직하고 연대에 기초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특히 우리가 유럽의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에 함께 하고, 다가올 유럽 수준의 투쟁을 준비하기 원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떠나는 것이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을 논의하고, 현재의 패배와 대중의 ‘반대’ 투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나쁜 신념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총리로 선출된 이후 계속해서 유럽의 나머지 정상들에게 협박을 받았고, 결국 거기에 굴복했다. 그는 그리스 의회에서 이를 고백했다. 그의 패배는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며, 그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리스 정부의 정치적 전략의 중심 전제 – 유로존에 머무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긴축 정책을 거부하는 것 – 는 그 어떤 결과도 낳지 못했다. 그리고 낳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전략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런 전략을 가진 그리스 동지들을 지지했고, 어떤 중도(middle path)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중도는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전 재무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최근에 유로그룹과의 협상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리스 측의 제안은 이 협상 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후 긴축에 대한 대안 및 유로그룹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양보의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이어졌다.

실제로 이것은 브뤼셀의 비밀 ‘협상’이 협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유로그룹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반복해서 내린 모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시리자가 얻어내려고 한 타협은 유로그룹이 그리스에서 뽑아내려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 그리스 재무장관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의 공식 대표인 – 바루파키스가 유로그룹 회의에서 배제당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후 그는 유로그룹에 대한 세칙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를 통해 유로그룹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개별 회원국에 어떤 권리나 특권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정하다고 가정된 유럽의 게임룰은 독일이 이끄는 유럽이라는 바위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협상과 외교적 대화에 초점을 맞춘 시리자 정부의 전략을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치프라스와 바루파키스의 카리스마도, 아주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협상 전술도 유럽 기구들 내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거나 거의 바꾸지 못했다.

‘일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시리자가 추가적인 시간이나 숨 쉴 여지를 갖도록 하지 못했다. 도리어 협상 과정은 유럽 기구들이 좌파에게 불리하고 적대적인 영역이라는 것, 최소한 약간의 인도주의적인 사회 정책을 구해내겠다는 희망으로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는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메르켈, 쇼이블레, 가브리엘은 그리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는 나머지 유럽의 본보기가 되어야 했다.

이 패배가 알려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많은 총파업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새로운 정부를 선출하고 국민 다수가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해도 상관없다. 이런 일들이 도움이 되거나 그리스 정치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전체 유럽 좌파의 사기를 꺾고 유럽 전역의 사회적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이것이다. 유럽의 좌파가 현재의 패배에서 나오는 교훈에 관한 공개적인 자기비판적인 논쟁을 수행할 때 이러한 사기 저하와 실망에 맞설 수 있다.

 

좌익적인 그렉시트

결국 쇼이블레는 (지그마르 가브리엘과 충돌하면서) 우파로부터 강요된 그렉시트로 그리스 측을 위협했다. ‘우파로부터’의 그렉시트는 그리스가 준비 없이 유로존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통화 교체, 환율 안정, 아주 취약한 위치에서 유럽연합과 부채 재조정 협상을 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쇼이블레와 유럽 자본의 보수적인 분파가 이러한 선택을 심각하게 고려했는지, 혹은 전략적 대안이 없는 상태인 시리자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정치적 협박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유럽의 좌파가 플랜 B에 대해 심각한 태도로 사고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리스 좌파 정부는 대부자들과 벌인 협상에서 어떤 가능한 대안도 강탈당한 셈이다. 플랜 B가 없다는 것은 시리자가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로존에 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 기구들은 그리스 정부에게서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일한 다른 가능성은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 결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랜 B는 무엇일 수 있는가? 이 과제는 제안하는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플랜 B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 중요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있고, 특히 그리스 좌파에서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좌익적인 그렉시트를 위한 상세한 시나리오는 아직 없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은 더 심한 긴축과 빈곤화, 민주적이고 의회적인 역량의 사실상의 포기, 정당으로서의 시리자에 대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시험이다. 유로존에 남아 있게 되면 시리자 정부는 – 최소한 지금 – 긴축에 맞서는 강력한 적에서 그리스에서 트로이카의 독재를 실행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결정하는 좌익적인 그렉시트는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해결책이 아니다. 특히 그것의 경제적 귀결은 좌익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 들 사이에서 매우 논쟁적인 것이다. 현재 경제적 귀결에 대해서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그렉시트는 사회적 분열의 심화, 경제적 붕괴, 그리스 국민의 더 악화된 빈곤화를 의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그렉시트는 새로운 정치적 활동 공간 및 행동의 범위를 연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주도 대부, 자본 도피에 맞서는 국가적 조치, 트로이카의 승인을 얻지 않고도 부자들에게 더 많은 과세를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선택지는 최소한 검토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거기에 관여하는 정당들에게 계산할 수 없는 정치적 위험 부담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로부터 생길 수 있는 실수와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그리스 동지들은 이미 과감하게 생각하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국민투표 직전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때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그리스 은행의 영업을 중단시킨 유럽중앙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내각에 일방적인 대항 조치를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유로존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나가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했다. 1) 그리스 정부가 보증하는 지폐를 발행하거나 (유로 여전히 연동되더라도 분리된) 통화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발표하는 것, 2) 2012년 이래 유럽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권에 대한 헤어컷을 하는 것, 3) 그리스 중앙은행을 통제하는 것.

 

국민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렉시트를 둘러싼 좌파의 논쟁에서는 대개 경제적 논거와 함께 정치적 논거가 등장한다. 다수의 그리스 인은 유로존에 잔류하기를 원하며, 따라서 시리자 정부가 좌익적인 그렉시트를 하는 것은 다수의 바람과 다른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아니면 이것을 양극화된 계급 갈등이라는 시나리오 내의 갈등적인 동학의 하나로 이해해야 하는가?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경우 따라오는 긴축 프로그램과 별도로 그리스 국민에게 유로존에 남아 있기를 원하지 질문할 경우 다수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이 긴축과 정확하게 연관되어 질문될 경우에도 같은 것인가?

그리스 국민이 이전의 해결책(즉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끝내는 것)과 비슷한 것을 원한다고 해서 그렉시트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것이 낳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종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날 경우에 말이다. 이것이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반대’ 투표를 한 61퍼센트의 그리스 국민이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비록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가 그리스 국민이 어떤 통화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고 강조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 국민는 유로존에 남아 있을 것인가(따라서 긴축을 계속하고), 아니면 유럽 ‘기구들’의 제안을 거부할 것인가(따라서 그렉시트의 가능성을 열어둘 것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 미디어는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고, 국민투표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다. 영업을 중단한 은행에 대한 공포와 경고, (거의) 텅 빈 현금지급기에 늘어선 긴 줄의 이미지, 공적 생활의 붕괴 등을 통해 미디어는 그리스 국민투표의 배경으로 종말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유로그룹은 이를 다시 위협 수단으로 사용했다.

국민투표에서 ‘반대’ 투표를 한 61퍼센트가 말한 메시지는 사회적 지위와 투표 행위 사이의 실제적인 관계에 의해 증폭된다. 재정적으로 불리하고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은 협상에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따라서 국민투표는 무조건적으로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이 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목표가 아니고 도리어 그리스의 지배 계급과 자산 계급의 프로젝트라는 것을 가리킨다.

 

공동의 패배

또한 국민투표를 통해 우리의 그리스 동지들의 용감한 행동과 국민투표를 발의하는 주도권이 어떻게 그리스의 사회의 거대한 재정치화와 사회운동의 갱신을 낳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 독일 좌파당 정치가)와 블로큐파이(Blockupy: 2012년 독일에서 시작된 긴축 반대 운동) 연합 대표들이 신타그마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집회에서 수만 명 앞에서 연설할 때 이러한 가능성을 느꼈다. 국민투표를 통한 사회적 동원 및 압도적인 ‘반대’ 투표는 그리스 내에도 정치적 대안과 플랜 B에 대한 커다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스 정부에 있는 우리 동지들은 5개월 동안 국민 다수에게 플랜 B의 효용성을 확신시키려 했다. 5개월 동안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끝낸다는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을 그리스 국민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플랜 B는 우리가 건너려 하지 않았던 레드라인을 다시 설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유로존 내에서 긴축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굴복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절한 대안이 있어야만 한다.

동시에 그것은 바루파키스의 제안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심각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정부 보증 지폐 발행을 준비하고, 새로운 국가 통화를 발행하고, 은행을 국유화하고, 자본 통제를 하는 것이다.

시리자의 우리 동지들이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을 때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에 대하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는 물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대안이 없을 경우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 안팎에서 희망과 열망을 안고 새 정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기도 하다.

플랜 B를 준비하지 못한 실수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러한 전략으로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 싸우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시리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전체 좌파의 책임이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전략적 자원을 활용하거나 활용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우리 모두가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전략적 자원이란 유럽 기구들 및 유로존과 결별하고 이를 통해 좌익적 그렉시트의 시나리오를 전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 동지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이유도 이를 정당화할 근거도 없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게 혹은 더 지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유럽연합 내부의 행동의 공간 및 개혁의 전망에 대한 환상은 그리스보다 독일 좌파 내에 더 널리 퍼져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환상은 지난 유럽 선거에서 우리 당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장되었지만, 일부는 유럽연합 및 그 기구들에 대한 원칙적인 좌익적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런 잘못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공동의 패배는 유럽에서 진정한 좌파 정치는 이제부터 유럽연합 기구들에 맞서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유럽 주변부의 사회주의 정부에게 좌파 정치는 유로그룹의 구속복 외부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럽연합이라는 환상을 깨기

그렇다면 유럽연합 논쟁에서 어떤 질문을 다시 거론해야 하는가? 독일에서 좌파당이 유럽연합을 제국주의 프로젝트라고 비판하는 게 어려운 주된 이유는 유럽연합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배운 역사적 교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서로 싸우던 유럽 열강이 새로운 지정학적 동맹으로 합쳐진다면 유럽 대륙에서 힘의 갈등을 과거지사로 만들 수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들은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유럽연합을 포스트민족적 구성물이자 유럽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이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크게 바꾸긴 했지만 회원국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은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약화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리스의 구제 금융 확대에 관한 협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유럽연합이 공동 통화를 도입했지만 공동 임금, 공동 사회 정책, 공동 예산 정책 등을 도입하지 않은 것은 실수나 우연이 아니며, 유럽연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상황도 아니다. 유로의 구성과 독일의 공격적인 수출 전략은 그리스처럼 경제적으로 취약한 나라에는 해롭다. 특히 여러 나라들이 공동 경제 정책이나 조화로운 경제 정책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유럽연합은 독일 경제와 정치 질서의 힘을 제약하지 않은 채 그저 포스트민족적인 알리바이만 제공하고 있다.

이제부터 폴커 카우더(Volker Kauder, 독일 기민당 정치가)가 몇 달 전에 기쁜 마음으로 선언한 것처럼 유럽에서 ‘독일어’가 말해질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이러한 사태를 감안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로 유럽 프로젝트를 유럽 전체 차원에서 ‘재부팅’하는 게 유럽 내의 계급투쟁에 유용한 요구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유럽연합 정책의 결과는 우리가 독일이나 그리스, 영국이나 포르투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국가가 추동하는 유럽 사회정책의 재구성은 거의 28개 회원국의 동시적인 정치적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주요 나라의 기업과 금융 시장은 여전히 가능한 사회적 개혁의 강력한 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 인민들 사이의 구체적인 연대가 유럽연합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에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유럽 연합이 국민 정부에 의해 공동 통화 지역과 경제 지역으로 상상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긴축에 반대하고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한 다양한 투쟁(이것은 아직 공동의 대의로 단결되어 있지 않다)은 우리에게 좀 더 약속된 전망처럼 보인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구 형태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는 구체적인 투쟁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페기다(Pegida, 독일의 반이슬람주의 정치 단체)에 맞서 싸우고,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에, 그리스에서는 황금새벽당에 맞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제 ‘사회적 유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정책과 정치를 여러 회원국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회적 투쟁의 주제로 만들 때이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사회적 유럽을 위한 사회 운동을 구성할 수 없다. 우리의 정치는 유럽적, 민족적, 지방적, 지역적 운동의 정치적 행위자들과 활동가 들 사이의 범유럽적인 연대의 네트워크를 수립하고,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리스가 유럽 기구들의 명령에 굴복한 지금 유럽 좌파 내의 우리 동지들이 유럽연합 혹은 유로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로존의 회원 자격이라는 것은 긴축 정책의 실행과 강제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슬로건을 실행에 옮기기

그리스의 비극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은 이유를 그리스 자체에서만 혹은 주로 그리스 자체에서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리자의 (일시적인) 실패는 주로 독일 좌파의 역사적인 취약점뿐만 아니라 나머지 유럽에서 적절한 좌파 운동이 부재한 탓이다. 우리는 좌파당이 독일에서 진정한 사회적 재구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더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선거에서 1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 머물러 있으며, 블로큐파이 시위에 겨우 2만 명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난 가을에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최소한 노동조합을 모두 동원할 수 있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노동조합 기반은 취약하다.

이러한 공동 행동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슬로건인 “유럽 위기 체제의 심장부에 맞서 저항하자”에 비추어 보면 많이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대한 ‘반대’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화판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패배로부터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우리 정치의 전제를 재사고하고 결별의 가능성을 과감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극복하기보다는 강화하고, 유럽 국경의 봉쇄를 강화하고, 제국주의 갈등을 강화하는 유럽연합과의 결별 말이다. 정당들을 몇 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어떤 것으로 축소하고, 의회를 기업 로비스트들의 바람을 실현하는 기구로 축소하는 그런 의회주의 정치와의 결별 말이다.

그리스 국민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연대는 독일에서 독일 정부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2007, 2015

|인터뷰| 그리스: 투쟁은 계속된다

세바스티안 버전 +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ebastian Budgen + Stathis Kouvelakis)

영어 원문

이 인터뷰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자코뱅(Jacobin)» 온라인판 7월 15일자로 실린 것이다.

쿠벨라키스는 영국 킹스 칼리지 교수이자 시리자 중앙위원이며, 질문자인 버전은 영국에서 발간되는 «역사유물론»의 편집자이다. 여기 번역된 것은 인터뷰의 일부이다. 인터뷰 전체는 월간 «좌파» 8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원문은 다음을 보라. jacobinmag.com/2015/07/tsipras-varoufakis-kouvelakis-syriza-euro-debt/

영어 원문
koubelakis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

7월 국민투표가 제기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갑작스러운 일로,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꺼내든 와일드카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게 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치프라스가 자신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국민투표는 그리스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빠져버린 덫에서 나오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계속 양보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정부와 치프라스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트로이카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매우 분명했다. 6월 마지막 주가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협상안이 시리자 내부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이며, 여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했다. 좌파플랫폼뿐만 아니라 많은 당원들이, 이 협상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당 지도부와 치프라스에게 전했다. 그 주 마지막 며칠 동안 여론의 변화도 중요했다. 사람들은 이 끝없는 협상이 진절머리가 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트로이카가 그리스 정부에게 굴욕감을 주려 한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다.

정치가로서 승부사라고 할 수 있는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전부터 야니스 바루파키스를 포함한 정부 내 인사들 사이에서 제기되던 것이었다 – 협상 과정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협상 계획을 강화할 수 위한 전술적인 수단으로 생각했다. 국민투표가 공표된 6월 26일 저녁에 있었던, 중요한 내각 회의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이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두 가지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치프라스 및 그와 가까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매우 쉬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은행이 문을 닫기 전에는 그럴 수 있었다. 대개는 국민투표가 70퍼센트 넘는 지지를 받아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생각이었고, 은행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국민투표는 손쉽게 이겼을 것이고, 반대의 정치적 의미는 바뀌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투표가 은행 영업 중단 및 유럽인들의 반응이 만들어낸 대립적이고 극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각 회의에서 있었던 일은 몇몇 사람이 — 부총리인 기아니스 드라가사키스(Giannis Dragasakis)가 이끄는 정부 내 우익이 — 국민투표안에 반대한 것이다. 드라가사키스는 실제로 그리스 측에서 협상 과정 전체를 감독한 인물이다. 신임 재무장관인 유클리드 차칼로토스를 제외한 협상팀 전원이 그의 사람이며, 바루파키스를 제거하기를 원한 내각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 우익은 국민투표가 위험 부담이 높은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치프라스가 이해한 것과는 달리, 국민투표가 매우 대립적인 안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다시 말해서 유럽 측에서 거친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들은 국민투표로 인해 아래로부터 터져 나올 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다른 한편, 좌파플랫폼의 지도자이자 에너지 장관인 파나요티스 라파자니스는 국민투표가 너무 늦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이것이 선전포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상대방이 유동성을 끊어버릴 것이고, 며칠 내에 은행이 문을 닫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거기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장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나는 이렇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정부가 작동해온 방식의 전체 논리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럽이 실제로 반응한 방식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점을 믿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는 시리자의 우익이 자신들이 반대한 것에 대해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국민투표가 있었던 주에 내각 수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치프라스는 드라가사키스 및 기타 사람들에게 국민투표를 철회하라는 심한 압력을 받았다. 물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다음 조치는 우익이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조치는 그때까지 추구했던 노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틀 내에서 다소는 전술적인 수단이었다.

 

국민투표 전 수요일에 일종의 후퇴가 있었는데, 그걸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 수요일에 일부는 내부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아테네는 치프라스가 국민투표를 철회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들끓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하는 연설에서 국민투표가 더 나은 협상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것은 협상의 종결이 아니라 더 나은 조건에서 지속되는 협상이라고 했다. 그는 그 주 내내 그런 노선에 충실했다.

공적 관계라는 관점에서조차 그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치프라스가 국민에게 거부하라고 한 일련의 제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제기했지만, 국민투표 준비 기간에는 치프라스가 국민에게 거부하라고 했던 제안보다 몇 가지 측면에서 더 나쁜 제안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채권자에게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리즘과 혼돈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치프라스가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국민투표가 가지는 의미를 분명히 하려했는지에 관한 당신의 질문에 답하면서 치프라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재구성하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절대적으로 분명한 것은 국민투표가 그런 의도 이상의 힘을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치프라스와 정부는 국민투표에 의해 창출된 사태에 압도당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수단을 써서 악마를 다시 상자에 넣으려 했다. 치프라스가 드라가사키스의 압력을 다룬 방식은 — 수요일이 그렇게 중요했던 이유 — 그들의 노선을 받아들이고 유로그룹에 불명예스러운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를 보내기 전에 새로운 대출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국민투표 이후에 벌어질 사태를 향한 길을 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국민투표를 철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국민투표에 어떤 근거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는 융커 패키지를 포함한 긴축 조치에 맞서 싸우는 것에 대해 말해야 했고, 트로이카의 협박과 그가 받은 최후통첩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물론 그 당시 계기를 포착한, 아래로부터 발전한 힘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게 했고, 전진하게 했고, 트로이카와 맞서 싸우게 했다.

이것은 내부 모순의 결과로 위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 결국 지도자의 의도를 넘어서서 어떤 힘들을 해방시키는 데 이른다는 것의 주된 예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어제의 패배 이후 지금 치프라스가 직면한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국민투표 이후 이런 조치가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면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민투표가 없었던 일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완전한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투표는 있었고, 치프라스가 국민의 의사(mandate)를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여론과 그리스 사회에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커다란 논쟁거리인데, 치프라스가 마키아벨리적인 의미에서 책략의 천재인지 아니면 사건에 압도당한 흥분한 도박사인지 말해 달라. 당신은 후자의 관점에 동의하는가?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면 나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치프라스와 당 지도부가 처음부터 아주 일관되게 동일한 노선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협상 과정에서 ‘현실주의적’ 접근법과 수사학적 단호함을 결합함으로써 유럽에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들은 그런 노선의 덫에 빠져들었고, 덫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다른 대안 전략이 없었다. 그들은 일관되게 다른 전략을 거부했으며, 여전히 시간이 있었을 때에도 다른 접근법을 현실적으로 실시할 수 없도록 했다.

바루파키스는 며칠 전에 «뉴스테이츠먼(New Statesman)»과 한 인터뷰에서 자기를 포함한 소규모 팀이 국민투표로 가는 일주일 동안 대안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은행의 국가 통제, IOU(차용증서)의 발행, 그리스 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단절 등 점진적인 유로존 이탈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은 일이었고, 내각의 나머지 거의 모든 경제팀이 거부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드라가사키스였다. 물론 치프라스는 이런 결정을 승인했다.

따라서 치프라스 노선의 일관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할 때 ‘배신’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국민의 의지에 대한 배신이며, 국민은 자신들이 배신당했고 느끼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보통 배신이라는 말은 특정 시점에 스스로 해왔던 것을 부인하는 의식적인 결정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생각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치프라스가 협상에 중심으로 둔 접근법을 밀고 나가고 선의를 보여준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그가 일관되게 다른 대안적인 길은 없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숨겨진 아젠다’도 없이 충실한 ‘유럽인’으로 보여 진다면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그는 몇 달 동안 점증하는 압력에 맞서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국민투표라든가 모스크바를 방문한다든가 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일 했다. 그는 이것이 쟁점에 접근하는 올바른 혼합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일관되게 이런 노선을 추구할 때 나쁜 선택 이외에는 남는 것이 없는 위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략의 뿌리에 대해 말해보자. 그것은 어느 정도로 이데올로기적 맹목이며, 어느 정도로 순수한 무지인가?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시리자 정부가 많은 수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오랫동안 현대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을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수준 모두에서 연구한 사람들과 정치적 활동가인 사람들이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나이브하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뿌리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고도 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인가?

정부 내의 두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두 명의 주류 경제학가인 드라가사키스와 기오르고스 스타타키스가 이끄는 정부의 우익이다. 다른 하나는 핵심 지도부인 치프라스와 그 주변 인물이다.

전자는 처음부터 일관된 노선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로 나이브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이 양해각서를 파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드라가사키스가 처음부터 전반적인 접근 논리를 변화시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이유이다. 그는 시리자가 적절한 경제 강령을 가지려는 모든 시도를 사보타지했고, 심지어 당의 다수가 승인한 틀 내에서 그런 것을 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는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양해각서의 개정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무대에 너무 많이 나서지 않으면서 유럽과 자신이 자유롭게 협상하기를 원했다. 그는 협상팀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는데, 특히 바루파키스가 밀려나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2013년 여름, 그는 상당한 소문을 낳은,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그가 제안했던 것은 시리자 강령의 완화된 판본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강령을 제안했다. 그것은 신민당이 맺었던 기존 협정을 약간 개선한 것이었다.

이제 다른 접근법, 즉 치프라스의 접근법을 보자. 그것은 좌파유럽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 생각에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유클리드 차칼로토스이다. 그는 자신을 충실한 맑스주의자, 유럽공산주의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년 동안 같은 조직 안에 있었다. 그의 이데올로기와 전망을 — 그와 비슷한 학계 인물이 정부에 참여하면서 정부도 이런 이데올로기와 전망을 가지고 있다 —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그 자신의 말은 4월에 프랑스 웹사이트 메디아파르(Mediapar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부에 들어간 이래, 가장 놀랐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은 학자이며, 자기 일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이다. 브뤼셀에 갔을 때 자신은 진지하게 준비를 했다, 자신은 자기가 펼칠 주장을 모두 준비했고, 마찬가지로 잘 준비된 반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끊임없이 규칙과 절차 등등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는 것이다.

차칼로토스는 당시 토론 수준이 매우 낮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바루파키스도 «뉴스테이츠먼»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경험에 대해 말한다. 물론 그의 스타일은 차칼로토스보다 좀 더 대립적이긴 하다. 이로부터 이 사람들은 학술 토론회 같은 방식으로 유럽과 대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훌륭한 발표문을 들고 가고, 마찬가지로 훌륭한 반박 발표문이 제출되고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좌파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좌파는 선의로 충만한 사람들로 주로 채워져 있지만 이들은 현실 정치의 장에서는 완전히 무능력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유럽주의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이 가져온 정신적 황폐화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것은 끝까지 이 사람들이 트로이카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파트너’ 사이에서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고, 민주적 위임 혹은 경제학의 논증에 기초한 합리적인 토론의 가능성을 존중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파키스의 전반적인 접근법이 좀 더 대립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태로 끝났다. 물론 그의 접근법은 게임 이론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그가 말했던 것은 아주 끝까지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후퇴하지 않을 경우 감당해야 할 피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후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여기서 한 사람은 발가락 한 개를 잃는 고통과 피해를 당했지만 다른 사람은 두 다리를 잃었다. 따라서 초보적인 현실주의가 결여되었다는 것, 이것은 오늘날 좌파가 직면한 주요한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오늘날 좌파가 직면한 주요한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무능이다.

 

시리자 지도부의 중앙 분파에 있는 이 유럽주의와 관련해서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무엇인가? 이들은 자유주의 심지어 네그리적인 연방주의자도 아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버마스나 발리바르의 영향이 있는가?

내 생각에는 이 경우에 하버마스보다 발리바르가 좀 더 적실성이 있어 보인다. 다시 한 번 차칼로토스의 말을 생각해 보자. 그는 유럽집행위원회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의 매우 치욕적인 역제안을 받은 바로 다음날 [영국 «가디언»의] 폴 메이슨과 인터뷰를 했다. 메이슨이 유로화에 대해 묻자 차칼로토스는 유로존 이탈은 대파국이며, 유럽은 각국 통화의 경쟁 및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발흥 속에 1930년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사이의 선택만이 있다. 기존의 틀을 받아들이면서 ‘유럽인’으로 있거나 —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국민국가라는 낡은 현실에 대해 다소는 진전된 것이다 — ‘반유럽인’이 되거나. 이것은 민족주의, 반동적이고 후퇴하는 움직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이 정당화되는 취약한 방식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와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나은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것도 아니고 유럽 기구들의 신자유주의적 지향과 하향식 구조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있지만, 그 협조적인 틀 내에서 움직여야 하고 그 틀 외부에 더 좋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렉시트를 1930년대로의 회귀 혹은 일종의 묵시록이라고 비난하는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지도부가 좌파유럽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덫에 빠져 있다는 징후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에 대한 이런 온건한 태도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원래 입장과 다른 것이 아닌가? 비록 일부 지식인들이 지도부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풀란차스를 이용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풀란차스는 현대 자본주의 내의 사회 계급들에 관한 책의 1부에서 유럽 통합에 관해 말했다. 여기서 그는 자본의 국제화 과정에 대해 분석한다. 그는 분명 유럽경제공동체를 전후 미국의 새로운 구조적 헤게모니라고 생각한 틀 내에서 유럽 자본이 국제화하는 제국주의적 형태의 예로 생각했다.

 

1607, 2015

[제25호(15년 05월호) |책 머리에| 칼 폴라니와 기본소득 / 안효상

칼 폴라니와 기본소득

얼마 전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의 아시아 지부 격인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 연구소의 개소식에 맞추어 칼 폴라니의 딸인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폴라니 레빗 교수는 칼 폴라니의 유산 상속자이며, 이번에 서울을 방문한 것도 이 자격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폴라니 레빗 교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발전경제학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경제학자이며,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폴라니 레빗 교수를 초청하여 집담회를 가졌다. 집담회 주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칼 폴라니에서 기본소득까지’였다.

칼 폴라니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상황을 ‘이중 운동’과 ‘거대한 전환’이라는 말로 포착하고자 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나 바람과 달리,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전면에 나서서, 폴라니 식 용어를 사용하자면 사회를 경제에 묻어 버린embedded 현상은 예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의 조건이 경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그 원리로 사회 전체를 재조직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자기 조정적인 시장’에 대한 환상 속에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꾸어 내려 했으며, 이 속에서 폴라니가 ‘허구적 상품’이라고 부른 노동, 자연, 화폐까지 상품화했다. 그 결과는 사회가 경제에 묻어 들어간 것이며, 이 건조한 표현을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파괴’였다.

하지만 20세기 전반기 들어 이런 시장의 진군에 맞선 사회의 ‘자발적 저항’이 있었고, 결국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세력이 승리했다. 이 승리의 결과가 뉴딜, 소비에트 체제, 파시즘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파시즘은 패배했지만, 어쨌든 그 이후 ‘자기 조정적인 시장’은 사회를 파괴하므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모두의 합의였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신자유주의의 진전 및 그 파산 속에서 칼 폴라니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왜 사회를 보호하는 운동이 없거나 미약한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시리자의 승리, 스페인 포데모스의 진전은 우리가 이중 운동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런 폴라니의 논의와 기본소득은 어떤 관계인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칼 폴라니는 기본소득 자체에 대해 알지 못했고, 따라서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언급한 적도 없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그리고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의 대답은 상황을 고려한 논리적 추측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면 다음과 같다. 폴라니 레빗은 아버지의 사회철학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사회의 실제성reality of society’이다.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사회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본성상 사회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조정적인 시장의 진군은 불가피하게 사회의 자발적인 저항에 부딪히는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서 폴라니 레빗은 세 가지 차원, 즉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아버지가 기본소득을 지지했을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경제적 차원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받은 기본소득이 소비재의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생산자들에게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점점 높아지는 세상에서 노동시장에서의 고용만으로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적 차원은 정의의 문제와 관련된다. 사회적 평등과 응집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경우에만 그 사회는 여러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정치적 차원은 기본소득이 사회 내의 반대파 혹은 비순응주의자들non-conformists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칼 폴라니는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관찰 속에서 고도로 발전한 기술 사회가 전체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 이로부터 그는 자유의 보호를 위해 비순응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칼 폴라니로부터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도출한 후 폴라니 레빗 교수는 환경 위기의 문제로부터 ‘탈성장’의 문제의식과 기본소득을 연관시키기도 한다. 물론 칼 폴라니의 주장으로부터 꼭 기본소득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조정적인 시장의 진군과 거기에 맞서는 사회의 저항, 환경적 위기, 기술 발전의 정도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기본소득이 유력한 대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가 한국을 방문한 시기는 세월호 참사 1주기와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벌어진 때이기도 하다. 전자는 도덕적 분노와 연대감을 표출하는 대중의 운동으로 표현되었고(되고 있고), 후자는 노동자운동의 두 가지 분할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 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원 사이의 분할말이다. 차벽에 막힌 무력감이나 민주노총의 무능력과 현대차 노조의 무개념을 뒤로 하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몇 가지 과제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대중적 운동의원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특정한 계급을 보편적인 주체로 보는 형이상학을 버릴 경우, 그리고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의 실제성을 승인할 경우, 거대한 대중의 흐름은 도덕적 분노와 여기에 기초한 연대감에서 비롯될 것이다. 두 번째로 노동자계급운동의 표현 기관으로서의 총연맹이 사회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의제의 설정을 통한 사회적 노동운동으로의 전환과 이를 가능케 하는 노동자운동 기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기업과 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노동자운동을 수동적 부문으로, 더 나아가 반동적 부문으로 몰아가는 주술이 될 것이다. 끝으로 도덕적 분노를 끌어들인 다음 다시 분출하고, 이른바 다양한 이해관계를 접합하는 통로로서의 ‘운동정당’의 필요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오래된 습관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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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5호(2015년 05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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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 2015

왜 긴축정책은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할 수 없나?

유승경

국민들에게 긴축안을 거부할 것을 호소했던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지도자들의 압력에 못 이겨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더욱 강화된 긴축방안에 합의해버렸다. 치프라스는 그렉시트(Grexit)보다는 구제금융이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유로존 탈출에 대한 플랜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에 따른 혼란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6년 간의 구제금융 과정이 증명해주듯이 긴축정책은 구제금융이 주어진다하더라도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긴축 정책의 딜레마

한 나라의 부채부담의 정도는 통상적으로 GDP 대비 정부부채규모의 비율로 측정한다. 유로존의 지도자들은 이 비율을 낮추기 위해 그리스 정부에게 지출을 줄여 재정 흑자를 낼 것을 강요해 왔다. 정부 부채는 재정 적자가 누적된 것이며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재정 흑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긴축정책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경제침체기에 정부가 지출을 축소하면 경기가 더욱 위축되어 국민들의 고통 부담에도 불구하고 GDP가 감소하고 세수가 감소하여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과정이 그러하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구제금융이 지원되고 만기가 연장되더라도(설령 상당한 정도의 부채 탕감이 있더라도) 그리스가 국가 부채를 차질 없이 해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민간(가계와 기업)이나 정부가 부채를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완전히 청산할 때까지 최소한 이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저축해야 한다. 소득에서 필수적 지출을 하고 남은 금액이 최소한 해당 기간에 변제해야 하는 이자보다 많아야 원금을 줄여갈 수 있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부채를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외부의 도움을 받더라도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원리를 국가에 적용해 보면 국가 부채를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명목 경제성장률(경제성장률 + 인플레이션율)이 국채의 수익률(이자율)보다 높아야 한다. 한 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7%를 넘어서면 일반적으로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이 정도의 차입 비용을 해결하려면 명목 경제성장률이 7%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율이 2%라고 한다면 그 나라는 최소한 연간 5% 이상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달성해야 하는데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부채 해결에 많은 자금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높은 경제성장을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남유럽의 재정위기국가들은 그동안 국채의 평균이자율이 4%를 상회했지만 경제성장률은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1.0%에도 못 미쳤으며 물가상승률은 극심한 수요 부족으로 인해 디플레이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부채를 해결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정책이다. 실질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의 합이 국채조달 비용을 상회한다면 자력으로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추진 중인 긴축정책은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경제를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유로존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유로존의 위기는 현재 남유럽의 부채위기라는 양상을 띠고 있다. 유럽의 남쪽 주변국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정부, 가계, 기업 모두 많은 부채를 지고 있다. 주변국들이 정상적인 성장 궤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

채권자들과 합의하여 부채 규모를 축소하고 상환 일정을 유예한다 하더라도 부채를 완전히 청산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세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려야 하며 민간(기업과 가계)도 지출을 줄이고 더 많이 저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민간이 모두 저축을 늘리고 수요를 줄이면 어디서 성장을 이끌 수요를 창출할 것인가? 대외 수요, 즉 수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는 것이 정부와 민간이 동시에 부채를 감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출은 성장의 유일한 활로인 것이다.

수출을 늘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와 같이 긴축정책을 통해 내적 절하 (임금, 물가 깎기)를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국민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

또 다른 방법은 평가절하이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시켜 수출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다른 곳을 찾아가는 관광객을 싼 값의 서비스로 다시 불러 들여야 한다. 주변국들의 수출 대부분이 유로존 내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로의 평가절하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출을 실제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유로존에서 벗어나 평가절하를 단행해야 한다.

두 방안 중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한쪽은 미래의 비전조차 보이지 않지만 두 번째 방법은 지금은 힘들어도 저 멀리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이 보인다. 결국 남는 문제는 혼란을 최대한 줄이면서 어떻게 유로존에서 이탈하는가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출은 엄청난 금융적 충격을 줄 것이다. 화폐를 부활하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사실 이 과정을 그려보면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수술이 불가피하다. 미룬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유승경
월간『좌파』 편집위원

1407, 2015

긴축에 대한 대안: 그리스 위기에 대한 좌파플랫폼(시리자 내부의 좌파 블록)의 대안

영문요약본

이 글은 7월 10일 시리자 의원 총회에서 제출된 좌파플랫폼의 성명서 요약본이다.

영어로 된 이 요약본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www.jacobinmag.com/2015/07/tsipras-euro-debt-default-grexit

영문요약본

이 중요한 시기에 시리자 정부는 긴축 프로그램, 탈규제, 사영화를 강요하려고 하는 ‘유럽연합기구들’의 협박을 거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시리자 정부는 ‘유럽연합기구들’에게 그리고 그리스 국민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긴축을 끝내고, 경제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경제 회복을 이끌고, 의미 있는 부채 탕감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타협이 없다면 시리자 정부는 진보적인 대안적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적인 길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채 상환을 중단하는 것이다.

채권자들의 압력과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리스를 유로존에 벗어나게 하는 과정이 심각하고 복잡한 일이라고 해도, 정부와 시리자는 이를 체계적으로 준비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부와 당 내에 퍼져 있는 비극적인 폐쇄 상태 때문에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정부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유럽연합기구들’의 협박에 대응할 수 있고, 또 대응해야 한다. 더 이상의 긴축이 없고, 유동성을 공급하며, 부채 무효화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냐 아니면 유로존에서 나가고 정의롭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부채 상환을 중단할 것인가?

필요하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 통화로 나아가는 이행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가능성과 최소한의 유동이 있다. 이는 정부가 그리스 국민에게 정부의 신뢰를 심어주고, 특히 다음과 같은 조치를 채택하는 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 은행 체제의 급진적인 재조직화, 사회적 통제하의 국유화, 성장을 향한 은행의 재정향.
  •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결하고, 사회적 필요를 만족시키고, 사회 상태를 재조직하고, 경제를 침체의 악순환에서 빼내기 위해 재정 긴축(흑자 우선 및 균형 예산)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
  • 유로에서 벗어나고 주요한 부채를 무효화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초기 절차를 시행하는 것.   노동자 계급과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생산, 성장, 사회적 세력 균형의 변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로 나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분명히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한 과정이며, 이는 그리스가 융커의 패키지를 포함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유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사회 변화, 민족 주권의 회복, 성장과 사회 정의를 결합한 경제적 진보의 과정에서 첫 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해야만 한다. 그것은 생산의 재구조화, 투자의 촉진, 복지국가와 법의 지배의 재구축에 기초한 전반적인 전략의 일부이다.

시리자 정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대부자들의 비타협적인 행동에 직면한 지금 유로에서 나가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공정한 선택이다.

끝으로 유로에서 나가는 것은 강력한 국내외의 기득권층과 대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는 시리자의 단호한 결정이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유로존에서 나갈 때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 화폐 주권의 회복. 이는 자동적으로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중앙은행(ECB)가 그리스에 얽어맨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 공적 투자에 기초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적 투자도 허용하는 것에 기초한 발전 계획의 재수립. 그리스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의 새롭고 생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실현은 국내 저축과 결합한 유동성이 새롭게 자리 잡으면 가능할 것이다.
  • 수입 생산물이 장악한 국내 시장의 통제권을 다시 획득한다면 그리스 경제의 척추인 중소 규모 기업체의 역할이 다시 활성화되고 제고될 것이다. 동시에 국민 통화의 도입에 의해 수출이 촉진될 것이다.
  • 국가는 재정 정책과 화폐 정책 수준에서 유럽화폐동맹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국가는 유동성 공급에 대한 비합리적인 억제에서 벗어나 긴축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는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는 재정적 정의 및 부와 소득의 재분배를 가져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초기 몇 달 간 어려움을 겪은 후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다.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수요가 자극되면 7년의 위기 동안 쓰이지 않았던 자원이 양해각서의 재난적인 정책을 뒤집기 위해 빠르게 동원될 수 있다. 이것은 실업의 체계적인 감소 및 소득의 상승을 열 것이다.

끝으로 유럽화폐동맹을 떠나더라도 그리스는 덜 유럽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중심부 나라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이는 스웨덴과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 이미 제출된 선택지이다. 유럽화폐동맹에서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반대로 국제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할 것이다. 그것은 독립과 존엄에 기초한 역할이며, 양해각서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명령한 의미 없는 천민의 지위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유럽화폐동맹에서 나가는 과정은 물론 정치적 정당성과 대중의 능동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 며칠 전에 실시된 국민투표는 국내외 기성 질서가 제기한 도전이 무엇이든지간에 모든 긴축 조치를 영원히 거부하겠다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준 일이다.

이제 유럽연합이 국민투표 이후에 보낸 최후통첩에서 드러난 것처럼 채무 구제에 대한 합리적인 제안, 긴축 폐지, 그리스 경제와 사회의 구제 등의 제안을 유럽연합이 거부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유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번역 : 안효상

607, 2015

새로운 정치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안효상

 

지난 6월 28일 노동당 당 대회는 진보결집을 위한 4자(노동당,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논의의 계속 추진을 당원 총투표에 부의하자는 안건을 부결했다. 형식적으로는 총투표안을 거부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지금처럼 추진되는 통합 혹은 이렇게 모이는 통합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며칠 후 나경채 대표가 사퇴하였다. 이로써 노동당을 포함하는 통합은 당분간 테이블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경채 대표가 사퇴하기 하루 전인 7월 2일 흥미로운 모임이 있었다. 4자 대표들이 민주노총 서울지하철 노조 군자차량기지를 방문해서 노조 집행부와 간담회를 가지는 한편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동참촉구 서명 운동’을 벌였다. 노동당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설정한 시간표, 즉 9월까지 진보 세력을 결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천호선 대표만 진보세력이 다 뭉치는 것에 회의적인 발언을 했고, 나머지 세 조직의 대표는 기존 주장을 변주하는 발언을 했다. 나경채 대표는 “약속대로 9월 안에 새롭고 더 큰 진보정당이 뭉칠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겠다”고 했으며, 김세균 대표는 “진보결집 운동을 메인 스트림으로 만들고, 큰 흐름 속에서 잡아나간다면 힘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양경규 대표도 약간의 주저함이 있기는 했지만 “어떤 흐름으로 가든 진보가 책임 있게 큰 흐름을 형성해야 현재의 구도를 돌파할 수 있기 때문에 당과 당의 문제가 아니라도 많은 세력이 함께 하고, 새롭게 확장하는 형태로 등장하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목소리를 보면 진보 결집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며, 노동당 내부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는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 자신의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진보 결집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맥락 없는 말만큼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강한 어조라도 부여되면 말 그대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맥락 없이 강한 대표적인 말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널리 애용된 것은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이다. 주로 노동운동계 일부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다시 합쳐야 하는 주장을 할 때 되풀이된 말이다. 이들의 논법은 진보정당의 분열로 진보정당의 주요지지 기반인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진보 정치가 위기가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부당전제가 있다. 하나는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의 약화는 ‘분당’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이것이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기보다는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민권을 얻었던 바로 그때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에 대해 민주노총은 자기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보신당이 그저 권력 투쟁에 패배한 집단의 독자 세력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가 다양한 새로운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진보신당 창당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보신당은 2008년 ‘촛불 정국’에서 그렇기 커다란 대중의 열기를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며, 퀴어 문화 축제의 참가자가 그 복장 그대로 이번 당 대회 대의원으로 참가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주류 진보는 제출하는 의제나 보이는 행태 모두 기성의 정치 세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으며, 여기에 선거 제도까지 맞물려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이른바 진보대연합 구상이 제출되어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졌고, ‘야권 연대’ 전술을 통해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성공에 뒤이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정의당 창당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그 약간의 성공보다 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이 불꽃놀이를 마치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는 신호탄으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 진보가 무조건 합쳐야 한다는 정신적 패권주의자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 끼어들 수 없었던 과거의 인물들, 진보신당을 버리고 가는 것이 꺼림칙했던 사람들 등등이 그들이다. 이 신호탄이 당장 밝게 빛난 것은 아니었지만,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은 또 다른 신호탄이 되었다. 그것도 기존 진보의 통합을 통한 ‘제1야당 교체’라는 과대망상을 연출할 수 있는 신호탄 말이다.
이런 과대망상은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전신으로 하는 노동당에 대한 과소평가를 수반했다. 당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대중적 영향력은 전혀 없으며, 돈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전망도 없다, 등등. 하지만 이들이 가장 과소평가한 것은 노동당을 의미 있는 정치 세력을 지키고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였다. 그 결과가 지난 노동당 당 대회의 결정이다.

이쯤해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앞서 말한 군자차량기지 모임에서 했다는 양경규 대표의 말을 듣고서였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사회당이 있었지만 우리가 사회당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민주노동당이라는 큰 흐름에서 진보정치가 정리해 왔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거기에는 양쪽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큰 흐름’이었다는 것만 이야기하지, 왜 큰 흐름일 수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과 ‘민족해방파’로 불리는 흐름이 민주노동당으로 합류하거나 그 기반이 되었고, ‘비판적 지지’의 새로운 판본인 ‘야권 연대’가 한몫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성공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물론 야권 연대는 반대편에서 보면 정권 교체를 위한 ‘개혁 세력’의 선택이었다.)
당시 사회당은 다른 입장에서 ‘노동자, 민중의 독자 정치세력화’를 도모했을 뿐이다. 물론 그 구성원들이 보인 경험과 능력의 부족은 언제나 뼈저린 반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적절한 때에 시대에 맞는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는 태도까지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물론 우리 시대가 자본주의의 황금기 혹은 제3인터내셔널의 시기라면 사회당은 ‘기억하지 못하는’ 세력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위기 시대이고 생태적 위기의 시대이다. 이런 시절에 노동 중심성이니 완전 고용이니 하는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눈을 감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반해 지금 노동당을 구성하는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변화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거와 결별하고자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노동당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사실상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해서든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사람들과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필요로 하지 낡은 세력이 낡은 공간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물론 낡은 세력도 새로운 공간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 공간을 확장하기보다는 자기 경계 안으로 넣어보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일만 할 뿐이다. 그렇기 오늘날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무능과 아집으로 망한 것이다. 아마 보수나 우파도 그럴 것이다. 이 무능을 넘어서는 곳에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이고, 이미 시작되고 있다.

* 이 글에 인용된 4자 대표들의 말은 7월 2일자 『참세상』기사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잘못 인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글 전체의 논지를 해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효상
월간『좌파』 편집위원

107, 2015

2015 노동당 당대회(後) : (2) 정치가 사라진 장소에서 정치하는 당으로

정진우

2015년 노동당 정기당대회(이하, 당대회)가 무사히 끝났다. 체온을 측정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증상이 의심되어 입장하지 못한 대의원은 다행히 한명도 없다.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지혜와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시기다.

무사히 치러낸 당대회, 그것의 결과는 안녕한가?

격렬한 토론과는 대조적으로 표결과 결과 발표는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의장단이 선출되어 직권으로 상정한 특별결의를 포함해 많은 안건이 다루어졌지만, 역시 안팎으로 메인 안건은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4자 대표 공동선언)이다. 당 대변인실의 공식 브리핑 제목은 “노동당, 진보결집 위한 당원 총투표 부의안 부결”이고, 기사를 낸 언론사 두 곳은 “노동당 당대회, 진보결집 반대”(레디앙)와 “노동당, 정의당-국민모임과 통합 추진 중단 결정”을 제목으로 뽑았다.

“서로의 진심과 진보정당의 꿈, 걸어야 할 길, 시행할 시기의 차이 등이 드러난 호소의 시간”(참세상)은 끝났지만, 서로를 향했던 간절한 호소가 이제 다시 어디를 향할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말과 글은 여전히 쏟아지지만, 당대회 후 가장 주목받는 입장은 아무래도 당대표의 것이다. 모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를 제외한다면, 첫 공식 발언이 게시되었다.

당대표로서 4자연대에 기초한 진보결집을 정치방침으로 세웠으나, 2011년 9.4 당대회, 2012년 2.19 당대회 결과가 조직에 남긴 상흔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나경채 대표, 6기 26차 대표단회의 모두발언 중)

<2011년 9.4 당대회>는 많은 이들이 개최 일시조차 기억할 정도인데, 진보신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합당하지 않는 것을 최종 결정한 날이다. 곧바로 당시 조승수 대표는 사퇴하고, 상당수의 당원들이 탈당하여 통합진보당에 합류한다. <2012년 2.19 당대회>는 당 홈페이지(노동당 역사)를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한데, “진보신당은 당대회를 통해 재석대의원 204명 중 189명의 찬성으로 사회당과의 합당을 승인합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3년여가 지나 또 하나의 당대회 결정으로 진보결집 추진(4자의 9월창당)이 거부된 당대표는 이렇게 두 가지 사건을 ‘상흔’의 계기로 꼽는다. 통합진보당에 합류하지 않은 것, 그리고 사회당과의 합당을 정한 조직의 결정,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

우리가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상흔’(傷痕)은 상처를 입은 자리에 남은 흔적이다. 흔적으로 남은 것, 아니 채 아물지도 못한 상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조차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9.4> 또는 <2.19>이 아니라, <6.23>(노동당 선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강령을 통과시킨 정기당대회, 2013.6.23.) 또는 <7.21>(당헌과 노동당이라는 새로운 당명을 결정한 임시당대회, 2013.7.1.)을 기억하는 것, 또 다른 어떤 사건들은 당시의 장면 하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대화를 단절시키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E. H. 카>라는 구절이 널리 알려졌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덧붙여지는 조언이다. 오히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는 것. 미래에 대한 전망과 변화에 대한 신념이 현재와 과거의 사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

또 한 차례 당대회의 전과 후. ‘호소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대화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호소의 시간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우리에게 상흔이 남아있는 이유를 우리가 만든 결정의 문제로 되돌리는 것은 또 다른 패배를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못한 것은 호소가 아니다. 실패한 것은 결과 발표가 아니다. 각기 다른 호소의 의미, 갈등의 본질, 전과 후를 넘어서 새롭게 다가서는 ‘목적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은 과거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은 역사적인 대화이다.

미래의 목적들과 과거의 사건들 사이의 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전과 후를 넘어 역사적인 대화를 만들어낼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는 그것을 결정에 대한 승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상흔’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애절한 소망일뿐이다. 미래의 목적들이 현재의 간절한 호소를 다시 담아낼 때, 그것은 실제로 (서서히) 등장할 것이며 과거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주어(주체)들을 마침내 변화시킬 것이다.

그간 공적으로 제대로 언급된 바 없는 <2.19>가 갑작스레 ‘사건’의 기억으로 회자될 듯 하다. 고백하자면, 그날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상황의 날이다. 석 달 만에 보석으로 출소한 기념으로 송경동 시인과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한참을 울먹이느라 제대로 인사말을 잇지 못했다. 참지 못했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손수 만든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우리 청년 당원들의 모습. 눈물은 이미 시작되었다. 당의 결정은 당과 당의 통합이었지만, 나를 통합시킨 것은 사람과 사람이었다. 거리에서 크레인으로, 승리의 기쁨조차 질식시키던 쇠창살 문을 열고 다시 돌아와 만난 사람들. 갇힌 곳에서 끄적거려 내보낸 편지(“함께 당을 한다는 것”)는 시가 되고, 눈물이 되고, 마침내 ‘미래의 목적들’이 되어 서서히 다가왔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특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특수하게 확장하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먼저 찾아가 지켜주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에 대해 때론 화를 내고 바로 잡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용기와 힘을 주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궃은 일 일수록 먼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배제된 자들과 사랑하고 진심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함께 당을 한다는 것> 중에서)

함께 당을 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전편(『4자대표 공동선언에서 창당으로 – 수정되지 않는 기획』)에서 <자크 랑시에르>가 “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배제된 자들의 주체화>라고 정의”한 것을 언급하자, 노동당 당원인 ‘원시’ 님은 이렇게 지적한다.(그는 고맙게도 손수 만든 도서를 해외에서 감옥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랑시에르의 난제는, 그 배제된 자들끼리 싸우고 갈등한다는 점을 해명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차이와 동일성, 분화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크 랑시에르>가 저술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길)에 대한 소개를 인용해 환기해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란 “지배적 질서 속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존재들 스스로의 드러냄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전태일과 그의 동료 노동자들의 행위는 사업주가 보기에, 또 치안 논리가 보기에는 주제넘은 짓일지 모르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신분이나 자격, 자기 처지의 한계를 넘어 말과 행동을 통해 그것을 지나침으로써 ‘정치’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랑시에르에게 본래의 ‘정치’란 바로 이것이다. 즉 권력의 행사에서 정당한 상대자로 올곧게 자리서는 것이야말로 그것이다.”

문제는 지적한대로 스스로 드러냄의 과정을 만드는 주체, 즉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의 주어에 대한 것이다.(주체의 분화와 재형성을 포함하여) 우리를 보이게 하지 않는 ‘저들’, 우리를 대신해 말하겠다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의 정치가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다. 줄곧 강조해 왔던 표현으로 말한다면, 정치가 사라진 장소에서 우리의 (새로운) 정치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들’과 ‘그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영역, 이른바 ‘치안’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시작되는 조건이다. 분화되고 단절되는 곳, 현 체제가 유지되고 작동되는 시스템의 내부와 경계에서. 지금 우리가 버티며 교전하는 곳에서 또 다른 우리는 주어가 되고, 발견되고, 교통하며, 연결될 것이다.

당대회 후, 정치하는 당을 만드는 기획과 전략으로

 

노동과 정치개혁을 중심으로 의제 전략을 밀고 나간다는 결정(노동당 2016년 총선 기본방침)은 정치활동의 연속이자 분기점으로 ‘선거’를 계획하고, 당의 정치활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국민투표 운동, 특히 <맘편히장사하고픈모임>(맘상모), <알바노조>와 함께 만드는 최저임금1만원 운동이 주목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만남과 실천이 ‘정치’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획과 전략, 만남과 실천이 없이 어떠한 정치도 시작될 수 없다. (당대회에서 노동당 만세를 외친 대의원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나의 고통, 나의 분노, 우리의 고통, 우리의 분노가 있기 때문에 투쟁하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국가,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다.

당대회 후. 과거와 직면할 미래의 목적들은 다가오는가? 우리는 ‘정치하는 당’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는 의 속편인가? 와 , 또 무언가의 역사를 상흔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새로운 출발선이 될 것인가?

당을 한다는 것에 대해 묻고 답할 시간이다. 정치하는 당을 만드는 기획과 전략으로.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또 다른 우리와의 만남이 우리 자신을 바꾸고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정치에 대한 신념으로. 저들과 맞서 싸우며 세상을 바꾸는 당당함으로.

글쓴이 정진우는 현재 다음의 몇 가지 일을 맡고 있다.
최저임금1만원 모든 노동자권리보장 노동당 운동본부장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민주노총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정책위원

628노동당당대회

[사진설명] 노동당 2015정기당대회_6.28강서구민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