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0, 2015

[칼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와 장기 집권의 꿈

양정필 (제주대 사학과)

박근혜 대통령의 총지휘 하에 정부와 여당 등 현 집권세력은 연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를 위한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교과서의 국정제는 행정고시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즉 입법부와 무관하게 정부 의지대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국의 역사 관련 대학 교수들과 야당, 시민단체 등이 국정제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현 집권세력의 목표대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추진될 것이다. 그 결과물인 국정제 교과서는 2017년 2월쯤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전국의 모든 학생은 그 하나의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고 명분이나 정당성도 없는 국정제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있다. 그런 측면이 존재한다.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리고 학교의 한국사 수업에서는 5.16을 ‘구국의 혁명’이 아니라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군사 정변’으로 가르친다. 이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국 근대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일파’이면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 된다. 대개 자라나는 세대는 박정희를 이렇게 배울 것이다. 장녀로서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역사교육을 정상화’ 시키려고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미래세대가 ‘올바른 박정희관’을 갖게 하는 것을 ‘당연한 과제’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역사만을 바로잡기 위해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국정제를 추진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더 큰 포석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정제 도입은 집권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한 준비가 아닐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집권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종편 허가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다수의 공공장소에서는 종편이 온종일 방영된다. 집안에 계신 어르신들도 대개 종편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종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같은 내용을 매일 반복해서 듣다 보면 대개의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거기에 동화되게 마련이다. 종편 허가 이후 사회의 보수화가 더욱 진전되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여당이 매번 선거 때마다 대형 악재가 있음에도 승승장구하는 것이 과연 야당의 무능함 때문일까? 야당의 무능, 무력에 더해 종편 이후 사회의 보수화가 그러한 선거 결과를 낳는 데 기여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낮에 종편을 시청할 수 있는 분들은 대개 어르신들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그 시간에 학교에 있다. 종편을 통한 보수적인 의식을 주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학생은 졸업 후 투표권을 가진 젊은 유권자가 되는데, 그들은 여당을 잘 지지하지도 않는다. 혹자는 젊은이들의 이런 반여당 성향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도록 ‘역사교육을 정상화’시켜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을 ‘당연한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역사교육은 현 집권세력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 예컨대 친일파 대신 독립 운동가를 일제강점기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 구성원 가운데 독립운동가 후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반면 친일파 후손으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인물은 있다. 그리고 1950-80년대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시련기’로 서술되어 있다. 1960-70년대 ‘구국의 혁명,’ ‘조국 근대화,’ ‘산업화’ 등은 ‘민주주의 시련’이란 프레임에 의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대체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은 현 집권세력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는 한국사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가 그렇기 때문이며, 그러한 통설을 교과서에 실은 것이다. 즉 역사 연구자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대개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서술에 대해 현 집권세력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에서 자신들은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권세력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한국사 연구자는 90%가 좌파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에서 배제시켰기 때문에.

현 집권세력이 역사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정도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내세울 인물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내세우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째든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현 집권세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그에게 매달리는 이유이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에게는 박정희만한 상징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는 긍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집권세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들과 관련이 없으므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오직 ‘한강의 기적’뿐이다. 그래서 국정 교과서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절대적으로 부각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근현대사를 박정희 전 대통령 중심으로, 달리 말하면 집권세력 중심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로 승격시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칠 것이다. 혹 차기 대선에서도 집권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국정 교과서가 그대로 사용될 것이고, 차기 정권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집권세력과 그들의 역사를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로 배운 젊은 층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그것이 집권세력에 대한 호감과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그렇다면 현 집권세력의 아킬레스건인 젊은 층 공략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종편과 국정 교과서라는 두 날개로 어르신들과 젊은 층을 공략할 수 있다면 정권 재창출은 훨씬 쉬워지고 장기 집권도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를 추진하는 현 집권세력의 의지에서 정권 재창출, 더 나아가서 장기 집권이라는 그림자를 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1410, 2015

가지 않은 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긴축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틀렸다.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초봄에 아테네에서 작성되었다.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과 달리 그리스에서 진정으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려가 큰 시기였다.

시리자 정부는 이미 악명 높은 2월 20일의 합의안에 서명했고, 이는 궁극적으로 패배로 이어졌다. 이 합의안은 그리스에 대한 신규 대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균형 예산을 유지하고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도 약속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그리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고, 더구나 그리스 정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유동성의 풀을 전혀 남겨 놓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 그리스는 오로지 마리오 드라기의 유럽중앙은행(ECB)의 후의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것은 급진적인 사회 변화의 전망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었다. 시리지 의원단의 다수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합의안 승인을 거부했다.

드라기는 지체 없이 행동했다. 점점 그리스의 은행과 공공 부문은 말라갔고, 이로 인해 국가가 뭔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시리자 정부는 몇 달 동안 공공 부문 임금, 연금, 기타 의무적 지불금을 위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숨가쁜 노력을 경주했고, 유럽중앙은행은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나사를 조였다. 결국 시리자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시리자가 권력을 쥔 역사적인 1월 25일 이전에 그리스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

치프라스는 그리스가 유럽통화동맹(EMU)에서 나가지 않으면서 기존의 구제금융 합의안을 제거하기 위해 “강경하게” 협상할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그리스가 협상 과정 동안 살아남고 혹시 구제금융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동성이 규칙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불행하게도 드라기와 유럽중앙은행은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2월 20일 합의 이후 그리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극명하게 대조적인 것이었다. 독립적으로 유동성을 창출하는 것이 하나인데, 물론 이는 유럽통화동맹을 포기하고 국가 화폐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채권자들에게 비참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치프라스는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시도할 수 있었지만 선거 공약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끔찍한 딜레마가 대부분의 시리자 유권자에게도 의원과 장관들에게도 명료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심지어 치프라스 본인도 명료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시리자의 대다수는 “유럽”이 분별력을 찾을 것이고, 타협안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이전에 있었던 그리스 구제금융안보다 나은 협상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노력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2월 20일 합의 이후의 시기 동안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실시하고 국민적 존엄을 회복한다는 생각은 타협을 위한 숨가쁜 시도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이 작성된 배경이다. 그 목표는 그리스가 채권자들의 명령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구제금융 전략에서 채택할 수 있는 일련의 일관되고 명료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기초는 내가 하이너 플라스벡(Heiner Flassbeck)과 함께 한 작업에 나와 있다. 영국의 버소 출판사는 이 작업을 시리자의 1월 25일 승리 하루 전에 책으로(『트로이카에 반대하여』) 출판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유럽통화통맹에는 “불가능한 3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회원국은 부채를 탕감 받을 수 없으며, 긴축을 제거할 수 없고, 유럽통화동맹의 회원국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시리자와 같은 급진적 정부는 자기 사회와 나라의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시하려면 앞의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대안적인 정책을 구성할 수 있는 통합된 방책들을 제시했다. 부채를 탕감하고, 균형 예산을 거부하며, 은행을 국유화하고, 조세 개혁을 통해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노동관계 법률을 회복하고, 공공 투자를 늘리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책들은 유로존이라는 엄격한 틀 내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급진적 정부라면 이를 실시하기 위해 국가 통화를 재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이전 작업에서는 국가 통화로 이행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새로운 통화를 도입하고, 동시에 이어지는 혼란과 그리스의 광범위한 경제적, 사회적 전환을 시작하는 것을 다루는 일에 필요한 행동을 고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이 프로그램은 그리스에 파멸적인 통화 동맹에서 나오는 일관된 길을 제시하는 29개 단계의 윤곽을 그렸다. 이것이 풍부한 경험적, 이론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긴 하지만 로드맵 이상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분석이 가지고 있는 결점과 한계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는 이 프로그램이 작성된 이후 그리스와 유럽에서 많은 것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내용의 몇몇 부분은 경험적으로 좀 더 상세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분석이 아테네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별다른 자원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에서 이에 대한 공적 토론을 벌이려 했던 절망적인 노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 아, 그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이 계획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좌파에서 우파까지 그리스의 정치 계급이 대부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토론이 완전히 부재한 가운데 치프라스는 자신의 끔찍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항상 부정직한 일이긴 했지만 이로 인해 그의 정치적 목적은 분명하게 달성할 수 있게 된다.

7월의 소란스러운 몇 주 동안 치프라스는 새로운 구제금융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가지고 벌인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이 보인 자랑스러운 “반대”를 “찬성”으로 바꾸어냈다. 유럽의 면모를 바꾸어보려고 했던 이 사람은 이제 가혹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고, 국민 주권에 신식민주의적 제약을 가하는 새로운 구제금융안에 서명하기 위해 나섰다. 선동가가 고양이로 바뀐 것이다.

더 나빴던 것은 지난달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한 것이다. 새로운 구제 금융안 수용을 거부한 시리자 내 그룹을 포함해서 새로 만들어진 정치 전선인 민중연합은 의회에 들어가는 데도 실패했다.

민중연합이 패배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유럽통화동맹에서 나오는 것을 포함해서 대안적 프로그램을 확보하게 제시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체적인 대안의 부재하고,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했어야 하는 사람들이 상투적인 해결책을 권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권자들은 대규모로 기권했고, 이로 인해 민중연합은 의회 밖에 머물게 되었다. 좌파는 또 다른 터무니없는 정치적 과오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결국 9월 20일 선거 이후에 공론화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역사적 기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늦긴 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실질적인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실상 최면 상태에 있던 유럽 좌파는 유럽통화동맹이라는 재난과 유로라는 한계 내에서는 급진적인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최근에 유럽적인 “플랜 B”를 가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등의 일부 좌파 정치가들이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렉시트가 문제가 되었을 때 이 그리스 정치가들은 그렉시트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두어야겠다.

유럽 좌파의 자각은 시리자의 실패 및 유럽통화동맹과 유럽연합의 보수적 경직성에 대한 교훈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 환영할 일이다. 현재 유럽에 필요한 것은 유럽통화동맹에서 나가는 것과 관련해서 좀 더 민족적인 차원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도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나라의 전통과 고유함을 반영하는 좌파적인 접근법이 나오고 난 이후에야 유럽을 실패한 통화동맹의 쇠사슬에서 해방시키고, 자본에 맞서 노동에 유리한 길을 여는 초국가적 접근법을 유럽 좌파가 발전시킬 수 있는 적절한 기초가 놓일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의 사례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민족적인 것은 국제적인 것이 실질적인 기초이다. 민족적 수준에서 발전된 계획 없이는 국제적인 계획을 발전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토대가 없는 일이며, 정치적 태도 이상이 되기 어렵다.

내 생각에는 유럽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민족적 수준에서 필요한 작업을 하게 될 때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서 필수불가결한 도움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가치이며, 유럽의 미래 및 좌파의 역할에 대해 앞으로 전개될 논쟁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 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thepressproject.gr/details_en.php?aid=82285

코스타 라파비차스는 런던 대학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교수이며, 민중연합 회원이다.
번역: 안효상

610, 2015

권력에 대한 집착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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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킹스 칼리지 교수인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는 시리자의 전 중앙위원이었으며, 지금은 민중연합에 속해 있다. 이 인터뷰는 지난 총선 이틀 전인 9월 18일에 클레망틴 아타나시아디스(Clémentine Athanasiadis)와 다비드 두셰(David Douchet)가 프랑스어로 한 것을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가 영어로 번역해서 『자코뱅』에 게재한 것이다.

(https://www.jacobinmag.com/2015/09/greece-austerity-syriza-election-tsipras-varoufakis) 한국어 번역은 안효상이 했으며, 쿠벨라키스의 허락을 받았다.

인터뷰의 전반부는 시리자 정부와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평가이며, 후반부는 민중연합 및 기타 정치세력에 대한 입장을 담고 있다. 9월 20일 선거에서 시리자는 145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다. 민중연합은 2.9퍼센트를 득표해서 의회 진출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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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반 동안의 시리자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시리자는 실패로 끝났다. 재난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지난 수십 년 간 있었던 어떤 좌파 정부보다도 심각한 실패이다. 역사에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시리자는 감옥의 엄중 경비 사동을 폐지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이른바 인도주의적 조치를 취했지만 제스처 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모든 것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을 들라면 이제 정치적 환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시리자의 전략은 그리스 사회와 유럽 여론에 유럽연합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악의적인 성격이 있는지를 설득하려 했던 극좌 선동 이상의 것이었다. 시리자는 이것을 실천적으로 비할 바 없이 입증했다.

 

이것이 제3차 양해각서를 받아들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측의 배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치프라스는 자신의 약속을 완전히 저버렸다. 그러나 배신이라는 사고방식은 사태를 주관적인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개별 지도자의 심리라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그는 배신을 하겠다는 사전 계획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개인의 실패라기보다는 정치적 파산의 사례라고 본다. 그와 동일한 접근법 및 전략을 추진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같은 결과로 끝날 것이다.

협상을 통해 우호적인 조건으로 긴축과 신자유주의를 끝낼 수 있다고 본 시리자의 환상은 무너졌다. 이 정부는 1월 25일 선출된 이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유럽인들의 야만적인 공격에 직면해 완전히 무장해제당했다. 치프라스는 양보를 거듭하면서 전투마다 패배했고, 7월 13일 제3차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써 완전히 굴복했다. 이것은 7월 5일의 국민투표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그리스 국민은 긴축 계획을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치프라스가 이 투쟁에 돌입했을 때 유럽연합을 물러설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긴축과 양해각서의 종식에 관한 치프라스의 담론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했다. 진짜 문제는 유럽주의적 맹목이다. 시리자 지도부의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유럽의 민주주의자들 사이에 있으며, 우리는 합의에 이를 것이다.”

2012년 파리에서 치프라스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의 통역을 해줄 때였다. 우리는 유로 문제를 꺼냈는데, 나는 치프라스에게 유럽의 다른 지도자들이 통화 지역에서 나가는 문제를 치프라스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에서 강제로 나가야 하거나 그들의 요구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반응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그는 유럽연합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모순적이고 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진짜로 맹목이었다. 그는 진짜로 나이브했다.

 

1월에 알렉시스 치프라스에게 투표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번 선거에서 다시 그에게 투표하려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현재 치프라스는 그 이전의 모든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다르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적 신조를 말하고 있다. “대안은 없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지배적인 감정은 거대한 환상 같은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기를 잃었다. 그들은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치프라스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사회당)와 안토니스 사마라스(신민당)가 실패했던 일에 성공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로 하여금 대안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믿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안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제안한 것인데, 유로존을 떠남으로써 화폐 주권을 되찾는 것이다.

 

현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받고 있는 공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정치적으로 180도 바뀌었음에도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의 인기는 신민당 후보인 에반겔로스 메이마라키스(Evangelos Meimarakis)의 인기와 마찬가지이다. 메이마라키스는 하찮은 인물이며 별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안토니스 사마라스가 사임한 후 거의 자동적으로 대표가 되었다. 치프라스의 인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를 구한 한 가지는 그리스의 정치 계급이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치프라스가 차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부채에 관한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일어난 일이 너무 실망스럽게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희망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시스 치프라스도 이제는 사라진 인물이 된 파판드레우 및 사마라스와 같은 운명으로 끝날 것이다.

우선 치프라스는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리오넬 조스팽 같은 인물이 아니다. 조스팽은 실패했을 때 인정하고 물러났다. 치프라스는 좌파 인물이 가지는 윤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났다. 최소한이나마 정직했다면 그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치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리오넬 조스팽은 이보다 훨씬 더 작은 일로 그만두었다.

오늘날 시리자는 돌연변이 정당이며, 팔 수 있는 물건은 알렉시스 치프라스밖에 없다. 이들의 선전은 완전히 인격화되어 있다. 시리자는 무언가를 열심히 했고, 그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의 이미지를 자랑스레 떠들고 있다. 이 사람은 브뤼셀에서 17시간 동안 볼프강 쇼이블레와 앙겔라 메르켈에게 고문당했다.

이런 이야기는 수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실제로 고문당했던 이 나라에서 일종의 외설이다. 시리자는 감성에만 호소할 뿐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없다.

 

치프라스가 다른 정치가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는 확실히 다르다. 신체적으로도 그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2008년부터 알고 있는데, 현재 그를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다. 그의 보디랭귀지가 바뀌었다. 그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미소와 신선함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거짓으로 들린다.

 

왜 시리자 내부에서 당신들의 주장을 말하지 못했는가?

지난 1월 선거 이후 치프라스는 당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들을 내렸다. 나는 중앙위원회에 있었는데, 중앙위원회가 약화되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 1월 25일 이후 중앙위원회는 거의 소집되지 않았다.

2012년 이래 치프라스와 시리자 다수파는 이중 트랙의 담론을 채택했다. 여론에 대해서 그들은 양해각서를 무효화하고 빈곤층을 도와주는 조치를 하는 긴급 프로그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치프라스가 해외여행을 할 때 그의 말은 좀 더 온건했으며, 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며,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치프라스는 영예로운 타협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진심으로 믿었지만, 유럽인들의 완고한 태도를 보고 자신의 도박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시리자 내부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유로존에 머무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현재 민중연합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민중연합은 실망한 시리자 지지자들과 좌파플래폼이 재결성된 것만은 아니다. 민중연합 대표인 에너지부 전 장관인 파나지오티스 라파자니스는 다른 경향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참가하도록 했다. 규모는 매우 작을지 몰라도 정치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는 경향들 말이다. 실제로 시리자 자체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리자는 작은 조직들 및 다른 모든 조직들을 합한 것보다 약간 큰 한 정당이 연합한 것이었다.

오늘 그리스 의회 의장인 조제 콘스탄토풀루가 민중연합에 합류했다. 상징적인 인물인 마놀리스 글레조스(Manolis Glezos)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93세이며 역사적인 “레지스탕스”이다. 1941년 5월 아크로폴리스에서 나치 깃발을 찢어버린 사람이 그이다.

 

민중연합은 야니스 바루파키스와도 접촉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와 계속 접촉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관계를 더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공통점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점에 동의하고, 어떤 점에 동의하지 않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말은 너무 모순적이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렵다.

 

민중연합이 의회에 진출할 경우 시리자가 제출하는 안건에 찬성할 것인가?

시리자는 양해각서를 실시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자가 사회적 조치들, 예를 들어 동성애 결혼이나 이민 관련 법안을 완화할 경우 물론 우리는 지지할 것이다.

 

네오나치인 황금새벽당이 이번 선거에서 놀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나?

이 정당이 지지를 더 얻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스 정치 계급의 배신과 파산이라는 맥락에서 대중적 분노의 일부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스의 상황은 극단적이며, 따라서 급진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시리자는 좌익적이고 진보적인 급진주의를 체현할 수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우익 급진주의가 반드시 이런 변화를 이용할 것이다.

 

앞으로 커다란 시위를 예상할 수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알기 어렵다. 사람들은 아직 최근의 양해각서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체가 아직 실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짜로 야만적이고 과격하다.

오늘날의 그리스는 2010년 가을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이때는 게오르게 파판드레우가 그해 5월 양해각서를 수용한 직후였다. 그리스인들은 심각한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경제적 결과가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사회당(Pasok)이 쉽게 2010년 가을의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완전한 붕괴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현재 유럽연합이 그리스에 대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럽연합은 그리스 국민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박해를 계속하기 위해 완전히 실패한 우리 정치인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스는 신자유주의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경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용 쥐 역할을 하고 있다.

번역: 안효상

510, 2015

[제30호(15년 10월호) |책 머리에|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 안효상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섬나라와 사실상 섬나라에서, 같은 로고를 쓰는 정당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었다. 같은 점 또 하나는 둘 다 당명이 노동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영국의 노동당은 보수당과 집권을 다투는 양당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노동당은 1퍼센트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는 소수 원외정당에 불과하다. 물론 더 큰 차이는 역사다. 전자는 100년이 넘은 정당이지만, 후자는 100년 정당을 꿈꾸지만 1년 앞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끝으로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레미 코빈은 60세가 넘은 ‘구닥다리 좌파’(old left, 당내 우파가 이런 말로 공격했을 때 만약 나이를 거론한 것이었다면 아마 난리법석이었을 것이다)지만, 구교현은 30대말의 알바노동자 출신 신세대(!) 활동가이자 정치가다.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비교는 심심풀이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말기, 경제 위기와 인도주의적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사실상 같은 현상으로 두 사람이 출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민중적인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를 형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물론 지역마다 상황과 맥락이 다르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이런 체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른바 정치계급이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다수의 정치와 삶이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의 판 자체가 먼저 바뀌는 일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이렇게 삶과 체제의 간극, 보통사람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틈이 새로운 정치를 구상할 수 있는 근거다.

물론 양쪽 다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서쪽의 노동당은 그 오랜 역사 속에서 굳을 대로 굳었고, 변화하더라도 블레어 시대의 정치처럼 포스트민주주의 양상의 탈정치의 정치를 노련하게 구사하는 것 이외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그 반대편의 노동당도 감성만 좀 더 왼쪽일 뿐 기존 정당체제의 틀과 감수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철 지난 질문은 집권하기 위해 혹은 대중적 기반을 넓히기 위해 좀 더 왼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좀 더 모던해질 것인가 포스트모던해질 것인가 정도의 질문이 있다.) 앞서 말한 영국 노동당 내 우파의 질문이 이런 식이다.

하지만 연원은 더 오래되지만 짧게만 잡아도 2008년 이후 정치의 양상이 바뀌었고, 대중이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레미 코빈이 등장한 것은 더 많은 분배라는 말로 이해되는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며, 구교현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그저 젊은 정치가의 출현은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안과 동원의 이중 운동일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공감의 감수성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어떤 인격은 그런 믿음과 감수성을 체현하는 공간이자 다른 이들의 그것을 교차시키는 통로여야 한다. 또한 거꾸로 새로운 정치는 거칠게만 보이는 대중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모아내고 또 다시 흐르게 하는 물길이어야 한다. 제레미 코빈은 노동당을 그저 집권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하지 않고 사회운동으로 바꾸어 내겠다고 말했고, 구교현은 자신이 속한 당을 사회운동정당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을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 시대가 저물었다든지, 어떤 흐름의 순환이 끝났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울려 퍼진 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전 시대가 제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 준다. 우리가 열려고 하는 시대를 후대 사람들이 서술하려고 할 때 ‘신자유주의적 소비주의 대중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정치적 대중의 시대가 열렸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우리는 그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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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30호(2015년 10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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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2015

[제27호(15년 07월호) |책 머리에| 새로운 정치는 운동정당의 구성으로 / 안효상

새로운 정치는 운동정당의 구성으로

 

역시 단기적인 성공, 즉 내년 총선에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느냐 아닌가의 문제였다고 해야 하나?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했던 ‘배신’ 운운하는 듣기 민망한 말에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 결집’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격앙된 감성적 호소가 오버랩되는 것은 이런 공통점 때문이다.

그런 감성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해도 다른 입장으로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른바 힘의 논리로 사태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힘의 논리로 사태가 진행된다고 할 때 새누리당은 지연의 과정을 겪을 것이며, 노동당은 금세 결과가 보일 것이다. 그건 물론 위치의 차이 때문이고, 그 위치로 인해 ‘결집파’가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 때문이다.

겉으로는 ‘진보정치 1기의 종식’이니 ‘진보의 (가치) 재구성’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회고적으로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향수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때 향수는 그저 감성적인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노선, 더 나아가 세계관이라 할 만한 것을 반영한다. 그건 크게 세 가지 구성 요소로 되어 있다. 우선 조직된 노동,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총 중심의 사고가 있다. 다음으로 복지 의제의 단계적 제기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이라는 목표다. 끝으로 자기 위치를 민주화 투쟁의 하위 파트너로 잡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 중심성, 복지 의제, 진보 통합과 야권 연대 등으로 표현된다.

이런 의제나 가치관은 꽤나 오랫동안 역사적 좌파를 지배해 온 것 들이다. 기생적인 계급과 신분에 맞서 자기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장인들의 분투부터 정당한 임금을 받으려는 현대 노동자들까지 노동은 자기 정당성의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른바 자본주의적 인구 법칙, 극심한 경기 변동, 비용으로서의 노동의 위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만 모든 사람들이 의존해서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오래된 공동체의 가치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사회복지 혹은 복지국가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복지국가에는 언제나 ‘인간과 시민의 정상적인 삶’과 ‘자본주의적 시장 노동’ 사이에 긴장이 존재했다. 물론 이 긴장은 포드주의적 생산방식과 전후 장기 호황 속에서는 그렇게 날카롭게 드러나지 않았고 이른바 복지국가의 황금시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진보 통합과 야권 연대는 한국 정치의 특유한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단 체제 하에서 왼쪽이 매우 협소하고 보수적인 정치계급의 상당수가 권력에서 밀려나 있으며 사회적 의제보다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의제가 언제나 전면에 있었던 곳에서 보편적인 좌파의 의제를 제출하는 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역사적 좌파는 보수적인 정치계급 가운데 일부 진보적인 세력과 힘을 합쳐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역사적 과제로 삼았고, 이를 통해 분단 체제 극복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고 분단 체제를 넘어설 때만 본연의 과제를 제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전략과 달리 한국 사회의 독자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강조한 또 다른 역사적 좌파는 즉각적인 사회적 의제의 제출과 이를 위한 독자적인 정치세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90년대 이루어진 지연된 68혁명 속에서 이 분파는 동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IMF 외환위기의 효과에 대한 사후 인식 속에서 새로운 좌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우선 새로운 좌파는 정치의 복원과 새로운 정치를 주장했다. 더 이상 우리는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적 결정’조차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집단적 의지와 행위로만 드러나고 결정된다고 할 때 경제 상황은 일종의 재료이지 주재자가 아니다. 이를 미래 사회로 투사하면, 우리는 정치의 소멸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긴장과 잠정적인 해결로 이어질 그 어떤 정치의 조건을 마련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가 전제하고 또 추구한 계급 정치를 사실상 폐기했다. 특정 사회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정치가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가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역사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부당한 전제를 폐기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만 우리는 훨씬 더 자유롭게 다양한 가치의 옹호자가 될 수 있고, 또 ‘불화로서의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우리의 사회과학적 인식은 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우리의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의 유연화에 맞서 싸울 수는 있겠지만, 포드주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는 투쟁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인간의 조건 및 생태적 조건에서 불가능하다. 다양한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한편 여기서 미래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맞을 것이다.

끝으로 정치적 연합과 관련해서 우리는 맹목적으로 어떤 연합도 거부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말한 새로운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연합일 때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마 현재의 조건에서는 정치 개혁이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학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대장정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누구도 그 장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끝날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다수 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이고, 어떤 계기 속에서 ‘분노한 사람들’과 함께 다시 정치의 장으로 진입하거나 정치의 장 자체를 다시 만드는 일로 끝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이 ‘운동정당’이라 부르는 형태가 탄생할 것이다.

물론 당장의 성취에 골몰하는 사람들은 이 말의 현실성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처럼 “나는 아직도 쓰이지 않은 소설의 인물이므로, 하나의 현실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약간의 자유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유는 휴식과 예술적인 성취와 존재의 지적 완성”을 가져올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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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7호(2015년 07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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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2015

[제26호(15년 06월호) |책 머리에| 분명한 것과 맹목적인 것

분명한 것과 맹목적인 것

몇 달 전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을 다룬 글을 “인간의 철학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천지간에 많다”라는 햄릿의 말로 끝낸 적이 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국민모임’의 창당 선언, 노동당 대표의 진보 결집 행보 등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4·29 재보선이 코앞에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맑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헤게모니 있는 결집은커녕 책임 있고 내용 있는 논의조차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조된 국민모임은 반성한 자칭 진보 인사 정동영의 영입으로 주목을 받으려는 것 이상의 힘을 보여 주지 못했다. 도리어 과거에 보여 준 거간꾼의 모습을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당은 스스로 설정한 판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몫을 인정하지 않고, 면벌부 판촉 사원의 과장 광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진보 결집이라는 금화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면벌부 함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노동당은 연옥에서 튀어나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한편 정의당은 별 소득 없는 꽃놀이패를 즐겨 볼까 하고 있었고, ‘노동정치연대’는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부상을 당해 재활 중이었다. 이러니 재보궐선거가 어떤 계기가 되기보다는 괜한 소란만 만드는 달갑지 않은 사건이 될 가능성이 컸다.

결국 정동영은 내부의 만류, 외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선언했고, 이른바 진보 진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괜히 당선된 이후를 선거 막판까지 걱정하거나 즐겼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었던 일이다. “꿈도 꾸지 못할 일”은 그 다음부터다. 우선 정동영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던 노동당 후보가 몇 마디 말로 후보 등록도 하지 않고 사퇴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진보를 결집하고 제1야당을 교체하겠다는 결기로 출마 선언을 한 것이 누가 봐도 우습게 되었다. 결국 정동영에게 양보하기 위해 그런 퍼포먼스를 했다는 건가?

그 다음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한 행보와 사태에 대한 별다른 평가 없이 9월말까지 진보 결집을 완료하겠다는 노동당 당권파의 ‘선언’이 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9월 말이라는 시한은 창당준비원회를 구성한 국민모임의 수명이 다하는 시점이다. 물론 생명을 연장하고 자기 뜻을 펼치려면 창당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정말로 큰 뜻을 펼치고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겠다면 정동영을 영입한 자세로 널리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일을 먼저 하면 된다. 그렇지않고 노동당 당원으로 창당을 하겠다는 건 어떤 셈법인지 모르겠다.

끝으로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책임을 정동영에게 돌리려는 움직임이다. 간단한 질문을 해 보자. 정말로 정동영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 어떻게 움직일지 몰랐다는 말인가? 물론 조직과 노선의 힘으로 그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로서는 잘못된 계산일 뿐이다. 자기를 잘못 알았건, 상대방을 잘못 알았건 말이다. 그러니 최소한 자신의 무능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기 않을까?

 

정동영이 국민모임에는 참가하지만 재보궐 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던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입장이 다르지만 굉장히 훌륭한 결정이다, 내년 총선 전까지 이른바 ‘민생 탐방’ 같은 것을 하면서 힘을 모을 수 있겠구나, 그러면 전주 덕진에서 출마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사람을 잘못 보았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를 위한 시사점이 있다. 과거에 항상 제출했던 장기 성장 전략 말이다. 이 자리에서 이것이 왜 잘 안 되었는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로 삼는 것은 이런 노선을 제출한 사람들의 심리 상태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는 그 나름 성공한 판사다. 출세에 관심이 많은 만큼 이를 이룰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렇다고 속물도 아니고 부패한 사람도 아니다. 말 그대로 괜찮은, 성공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원인 모를 죽을병에 걸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에 그는 거듭 질문한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 그것도 남들보다 먼저 죽어야 하는가,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신과 운명이 원망스럽다. 주변 사람들도 원망스럽다.

의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을 뿐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 같고, 아내와 딸도 그의 병에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원망을 넘어 저주를 퍼붓고, 그 때문에 또 고통스럽다. 과거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보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나 삶의 구도자였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는 그 상태로 죽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고 빛을 보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삶이 모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걸 바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며 ‘용서해 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보내줘’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환해지고 마음속에서 그를 괴롭혔던 모든 것이 나가 버렸다. 당연히 통증에서도 벗어났다. 게다가 죽음마저 사라졌다. 그가 죽음과 동시에.

정치보다 언제나 더 큰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지금의 진보 정치를 바라보는 게 무리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와 민중을 이야기하고 의지와 희생을 말하는 게 진보정치이지 않았던가? 그 무게를 생각하면 크게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툼을 진정성 있게 이해하자면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출발한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기 때문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일종의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맹목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의 철학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천지간에 많다”라고 할 수 있지만, 삶과 죽음만큼 명료한 게 어디 있을까? 그 명료한 것을 명료하지 않게 하는 맹목을 버리자고 권한다.

 

이번 호가 나올 때 우리는 권문석의 2주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는 사멸했지만 우리의 삶은 그의 불멸을 바라고 있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고 불확실함과 단단함이 교대하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비극과 희극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숙함으로 나타나는 비극과 시대착오로 드러나는 소극笑劇 사이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 오솔길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 우리는 최저임금 1만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그가 얼마나 조숙했는지를 새삼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위대한 비극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이럴 때 비극보다 훨씬 더 넘쳐나는 소극을 마주하는 우리는 거기서 희망보다는 좌절을 느낀다. 새로운 정치는 어쩔 수 없이 잿더미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소극이 아니라 가벼운 희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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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6호(2015년 06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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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2015

[제29호(15년 09월호) |책 머리에| 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그리스에 관해 쓴 글을 아감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게 사유란 희망 없음[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지난 1월말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환호 속에 집권한 시리자가 지루한 협상과 국민투표라는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채권자들에게 굴복한 모습을 다루는 글의 시작으로 꽤나 어울리는 제사이다.

하지만 그리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장투’에서 ‘장기’란 거의 인생을 바치는 시간이 된 세상, ‘삼포’를 넘어서 사포, 오포, n포 등등 끝없는 포기 그리고 희망 없음의 다른 말인 달관이 세대를 묘사하는 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사회, 그 어떤 몸짓에도 아무런 메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탈정치화된 정치, 목함지뢰에서 시작해서 정신적 대량살상무기인 확성기로 이어진 전투가 유감과 이산가족상봉으로 나아가는 부조리한 대립의 땅. 이런 상황만큼 우리에게 희망 없음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어떤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유란 대안이라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을 낳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유로부터 나온 대안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인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행동이란 말을 들으면 일부는 (소수의) 격렬한 전투와 결기 있는 대립을 떠올릴 것이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행동은 다수가 모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공간을 여는 행동이며, 그런 행동의 울림과 퍼짐이다. 그렇다면 당장 떠올릴 수 있는 행동의 계기는 아마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이런저런 전문가나 언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건 불평등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불평등의 정도 자체가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는 구조화된 불평등에 맞서 개별적인 해결책을 도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투사할 수 있는 적절한 정치적 대변자 주위로 모이거나, 구체적인 적을 대상으로 해서 전선을 형성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았을 때 아마 후자가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전자가 형성되지 않은 채 분노가 모여 커다란 전선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분노를 넘어서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하다. 낡은 진보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교차점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다시 사유로 돌아간다. 그동안의 사유에 따르면 지금은 정치 체제 혹은 정당 체제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심원한 위기, 그 위기에 대한 인식의 시대이며, 새로운 정치 세력은 그 위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책적, 정치문화적 대안을 제출함으로써 그러한 인식에 조응할 때 비로소 출현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역사와 구조에 대한 이성적 사유의 산물일 뿐이며, 잘해봐야 손쉬운 대안, 잘못하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우리의 사유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비정규불안정노동자라는 구조화된 주체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는 잠재적인 어떤 것일 뿐이며, 현실정치적으로 일종의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조직화된 사람들 이외에 어디에 정치에 근거가 있는가? 혹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또 다른 조직화가 필요하다 등등. 아직 우리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턱 자체를 발견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발견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문턱은 발견하는 것이지 고안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가장 인간적인 덕목인 꾸준함만이 이 문턱을 찾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집단의 조직이나 흐름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할 때 그 꾸준함은 낳은 것이기도 하다. 꾸준함은 분노의 계기를 찾을 것이고, 그 분노는 공간을 열 것이며, 그 속에서 형성된 신뢰는 대안 속의 주체, 주체 속의 대안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것이 “희망 없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대답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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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9호(2015년 09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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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2015

유로 드림에서 벗어나기

니콜 골케 + 야닌 비슬러(Nicole Gohlke + Janine Wissler)

 

영어 원문

아래 글은 독일 좌파당 연방의회 의원인 니콜 골케와 헤센 주 의원인 야닌 비슬러가 함께 쓴 것이다. 이 글에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좌파당이 ‘사회적 유럽’ 건설이라는 전략에 머물러 있었고, 이에 따라 유로존 외부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사실 치프라스 정부가 트로이카의 요구에 굴복한 이유도 이런 ‘좌파 유럽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제 금융 협상 과정과 그 결말에서 드러났듯이 유로존에 머물면서 긴축을 종식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유럽 좌파 내에서 유럽연합 및 ‘사회적 유럽’이라은 자신의 기본 전략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해졌다. 이 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영어 원문

“모든 곳에서 오히! 모두가 반대라고 말한다!” 그리스 국민을 지지하는 블로큐파이 운동의 슬로건이다.

 

논쟁의 조건

7월 17일 좌파당의 의원단은 그리스에 가해진 최종적인 긴축 프로그램을 거부했다. 53명이 반대투표를 했고, 2명이 기권했다. 좌파당의 표결은 안겔라 메르케, 볼프강 쇼이블레, 지그마르 가브리엘(독일 사민당 소속으로 부총리이자 경제부 장관) 등이 그리스 정부에 가하는 협박에 대해 분명한 ‘반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좌파의 관점에서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것은 우리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2월 좌파당 의원단 다수는 구제금융 연장에 ‘찬성’했고, 소수가 기권했으며, 더 소수가 ‘반대’ 투표를 했다.

물론 표결해야 하는 결정의 무게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월 표결은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막 성립한 그리스 좌파 정부가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에는 특히 중요시되었다. 비록 유럽 기구들의 협박 전술과 신자유주의적 요구가 이미 명백하긴 했지만 말이다.

2월과 달리 이번에 좌파당은 ‘반대’를 했는데, 왜냐하면 독일 정부가 2010년 이래 가장 가혹한 긴축 패키지를 그리스 정부에 강요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시리자 의원 다수는 이 협박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고, 긴축 패키지를 받아들였다.

이 패배는 반성하고, 질문하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경제 위기가 발발한 이래 유럽연합 내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진정한 좌파 정부가 독일 정부 및 독일의 지도를 따르는 기타 유럽 정부에 굴복한 것은 결국 우리의 패배이며, 유럽의 전체 좌파의 패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기회에 지난 몇 달 동안 우리의 정치를 이끌어온 중심적인 전략적 전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 전제란 원칙적으로 유럽연합에 ‘찬성’하고, 유로존을 떠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좌파 정당으로서의 우리의 전략 전체를 재사고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좌파 정당으로서 우리는 유럽 대륙 그리고 특히 그리스에 있는 우리 동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해야만 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다.

시리자를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그들의 정치적 사망을 선고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고, 생산적이지 않다. 이것은 그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각성을 억누르려는 우리의 정적들이 하려는 일이다. 하지만 판에 박힌 반응을 하면서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광범위하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그리스 국민의 빈곤을 종식하기 위해 시리자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거부해서도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서도 안 된다. 독일인이자 ‘외부인’인 우리는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견해나 비판을 밝힐 권리가 없다고 하는, 일종의 경멸적인 도덕주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교훈도 배울 수 없게 할 것이다.

우리 자신과 그리스의 동지들은 지난 몇 달 동안의 실수와 전략적 성공 모두에 대해 솔직하고 연대에 기초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특히 우리가 유럽의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에 함께 하고, 다가올 유럽 수준의 투쟁을 준비하기 원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떠나는 것이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을 논의하고, 현재의 패배와 대중의 ‘반대’ 투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나쁜 신념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총리로 선출된 이후 계속해서 유럽의 나머지 정상들에게 협박을 받았고, 결국 거기에 굴복했다. 그는 그리스 의회에서 이를 고백했다. 그의 패배는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며, 그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리스 정부의 정치적 전략의 중심 전제 – 유로존에 머무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긴축 정책을 거부하는 것 – 는 그 어떤 결과도 낳지 못했다. 그리고 낳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전략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런 전략을 가진 그리스 동지들을 지지했고, 어떤 중도(middle path)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중도는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전 재무장관인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최근에 유로그룹과의 협상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리스 측의 제안은 이 협상 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후 긴축에 대한 대안 및 유로그룹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양보의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이어졌다.

실제로 이것은 브뤼셀의 비밀 ‘협상’이 협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유로그룹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반복해서 내린 모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시리자가 얻어내려고 한 타협은 유로그룹이 그리스에서 뽑아내려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 그리스 재무장관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의 공식 대표인 – 바루파키스가 유로그룹 회의에서 배제당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후 그는 유로그룹에 대한 세칙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를 통해 유로그룹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개별 회원국에 어떤 권리나 특권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정하다고 가정된 유럽의 게임룰은 독일이 이끄는 유럽이라는 바위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협상과 외교적 대화에 초점을 맞춘 시리자 정부의 전략을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치프라스와 바루파키스의 카리스마도, 아주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협상 전술도 유럽 기구들 내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거나 거의 바꾸지 못했다.

‘일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시리자가 추가적인 시간이나 숨 쉴 여지를 갖도록 하지 못했다. 도리어 협상 과정은 유럽 기구들이 좌파에게 불리하고 적대적인 영역이라는 것, 최소한 약간의 인도주의적인 사회 정책을 구해내겠다는 희망으로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는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메르켈, 쇼이블레, 가브리엘은 그리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는 나머지 유럽의 본보기가 되어야 했다.

이 패배가 알려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많은 총파업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새로운 정부를 선출하고 국민 다수가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해도 상관없다. 이런 일들이 도움이 되거나 그리스 정치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전체 유럽 좌파의 사기를 꺾고 유럽 전역의 사회적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이것이다. 유럽의 좌파가 현재의 패배에서 나오는 교훈에 관한 공개적인 자기비판적인 논쟁을 수행할 때 이러한 사기 저하와 실망에 맞설 수 있다.

 

좌익적인 그렉시트

결국 쇼이블레는 (지그마르 가브리엘과 충돌하면서) 우파로부터 강요된 그렉시트로 그리스 측을 위협했다. ‘우파로부터’의 그렉시트는 그리스가 준비 없이 유로존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통화 교체, 환율 안정, 아주 취약한 위치에서 유럽연합과 부채 재조정 협상을 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쇼이블레와 유럽 자본의 보수적인 분파가 이러한 선택을 심각하게 고려했는지, 혹은 전략적 대안이 없는 상태인 시리자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정치적 협박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유럽의 좌파가 플랜 B에 대해 심각한 태도로 사고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리스 좌파 정부는 대부자들과 벌인 협상에서 어떤 가능한 대안도 강탈당한 셈이다. 플랜 B가 없다는 것은 시리자가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로존에 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 기구들은 그리스 정부에게서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일한 다른 가능성은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 결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플랜 B는 무엇일 수 있는가? 이 과제는 제안하는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플랜 B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 중요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있고, 특히 그리스 좌파에서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좌익적인 그렉시트를 위한 상세한 시나리오는 아직 없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은 더 심한 긴축과 빈곤화, 민주적이고 의회적인 역량의 사실상의 포기, 정당으로서의 시리자에 대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시험이다. 유로존에 남아 있게 되면 시리자 정부는 – 최소한 지금 – 긴축에 맞서는 강력한 적에서 그리스에서 트로이카의 독재를 실행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결정하는 좌익적인 그렉시트는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해결책이 아니다. 특히 그것의 경제적 귀결은 좌익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 들 사이에서 매우 논쟁적인 것이다. 현재 경제적 귀결에 대해서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그렉시트는 사회적 분열의 심화, 경제적 붕괴, 그리스 국민의 더 악화된 빈곤화를 의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그렉시트는 새로운 정치적 활동 공간 및 행동의 범위를 연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주도 대부, 자본 도피에 맞서는 국가적 조치, 트로이카의 승인을 얻지 않고도 부자들에게 더 많은 과세를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선택지는 최소한 검토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거기에 관여하는 정당들에게 계산할 수 없는 정치적 위험 부담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로부터 생길 수 있는 실수와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그리스 동지들은 이미 과감하게 생각하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국민투표 직전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때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그리스 은행의 영업을 중단시킨 유럽중앙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내각에 일방적인 대항 조치를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유로존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나가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했다. 1) 그리스 정부가 보증하는 지폐를 발행하거나 (유로 여전히 연동되더라도 분리된) 통화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발표하는 것, 2) 2012년 이래 유럽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채권에 대한 헤어컷을 하는 것, 3) 그리스 중앙은행을 통제하는 것.

 

국민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렉시트를 둘러싼 좌파의 논쟁에서는 대개 경제적 논거와 함께 정치적 논거가 등장한다. 다수의 그리스 인은 유로존에 잔류하기를 원하며, 따라서 시리자 정부가 좌익적인 그렉시트를 하는 것은 다수의 바람과 다른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아니면 이것을 양극화된 계급 갈등이라는 시나리오 내의 갈등적인 동학의 하나로 이해해야 하는가?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경우 따라오는 긴축 프로그램과 별도로 그리스 국민에게 유로존에 남아 있기를 원하지 질문할 경우 다수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이 긴축과 정확하게 연관되어 질문될 경우에도 같은 것인가?

그리스 국민이 이전의 해결책(즉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끝내는 것)과 비슷한 것을 원한다고 해서 그렉시트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것이 낳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종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날 경우에 말이다. 이것이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반대’ 투표를 한 61퍼센트의 그리스 국민이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비록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가 그리스 국민이 어떤 통화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고 강조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 국민는 유로존에 남아 있을 것인가(따라서 긴축을 계속하고), 아니면 유럽 ‘기구들’의 제안을 거부할 것인가(따라서 그렉시트의 가능성을 열어둘 것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 미디어는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고, 국민투표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려 했다. 영업을 중단한 은행에 대한 공포와 경고, (거의) 텅 빈 현금지급기에 늘어선 긴 줄의 이미지, 공적 생활의 붕괴 등을 통해 미디어는 그리스 국민투표의 배경으로 종말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유로그룹은 이를 다시 위협 수단으로 사용했다.

국민투표에서 ‘반대’ 투표를 한 61퍼센트가 말한 메시지는 사회적 지위와 투표 행위 사이의 실제적인 관계에 의해 증폭된다. 재정적으로 불리하고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은 협상에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따라서 국민투표는 무조건적으로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이 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목표가 아니고 도리어 그리스의 지배 계급과 자산 계급의 프로젝트라는 것을 가리킨다.

 

공동의 패배

또한 국민투표를 통해 우리의 그리스 동지들의 용감한 행동과 국민투표를 발의하는 주도권이 어떻게 그리스의 사회의 거대한 재정치화와 사회운동의 갱신을 낳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 독일 좌파당 정치가)와 블로큐파이(Blockupy: 2012년 독일에서 시작된 긴축 반대 운동) 연합 대표들이 신타그마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집회에서 수만 명 앞에서 연설할 때 이러한 가능성을 느꼈다. 국민투표를 통한 사회적 동원 및 압도적인 ‘반대’ 투표는 그리스 내에도 정치적 대안과 플랜 B에 대한 커다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스 정부에 있는 우리 동지들은 5개월 동안 국민 다수에게 플랜 B의 효용성을 확신시키려 했다. 5개월 동안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끝낸다는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는 것을 그리스 국민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플랜 B는 우리가 건너려 하지 않았던 레드라인을 다시 설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유로존 내에서 긴축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굴복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절한 대안이 있어야만 한다.

동시에 그것은 바루파키스의 제안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심각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정부 보증 지폐 발행을 준비하고, 새로운 국가 통화를 발행하고, 은행을 국유화하고, 자본 통제를 하는 것이다.

시리자의 우리 동지들이 협상이 최종 결렬되었을 때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에 대하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는 물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대안이 없을 경우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 안팎에서 희망과 열망을 안고 새 정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기도 하다.

플랜 B를 준비하지 못한 실수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러한 전략으로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 싸우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시리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전체 좌파의 책임이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전략적 자원을 활용하거나 활용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우리 모두가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전략적 자원이란 유럽 기구들 및 유로존과 결별하고 이를 통해 좌익적 그렉시트의 시나리오를 전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 동지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이유도 이를 정당화할 근거도 없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낫게 혹은 더 지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유럽연합 내부의 행동의 공간 및 개혁의 전망에 대한 환상은 그리스보다 독일 좌파 내에 더 널리 퍼져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환상은 지난 유럽 선거에서 우리 당에 의해 지속적으로 조장되었지만, 일부는 유럽연합 및 그 기구들에 대한 원칙적인 좌익적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런 잘못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공동의 패배는 유럽에서 진정한 좌파 정치는 이제부터 유럽연합 기구들에 맞서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유럽 주변부의 사회주의 정부에게 좌파 정치는 유로그룹의 구속복 외부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럽연합이라는 환상을 깨기

그렇다면 유럽연합 논쟁에서 어떤 질문을 다시 거론해야 하는가? 독일에서 좌파당이 유럽연합을 제국주의 프로젝트라고 비판하는 게 어려운 주된 이유는 유럽연합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배운 역사적 교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서로 싸우던 유럽 열강이 새로운 지정학적 동맹으로 합쳐진다면 유럽 대륙에서 힘의 갈등을 과거지사로 만들 수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들은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유럽연합을 포스트민족적 구성물이자 유럽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이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크게 바꾸긴 했지만 회원국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은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약화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리스의 구제 금융 확대에 관한 협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유럽연합이 공동 통화를 도입했지만 공동 임금, 공동 사회 정책, 공동 예산 정책 등을 도입하지 않은 것은 실수나 우연이 아니며, 유럽연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상황도 아니다. 유로의 구성과 독일의 공격적인 수출 전략은 그리스처럼 경제적으로 취약한 나라에는 해롭다. 특히 여러 나라들이 공동 경제 정책이나 조화로운 경제 정책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유럽연합은 독일 경제와 정치 질서의 힘을 제약하지 않은 채 그저 포스트민족적인 알리바이만 제공하고 있다.

이제부터 폴커 카우더(Volker Kauder, 독일 기민당 정치가)가 몇 달 전에 기쁜 마음으로 선언한 것처럼 유럽에서 ‘독일어’가 말해질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이러한 사태를 감안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로 유럽 프로젝트를 유럽 전체 차원에서 ‘재부팅’하는 게 유럽 내의 계급투쟁에 유용한 요구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유럽연합 정책의 결과는 우리가 독일이나 그리스, 영국이나 포르투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국가가 추동하는 유럽 사회정책의 재구성은 거의 28개 회원국의 동시적인 정치적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주요 나라의 기업과 금융 시장은 여전히 가능한 사회적 개혁의 강력한 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우리는 유럽 인민들 사이의 구체적인 연대가 유럽연합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에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은 유럽 연합이 국민 정부에 의해 공동 통화 지역과 경제 지역으로 상상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긴축에 반대하고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한 다양한 투쟁(이것은 아직 공동의 대의로 단결되어 있지 않다)은 우리에게 좀 더 약속된 전망처럼 보인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구 형태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는 구체적인 투쟁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페기다(Pegida, 독일의 반이슬람주의 정치 단체)에 맞서 싸우고,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에, 그리스에서는 황금새벽당에 맞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제 ‘사회적 유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정책과 정치를 여러 회원국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회적 투쟁의 주제로 만들 때이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사회적 유럽을 위한 사회 운동을 구성할 수 없다. 우리의 정치는 유럽적, 민족적, 지방적, 지역적 운동의 정치적 행위자들과 활동가 들 사이의 범유럽적인 연대의 네트워크를 수립하고,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리스가 유럽 기구들의 명령에 굴복한 지금 유럽 좌파 내의 우리 동지들이 유럽연합 혹은 유로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로존의 회원 자격이라는 것은 긴축 정책의 실행과 강제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슬로건을 실행에 옮기기

그리스의 비극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낳은 이유를 그리스 자체에서만 혹은 주로 그리스 자체에서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시리자의 (일시적인) 실패는 주로 독일 좌파의 역사적인 취약점뿐만 아니라 나머지 유럽에서 적절한 좌파 운동이 부재한 탓이다. 우리는 좌파당이 독일에서 진정한 사회적 재구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더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선거에서 10퍼센트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 머물러 있으며, 블로큐파이 시위에 겨우 2만 명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난 가을에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에 최소한 노동조합을 모두 동원할 수 있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노동조합 기반은 취약하다.

이러한 공동 행동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슬로건인 “유럽 위기 체제의 심장부에 맞서 저항하자”에 비추어 보면 많이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대한 ‘반대’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화판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패배로부터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우리 정치의 전제를 재사고하고 결별의 가능성을 과감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극복하기보다는 강화하고, 유럽 국경의 봉쇄를 강화하고, 제국주의 갈등을 강화하는 유럽연합과의 결별 말이다. 정당들을 몇 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어떤 것으로 축소하고, 의회를 기업 로비스트들의 바람을 실현하는 기구로 축소하는 그런 의회주의 정치와의 결별 말이다.

그리스 국민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연대는 독일에서 독일 정부에게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2007, 2015

|인터뷰| 그리스: 투쟁은 계속된다

세바스티안 버전 +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ebastian Budgen + Stathis Kouvelakis)

영어 원문

이 인터뷰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자코뱅(Jacobin)» 온라인판 7월 15일자로 실린 것이다.

쿠벨라키스는 영국 킹스 칼리지 교수이자 시리자 중앙위원이며, 질문자인 버전은 영국에서 발간되는 «역사유물론»의 편집자이다. 여기 번역된 것은 인터뷰의 일부이다. 인터뷰 전체는 월간 «좌파» 8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원문은 다음을 보라. jacobinmag.com/2015/07/tsipras-varoufakis-kouvelakis-syriza-euro-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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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ubelakis

스타티스 쿠벨라키스(Stathis Kouvelakis)

7월 국민투표가 제기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갑작스러운 일로,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꺼내든 와일드카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게 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치프라스가 자신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국민투표는 그리스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빠져버린 덫에서 나오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계속 양보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정부와 치프라스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트로이카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매우 분명했다. 6월 마지막 주가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협상안이 시리자 내부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이며, 여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했다. 좌파플랫폼뿐만 아니라 많은 당원들이, 이 협상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당 지도부와 치프라스에게 전했다. 그 주 마지막 며칠 동안 여론의 변화도 중요했다. 사람들은 이 끝없는 협상이 진절머리가 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트로이카가 그리스 정부에게 굴욕감을 주려 한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다.

정치가로서 승부사라고 할 수 있는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전부터 야니스 바루파키스를 포함한 정부 내 인사들 사이에서 제기되던 것이었다 – 협상 과정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협상 계획을 강화할 수 위한 전술적인 수단으로 생각했다. 국민투표가 공표된 6월 26일 저녁에 있었던, 중요한 내각 회의에 관해 상세한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이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두 가지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치프라스 및 그와 가까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매우 쉬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은행이 문을 닫기 전에는 그럴 수 있었다. 대개는 국민투표가 70퍼센트 넘는 지지를 받아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생각이었고, 은행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국민투표는 손쉽게 이겼을 것이고, 반대의 정치적 의미는 바뀌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투표가 은행 영업 중단 및 유럽인들의 반응이 만들어낸 대립적이고 극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각 회의에서 있었던 일은 몇몇 사람이 — 부총리인 기아니스 드라가사키스(Giannis Dragasakis)가 이끄는 정부 내 우익이 — 국민투표안에 반대한 것이다. 드라가사키스는 실제로 그리스 측에서 협상 과정 전체를 감독한 인물이다. 신임 재무장관인 유클리드 차칼로토스를 제외한 협상팀 전원이 그의 사람이며, 바루파키스를 제거하기를 원한 내각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 우익은 국민투표가 위험 부담이 높은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치프라스가 이해한 것과는 달리, 국민투표가 매우 대립적인 안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다시 말해서 유럽 측에서 거친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들은 국민투표로 인해 아래로부터 터져 나올 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다른 한편, 좌파플랫폼의 지도자이자 에너지 장관인 파나요티스 라파자니스는 국민투표가 너무 늦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이것이 선전포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상대방이 유동성을 끊어버릴 것이고, 며칠 내에 은행이 문을 닫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거기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장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나는 이렇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정부가 작동해온 방식의 전체 논리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럽이 실제로 반응한 방식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점을 믿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는 시리자의 우익이 자신들이 반대한 것에 대해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국민투표가 있었던 주에 내각 수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치프라스는 드라가사키스 및 기타 사람들에게 국민투표를 철회하라는 심한 압력을 받았다. 물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다음 조치는 우익이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조치는 그때까지 추구했던 노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틀 내에서 다소는 전술적인 수단이었다.

 

국민투표 전 수요일에 일종의 후퇴가 있었는데, 그걸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 수요일에 일부는 내부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아테네는 치프라스가 국민투표를 철회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들끓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할 것이라고 하는 연설에서 국민투표가 더 나은 협상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것은 협상의 종결이 아니라 더 나은 조건에서 지속되는 협상이라고 했다. 그는 그 주 내내 그런 노선에 충실했다.

공적 관계라는 관점에서조차 그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치프라스가 국민에게 거부하라고 한 일련의 제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제기했지만, 국민투표 준비 기간에는 치프라스가 국민에게 거부하라고 했던 제안보다 몇 가지 측면에서 더 나쁜 제안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채권자에게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리즘과 혼돈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치프라스가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국민투표가 가지는 의미를 분명히 하려했는지에 관한 당신의 질문에 답하면서 치프라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재구성하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절대적으로 분명한 것은 국민투표가 그런 의도 이상의 힘을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치프라스와 정부는 국민투표에 의해 창출된 사태에 압도당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수단을 써서 악마를 다시 상자에 넣으려 했다. 치프라스가 드라가사키스의 압력을 다룬 방식은 — 수요일이 그렇게 중요했던 이유 — 그들의 노선을 받아들이고 유로그룹에 불명예스러운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를 보내기 전에 새로운 대출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국민투표 이후에 벌어질 사태를 향한 길을 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국민투표를 철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국민투표에 어떤 근거를 부여해야만 했다. 그는 융커 패키지를 포함한 긴축 조치에 맞서 싸우는 것에 대해 말해야 했고, 트로이카의 협박과 그가 받은 최후통첩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물론 그 당시 계기를 포착한, 아래로부터 발전한 힘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게 했고, 전진하게 했고, 트로이카와 맞서 싸우게 했다.

이것은 내부 모순의 결과로 위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 결국 지도자의 의도를 넘어서서 어떤 힘들을 해방시키는 데 이른다는 것의 주된 예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어제의 패배 이후 지금 치프라스가 직면한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국민투표 이후 이런 조치가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면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민투표가 없었던 일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완전한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투표는 있었고, 치프라스가 국민의 의사(mandate)를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여론과 그리스 사회에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커다란 논쟁거리인데, 치프라스가 마키아벨리적인 의미에서 책략의 천재인지 아니면 사건에 압도당한 흥분한 도박사인지 말해 달라. 당신은 후자의 관점에 동의하는가?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면 나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치프라스와 당 지도부가 처음부터 아주 일관되게 동일한 노선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협상 과정에서 ‘현실주의적’ 접근법과 수사학적 단호함을 결합함으로써 유럽에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들은 그런 노선의 덫에 빠져들었고, 덫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다른 대안 전략이 없었다. 그들은 일관되게 다른 전략을 거부했으며, 여전히 시간이 있었을 때에도 다른 접근법을 현실적으로 실시할 수 없도록 했다.

바루파키스는 며칠 전에 «뉴스테이츠먼(New Statesman)»과 한 인터뷰에서 자기를 포함한 소규모 팀이 국민투표로 가는 일주일 동안 대안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은행의 국가 통제, IOU(차용증서)의 발행, 그리스 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단절 등 점진적인 유로존 이탈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은 일이었고, 내각의 나머지 거의 모든 경제팀이 거부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드라가사키스였다. 물론 치프라스는 이런 결정을 승인했다.

따라서 치프라스 노선의 일관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할 때 ‘배신’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국민의 의지에 대한 배신이며, 국민은 자신들이 배신당했고 느끼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보통 배신이라는 말은 특정 시점에 스스로 해왔던 것을 부인하는 의식적인 결정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생각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치프라스가 협상에 중심으로 둔 접근법을 밀고 나가고 선의를 보여준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그가 일관되게 다른 대안적인 길은 없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떤 ‘숨겨진 아젠다’도 없이 충실한 ‘유럽인’으로 보여 진다면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그는 몇 달 동안 점증하는 압력에 맞서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국민투표라든가 모스크바를 방문한다든가 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일 했다. 그는 이것이 쟁점에 접근하는 올바른 혼합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일관되게 이런 노선을 추구할 때 나쁜 선택 이외에는 남는 것이 없는 위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략의 뿌리에 대해 말해보자. 그것은 어느 정도로 이데올로기적 맹목이며, 어느 정도로 순수한 무지인가?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시리자 정부가 많은 수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오랫동안 현대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을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수준 모두에서 연구한 사람들과 정치적 활동가인 사람들이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나이브하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뿌리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고도 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인가?

정부 내의 두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두 명의 주류 경제학가인 드라가사키스와 기오르고스 스타타키스가 이끄는 정부의 우익이다. 다른 하나는 핵심 지도부인 치프라스와 그 주변 인물이다.

전자는 처음부터 일관된 노선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로 나이브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이 양해각서를 파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드라가사키스가 처음부터 전반적인 접근 논리를 변화시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이유이다. 그는 시리자가 적절한 경제 강령을 가지려는 모든 시도를 사보타지했고, 심지어 당의 다수가 승인한 틀 내에서 그런 것을 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는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양해각서의 개정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무대에 너무 많이 나서지 않으면서 유럽과 자신이 자유롭게 협상하기를 원했다. 그는 협상팀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는데, 특히 바루파키스가 밀려나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2013년 여름, 그는 상당한 소문을 낳은,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그가 제안했던 것은 시리자 강령의 완화된 판본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강령을 제안했다. 그것은 신민당이 맺었던 기존 협정을 약간 개선한 것이었다.

이제 다른 접근법, 즉 치프라스의 접근법을 보자. 그것은 좌파유럽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 생각에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유클리드 차칼로토스이다. 그는 자신을 충실한 맑스주의자, 유럽공산주의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년 동안 같은 조직 안에 있었다. 그의 이데올로기와 전망을 — 그와 비슷한 학계 인물이 정부에 참여하면서 정부도 이런 이데올로기와 전망을 가지고 있다 —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그 자신의 말은 4월에 프랑스 웹사이트 메디아파르(Mediapar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부에 들어간 이래, 가장 놀랐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은 학자이며, 자기 일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이다. 브뤼셀에 갔을 때 자신은 진지하게 준비를 했다, 자신은 자기가 펼칠 주장을 모두 준비했고, 마찬가지로 잘 준비된 반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끊임없이 규칙과 절차 등등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는 것이다.

차칼로토스는 당시 토론 수준이 매우 낮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바루파키스도 «뉴스테이츠먼»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경험에 대해 말한다. 물론 그의 스타일은 차칼로토스보다 좀 더 대립적이긴 하다. 이로부터 이 사람들은 학술 토론회 같은 방식으로 유럽과 대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훌륭한 발표문을 들고 가고, 마찬가지로 훌륭한 반박 발표문이 제출되고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좌파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좌파는 선의로 충만한 사람들로 주로 채워져 있지만 이들은 현실 정치의 장에서는 완전히 무능력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유럽주의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이 가져온 정신적 황폐화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것은 끝까지 이 사람들이 트로이카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파트너’ 사이에서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고, 민주적 위임 혹은 경제학의 논증에 기초한 합리적인 토론의 가능성을 존중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파키스의 전반적인 접근법이 좀 더 대립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태로 끝났다. 물론 그의 접근법은 게임 이론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그가 말했던 것은 아주 끝까지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후퇴하지 않을 경우 감당해야 할 피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후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여기서 한 사람은 발가락 한 개를 잃는 고통과 피해를 당했지만 다른 사람은 두 다리를 잃었다. 따라서 초보적인 현실주의가 결여되었다는 것, 이것은 오늘날 좌파가 직면한 주요한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오늘날 좌파가 직면한 주요한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무능이다.

 

시리자 지도부의 중앙 분파에 있는 이 유럽주의와 관련해서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무엇인가? 이들은 자유주의 심지어 네그리적인 연방주의자도 아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버마스나 발리바르의 영향이 있는가?

내 생각에는 이 경우에 하버마스보다 발리바르가 좀 더 적실성이 있어 보인다. 다시 한 번 차칼로토스의 말을 생각해 보자. 그는 유럽집행위원회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의 매우 치욕적인 역제안을 받은 바로 다음날 [영국 «가디언»의] 폴 메이슨과 인터뷰를 했다. 메이슨이 유로화에 대해 묻자 차칼로토스는 유로존 이탈은 대파국이며, 유럽은 각국 통화의 경쟁 및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발흥 속에 1930년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사이의 선택만이 있다. 기존의 틀을 받아들이면서 ‘유럽인’으로 있거나 —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국민국가라는 낡은 현실에 대해 다소는 진전된 것이다 — ‘반유럽인’이 되거나. 이것은 민족주의, 반동적이고 후퇴하는 움직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이 정당화되는 취약한 방식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와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나은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것도 아니고 유럽 기구들의 신자유주의적 지향과 하향식 구조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있지만, 그 협조적인 틀 내에서 움직여야 하고 그 틀 외부에 더 좋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렉시트를 1930년대로의 회귀 혹은 일종의 묵시록이라고 비난하는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지도부가 좌파유럽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덫에 빠져 있다는 징후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에 대한 이런 온건한 태도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원래 입장과 다른 것이 아닌가? 비록 일부 지식인들이 지도부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풀란차스를 이용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풀란차스는 현대 자본주의 내의 사회 계급들에 관한 책의 1부에서 유럽 통합에 관해 말했다. 여기서 그는 자본의 국제화 과정에 대해 분석한다. 그는 분명 유럽경제공동체를 전후 미국의 새로운 구조적 헤게모니라고 생각한 틀 내에서 유럽 자본이 국제화하는 제국주의적 형태의 예로 생각했다.

 

1607, 2015

[제25호(15년 05월호) |책 머리에| 칼 폴라니와 기본소득 / 안효상

칼 폴라니와 기본소득

얼마 전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의 아시아 지부 격인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 연구소의 개소식에 맞추어 칼 폴라니의 딸인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폴라니 레빗 교수는 칼 폴라니의 유산 상속자이며, 이번에 서울을 방문한 것도 이 자격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폴라니 레빗 교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발전경제학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경제학자이며,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폴라니 레빗 교수를 초청하여 집담회를 가졌다. 집담회 주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칼 폴라니에서 기본소득까지’였다.

칼 폴라니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상황을 ‘이중 운동’과 ‘거대한 전환’이라는 말로 포착하고자 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나 바람과 달리,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전면에 나서서, 폴라니 식 용어를 사용하자면 사회를 경제에 묻어 버린embedded 현상은 예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의 조건이 경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그 원리로 사회 전체를 재조직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자기 조정적인 시장’에 대한 환상 속에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꾸어 내려 했으며, 이 속에서 폴라니가 ‘허구적 상품’이라고 부른 노동, 자연, 화폐까지 상품화했다. 그 결과는 사회가 경제에 묻어 들어간 것이며, 이 건조한 표현을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파괴’였다.

하지만 20세기 전반기 들어 이런 시장의 진군에 맞선 사회의 ‘자발적 저항’이 있었고, 결국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세력이 승리했다. 이 승리의 결과가 뉴딜, 소비에트 체제, 파시즘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파시즘은 패배했지만, 어쨌든 그 이후 ‘자기 조정적인 시장’은 사회를 파괴하므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모두의 합의였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신자유주의의 진전 및 그 파산 속에서 칼 폴라니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왜 사회를 보호하는 운동이 없거나 미약한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시리자의 승리, 스페인 포데모스의 진전은 우리가 이중 운동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런 폴라니의 논의와 기본소득은 어떤 관계인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칼 폴라니는 기본소득 자체에 대해 알지 못했고, 따라서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언급한 적도 없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그리고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의 대답은 상황을 고려한 논리적 추측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면 다음과 같다. 폴라니 레빗은 아버지의 사회철학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사회의 실제성reality of society’이다. 자유주의자 혹은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사회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본성상 사회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조정적인 시장의 진군은 불가피하게 사회의 자발적인 저항에 부딪히는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서 폴라니 레빗은 세 가지 차원, 즉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아버지가 기본소득을 지지했을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경제적 차원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받은 기본소득이 소비재의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생산자들에게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점점 높아지는 세상에서 노동시장에서의 고용만으로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적 차원은 정의의 문제와 관련된다. 사회적 평등과 응집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경우에만 그 사회는 여러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정치적 차원은 기본소득이 사회 내의 반대파 혹은 비순응주의자들non-conformists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칼 폴라니는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관찰 속에서 고도로 발전한 기술 사회가 전체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 이로부터 그는 자유의 보호를 위해 비순응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칼 폴라니로부터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도출한 후 폴라니 레빗 교수는 환경 위기의 문제로부터 ‘탈성장’의 문제의식과 기본소득을 연관시키기도 한다. 물론 칼 폴라니의 주장으로부터 꼭 기본소득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조정적인 시장의 진군과 거기에 맞서는 사회의 저항, 환경적 위기, 기술 발전의 정도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기본소득이 유력한 대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카리 폴라니 레빗 교수가 한국을 방문한 시기는 세월호 참사 1주기와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벌어진 때이기도 하다. 전자는 도덕적 분노와 연대감을 표출하는 대중의 운동으로 표현되었고(되고 있고), 후자는 노동자운동의 두 가지 분할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 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원 사이의 분할말이다. 차벽에 막힌 무력감이나 민주노총의 무능력과 현대차 노조의 무개념을 뒤로 하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몇 가지 과제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대중적 운동의원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특정한 계급을 보편적인 주체로 보는 형이상학을 버릴 경우, 그리고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의 실제성을 승인할 경우, 거대한 대중의 흐름은 도덕적 분노와 여기에 기초한 연대감에서 비롯될 것이다. 두 번째로 노동자계급운동의 표현 기관으로서의 총연맹이 사회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의제의 설정을 통한 사회적 노동운동으로의 전환과 이를 가능케 하는 노동자운동 기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기업과 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노동자운동을 수동적 부문으로, 더 나아가 반동적 부문으로 몰아가는 주술이 될 것이다. 끝으로 도덕적 분노를 끌어들인 다음 다시 분출하고, 이른바 다양한 이해관계를 접합하는 통로로서의 ‘운동정당’의 필요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오래된 습관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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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5호(2015년 05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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