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6, 2015

[제23호(15년03월호)] |책 머리에| 정치의 재편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재구성을 위하여

정치의 재편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재구성을 위하여

실제 날씨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의 시간 리듬은 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때다. 이런 바람에 맞춘 듯 멀리 지중해에서 변화의 시간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봉기를 통해서이건 선거를 거쳐서이건 한 나라에서 ‘좌파’의 집권이 마주하게 되는 곤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처럼 지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와 유로그룹 사이의 협상 과정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4개월의 ‘가교’를 거쳐 바람이 어디로 불어갈지는 사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전망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시리자의 이른바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고 있으며’ 그 역동성이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세력과 만날 때, 아니 그 방향으로 흐를 때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리자가 패배한다 하더라도 남을 수밖에 없는 유산이며, 만약 시리자가 패배한다면 이 힘을 제대로 흐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직 봄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언땅이 갈 라지는 소리는 들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새누리당에서도 나오고 있는 ‘복지를 위한 증세’라는 움직임이 내는 소리다. 물론 집권 2년 동안 그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현 정부가 ‘비정규직의 확대 등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소리들의 마주침이 내는 (불)협화음이 오른쪽의 추세를 좌우할 것이다.

반대파의 선두에 선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을 계기로 정부와 좀 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을지로위원회’ 등을 통해 대중의 삶의 불만을 자기 기반으로 가져가려는 노력을 계속 하겠지만 보수적인 잡동사니 정당으로서의 구조나 태도 자체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대중의 불만을 달래려는 호민관의 태도는 보이지만 이를 보편적인 대안으로 바꾸어내려는 유기적인 노력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87년체제의 미완성과 전이 속에서 53년체제가 융기하여 만들어 낸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지형도 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수세에 몰려 있는 진보/좌파 세력은 사회적, 정치적 균열이라는 계기 속에 다시 한 번 지나간 영광을 누리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이들도 자본주의의 현 국면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도, 생태적 위기에 대해 느끼는 강렬도라는 면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좀 더 커진)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생태좌파’라는 이념적, 조직적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증세와 복지’라는, 한국에서는 현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대착오적인 프레임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가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슬로건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증세는 당연한 일이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마련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안전판으로서의 복지인가 아니면 전환을 위한 토대로서의 복지인가, 낡은 정치의 토대로서의 복지인가 아니면 새로운 주체 구성의 에너지로서의 복지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그 탈출 방식은 대중의 삶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이 몇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불안’의 근원이지만, 이것이 왜 정치적 변동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또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의문이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를 보면 결국 대답은 불안을 대안으로 바꾸어내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은 이념적, 조직적 혁신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정치 자체의 재구성이라 부른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민들의 봄’이 찾아올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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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3호(2015년 03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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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6, 2015

[제22호(15년02월호)] |책 머리에| 전환을 위한 결집을 향해 / 금민, 안효상

전환을 위한 결집을 향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사태의 방향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민심이 드러나는 일종의 징후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혁명은 포고령이 아니지만 선거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한국 진보 진영의 정치계급의 분주한 움직임은 분명 이 두 요소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 이 교차점 위에서, 들끓는 민심만큼이나 자기반성의 연도煉禱 소리는 높아지고 있으며, 자기책임의 기투企投도 그만큼 무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연도가 땅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기투가 미래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때만 되면 등장하는 ‘진보 언론’과 ‘평론가’가 옆에서 연도가 작다고 호통치고 있는 모습도 언제나처럼 그대로다. 그래서 어떻게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겠느냐고.

그렇다. 새로운 전망이 없이는 정권 교체가 없을 것이고, 설사 정권 교체의 대의를 위해 작은 목소리를 죽이고 결집하여 어찌어찌 바뀐다 하더라도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건 소극笑劇으로 반복되는 비극悲劇이 아니라 마비로 끝나는 경련일 것이다. 그나마 소극은 가벼운 웃음을 주고 경련 또한 가벼운 자극을 주는 데 그치지만, 지금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십자군전쟁을 선동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처럼 악마적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신이 그대들에게 내린 토지이다.” 그 십자군전쟁의 결말이 어떠했는지를 덧붙이는 것은 사족일 것이다.

우리는 결집이라는 폭력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숙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악선동이거나 은밀한 무시였으니, 학식을 국왕을 위해 쓰라고 토머스 모어가 조언하자 『유토피아』의 화자인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Raphael Hythlodaeus가 냉소적으로 반응한 것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것보다 더 나은 것을 제안하면 지나간 시대에 대한 존경을 핑계로 삼으면서 필사적으로 과거에 매달립니다.”

그럼에도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는 ‘치유하기’ 위해 유토피아라는 ‘허튼소리’를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그의 이름처럼 치유하기 위해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그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진 시대에 대안을 제출해야 하며, 이를 위한 숙고는 과거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체제와 생태적 약탈 체제를 바꾸기 위한 가장 합당한 방식을 찾아내는 것에 근거해야 한다. 또한 이런 목소리가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비롯한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결집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돌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무기를 벼리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먼곳에서 온 소식은 무시할 일이 아니다.

 

2015년 1월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시리자의 집권일 것이다. 시리자가 긴축정책에 찬성하는 중도좌파정당인 신민당이나 포타미와의 연정 대신에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중도우파 정당인 독립당과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그리스에는 반反긴축 좌우합작 정권이 등장했다. 이로써 근린 궁핍화와 긴축정책으로 남유럽 시장의 수요를 축소하여 결국에는 독일마저 불황에 빠뜨린 메르켈 정부와 트로이카의 긴축정책은 시험대에 올랐다. 사실 지난 총선에서 시리자의 집권이 유예됨으로써 그리스는 그동안 얻은 것은 거의 없고 많은 것을 잃기만 했다. 그 기간 동안 재정 적자는 아테네 공항과 항만, 프라하로 이어지는 철도마저 중국에 매각해야 할 정도로 악화되었고,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는 디폴트를 면할 정도이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리자가 취할 전환 정치의 핵심은 반긴축 정책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시리자와 독립당의 좌우연정은 반긴축 정치연합이 상당 기간 동안 그리스 정치의 핵심 문제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트로이카의 긴축정책은 그리스에서 국가 그 자체를 쇠퇴시킴으로써 좌파 정치가 선택할 수 있는 개혁 정책의 폭을 좁혔다. 결과적으로 반긴축과 올리가르히(재벌) 문제가 총선의 핵심 아젠다가 되었고, 이는 앞으로도 그리스 정치의 중심이 될 것이다.

시리자가 추진하는 전환 정치가 불가피한 선택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 현재 여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페인의 시리자, 포데모스Podemos에게는 좀 더 많은 선택 가능성이 있다. 경제위기, 실업, 궁핍화 등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스페인의 포데모스에게는 4년 전 시리자가 그러했듯이 경제와 사회의 체계적 전환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획득해 갈 여지가 남아 있다. 그렇기에 시리자의 집권보다 포데모스의 집권 가능성이 유럽에서의 사회적 전환의 예고편처럼 여겨지는 것이고, 만약 실제로 포데모스가 집권한다면 그것은 전환기의 개막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포데모스는 기성 정당의 밖에서 새로 구성된 정치조직이다. 포데모스는 마드리드광장에 모여들었던 ‘분노한 사람들’처럼 신자유주의에 항의하는 광범위한 대중의 자기 조직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조직이 좌파 포퓰리즘을 넘어서지 못하고 저항정치의 표현체 구실 이상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포데모스는 분명히 그러한 단계를 넘어섰다. 포데모스의 경제 강령에는 반긴축 정책 뿐만 아니라 보편적 기본소득, 누진적 소득세, 금융 과세, 사영화된 공공서비스의 재사회화 정책 등 사회적 전환의 구체적인 수단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포데모스는 시리자보다 좀 더 분명한 청사진을 통해 사회적 전환의 목표 지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4년 전 시리자 경제 강령은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임박한 긴급조치를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었다. 물론 이렇게 사정이 다른 것은 포데모스가 시리자보다 덜 ‘불가피한 선택’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차이는 포데모스의 상승하는 지지도를 단지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의 표현일 뿐만이 아니라 대안적 사회에 대한 희망의 표현으로 간주할 수도 있도록 만든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위기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 지지도도 20%대로 떨어졌다. 청와대 비서실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진짜원인은 서민 증세와 재벌 감세, 임박한 정규직 목조르기에 대한 불안감일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날이 어려워지는 삶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치가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위기가 진보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무조건 모여야만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결집은 물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청사진으로 어떤 방식의 결집을 이룰 것인가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복지확대론으로 일정한 지지도를 획득했다. 그와 같은 방식의 복지진보는 사실상 민주노동당 시대의 폐막과 함께 막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 필요한 일은 좌파적 전환정치를 전개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과거의 진보와 구별되는 분명한 전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불가피하게 주어진 과제에 대해 주저 없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와 같은 요소를 준비하지 못한 채 결집만 외치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칫하면 그것은 통합진보당으로 이미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을 만큼 추락한 진보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또다시 망가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노동당 대표 결선투표가 진행 중이다. 진짜로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결과를 누가 장담하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당이 새로운 좌파, 이를 위한 혁신의 숙고가 이루어지는 거의 유일한 장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통해 혁신을 위해, 그리고 그런 결집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도 그리 정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해서
금민,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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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2호(2015년 02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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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6, 2015

[제21호(15년01월호)] |신년 논설| 회생의 골든타임 또는 전환의 네체시타 / 금민 편집위원장

■ 신년 논설

 회생의 골든타임 또는 전환의 네체시타

/ 금민 편집위원장

골든타임golden time의 원래 뜻은 황금시간대다. 방송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뜻한다. 골든타임은 치료가 효과를 볼 수 있는 한계시간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재난이나 사고에 대하여 이 말을 쓸 때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초반의 금쪽같은 시간대를 뜻한다. 이러한 뜻이라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세월호 참사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이후 골든타임이란 ‘결코 허비되어서는 안 되지만 허비되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온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뜨렸던 이 말이 연말연시의 언론매체에 일제히 다시 등장했다. 2015년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로서 “경제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12월 22일 자 대통령 발언과 정부의 <2015년 경제정책방향> 때문이다.

경제정책방향의 4대 과제인 구조개혁, 경제활력 제고, 위험요인 제거, 통일시대 대비 중에서 구조개혁이 최우선 과제로 배치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눈에 뜨인다. 7월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재정을 풀고 금리는 내리고 부동산 규제를 푸는 등 단기적 경기부양책을 폈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재정은 악화되고 가계부채만 증가했을 뿐이다.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가 명백한 상황에서 결국 정부도 단기부양책은 효과가 없다고 인식한 것 같다. 한국 경제가 침몰하고 있으며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정부도 이제는 인정하게 된 것이다.

구조개혁의 핵심 분야는 노동, 금융, 교육, 공공 등 4개 분야고, 대통령과 부총리는 이 중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구조개혁의 최우선”이라고 밝힌다. 정부는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막을 뿐만 아니라 경제의 탄력을 떨어뜨리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로 이 벽을 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렵다”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라면 맞는 말이겠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그간 발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규직의 해고 유연성을 높이고 비정규직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날인 12월 23일,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던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는 급물살을 타서 민주노총은 불참한 채 한국노총만 참여하고 있는 노사정은 기본합의안을 확정한다.

비록 합의문은 구체적 각론을 담고 있지 않지만 큰 틀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방향성을 언급하며 5대 의제 및 14개 세부과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한다. 5대 의제는 △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문제, △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 사회 안전망 정비, △기타 구조개선 관련 사항이고, 14개 세부과제는 △ 원하청,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동반성장 방안, △ 비정규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 △ 노동이동성,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의 활성화, △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 △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법제도 정비, △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제도 등 개선 방안, △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및 비조직부문 대표성 강화, △ 중앙⋅지역⋅업종별 사회적 대화 활성화, △ 합리적 노사 관계 발전 및 노사의 사회적 책무성 강화, △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및 효율성 제고, △ 취약 근로자 소득 향상, △ 직업능력개발 및 고용서비스 선진화 등 선제적 보호 장치 강화, △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관련 법제도 현대화 및 정책연계 강화, △ 생산성 향상과 일터 혁신 등이다. 노사정위는 5대 의제 중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문제’, ‘사회안전망 정비’를 내년 3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할 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노사정 합의를 살펴보면,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 온 해고요건 완화나 직무성과급제 확산 등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에 “노동이동성”이나 “노동시장 활성화” 등 우회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동이동성’이 과연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일 것이다. 말 그대로 보자면 유연성은 해고유연성을 연상시키고 이동성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분하는 담장이 허술해져 상호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태의 본질은 바로 원활해진 이동의 방향이 무엇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세 차원에 걸쳐 있고, 그 결과는 고용형태 차이에 기인한 임금격차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로 나타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저임금 노동을 대다수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한편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저임금을 볼모로 삼아 대기업 정규직을 고립시키고 이들의 임금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 노동소득분배율은 경향적으로 떨어져 왔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기능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노동소득분배율 올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노사정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이동성’ 강화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올리는 방향에서의 개혁이 아니다. 노사정 합의문은 비정규직 현안 문제의 해결이나 비정규직 규모의 축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정규직으로부터 비정규직으로의 이동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되는 길을 열어주는 대신에 정규직의 해고를 유연하게 하겠다는 일종의 교환 아닌 교환은 사실상 모두 다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파견제 기간제 사용제한 완화’를 통해 파견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염두에 두고 있고 대기업의 해고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바야흐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할에 근거하던 외연적 유연화 체제의 시효가 만료되고 정규직 내부의 유연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체제에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하여 임금 부분에서만큼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들을 주요한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노동소득분배율을 또 다시 대폭 떨어뜨릴 것이며 노동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는 결과로 귀착될 것이다. 이는 2008년 이후로 좀체 회복되고 있지 않은 세계경제처럼 한국 자본도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해외시장의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내수는 정작 자본에게도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도 노동소득분배율을 올리는 방향으로의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구조개혁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체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성공한다고 해도 내수 측면에서조차 임시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소득분배율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면서 기업 이윤을 보장해 주는 방식은 내수와는 무관한 전형적인 출혈 수출경제의 낡은 방식이고 세계경제가 앞으로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서만 가능한 전략인데, 상황과 전망은 정반대다. 가계부채 상황을 보면, 내수는 신용 팽창으로 유지한다는 가정도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부도 인정하다시피 가계부채는 확대할 수 없을 수준에 이미 도달했고,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없는 정부는 폭탄을 관리하는 수준의 소위 ‘연착륙’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이 막바지에 달했고 막바지의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대기업 정규직과 한판 겨루겠다는 것이고, 이 싸움의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싸움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시대인식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그간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체제에 대해서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보고도 못본 체해 온 대기업 정규직의 사회의식을 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위기에서 한국 자본은 골든타임을 정규직의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에 몰렸다. 그들은 과연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같은 ‘운명의 힘fortuna’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에 의지virtu를 가지고 신자유주의 불안정노동체제 종식이라는 불가피성necessita이 요구하는 과업을 수행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올 한해를 가르는 가장 큰 질문이 될 것이다. 만약 정규직노동자들이 단지 자신들의 좀 더 괜찮았던 조건과 처우를 지키기 위해서만 싸우고 좁은 이해관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운동은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령의 차이 등을 뛰어넘은 광범위한 노동자 연대에 실패할 것이다. 그런 상태라면 노동자 연대를 넘어서서 더 넓은 사회 연대를 조직하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라면 정규직은 사회적으로 더 고립될 것이고 정부의 구조개혁이 이기게 된다. 신자유주의 불안정노동체제의 종식이라는 보편적 과업의 불가피성을 인식할 때에만 노동자 연대와 폭 넓은 사회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 노동자운동의 발전 수준을 총결산하는 가장 큰 시험이 임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막바지이며 올해가 아니라면 영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새해는 예사롭지 않다. 전운이 감도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란 하루하루가 모두 계급투쟁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 금융 갑부로 꼽히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부자가 늘 이기기만 하는 계급투쟁”이었을 따름이다. 앞으로는 꼭 그렇지만 않을 것 같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물론 2010년 이후다. 미국과 유럽의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종식을 요구하는 운동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한국의 싸움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적 전환을 필수적인 과제로 인식하는 정치세력의 수준과 능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여야 한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덧붙여서

2014년을 마감하면서, 2015년에는 다시 꺼내지 않기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말이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 관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목표로 보았고 이석기 그룹의 활동은 통합진보당 활동에 귀속된다고 보아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일환이라는 독일 헌법재판소의 독일공산당KPD 해산 판결에 비교된다. 그런데 당시 독일 헌법재판소는 근 5년간의 심의 끝에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추구하며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와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그 정도의 문제로 이해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 후 볼프강 아벤드로트W. Abendroth, 헬무트 리더H. Ridder 등 헌법학자들로부터 비판받았고, 1996년 독일 헌법재판소장 유타 림바흐Jutta Limbach는 “현재의 법치주의 기준에 따르자면 독일공산당을 해산할 근거가 없다”라고 평가함으로써 이 판결의 근거가 되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새로 정의한다. 림바흐의 입장은 당시의 해산 판결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납득 불가능한 과거의 판결이라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정치그룹의 시대착오적 행동이 시대착오적 판결을 낳았다. 이 문제에 관해서 한국의 2014년은 독일의 1956년인데, 2015년은 유타 림바흐 같은 이가 등장하여 1996년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일이리라. 70%에 달한다는 해산 판결에 대한 찬성 여론도 1996년 독일의 상태로 달라지려면, 이 시대의 불가피한 과제를 정치적 의지로 떠안으며 대중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좌파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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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1호(2015년 01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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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 2015

[제24호(15년04월호)]|책 머리에| 계기는 대안과 함께할 때 만들어진다 / 안효상

계기는 대안과 함께할 때 만들어진다

이번 4월의 후반에는 몇 가지 ‘일’이 예정되어 있다. 우선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일 년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나면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며칠만 지나면, 혹시 총파업이 계속되면 그 와중에 재보궐선거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기억과 선언과 투표가 있다.

곧 눈앞에서 벌어질 세 사건은 한국이라는 지형 위에서 시대의 흐름이 구체적인 형상을 취하는 일이다. 우선 세월호 참사는 계급적인 신자유주의 국가의 가장 취약한 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국가가 ‘공공의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급과 정치계급의 소유물이자 도구라는 것을 가장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내면서도 스캔들이라는 액세서리를 잊지 않았다. 물론 ‘공분’의 반대편에 일베들의 ‘모욕’을 배치함으로써 이런 국가와 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시효 만료되었음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이런 시기에 문제는 대중의 ‘불만’이라는 스칼라 양을 벡터 양으로 바꾸는 일이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그동안 이루어진 노동에 대한 공격,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전투적’ 지도부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누누이 강조했듯이 현재의 민주노총이라는 틀로 총파업의 ‘동력’을 모으거나 형성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건 지금의 민주노총이 분노를 일으키지도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 자체가 변화를 위한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대안’과 만나거나 대안이 되지 못할 때에는 반동적인 힘이 되거나 최소한 흩어져 버린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안은 신자유주의에서 나가는 출구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정치 및 주체의 문제와 만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대 민주주의 혹은 더 최근의 포스트민주주의는 다수의 지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의제민주주의의 현대적 모습인 다원주의의 자기 목표인 조절 기제마저 상실했으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율성을 획득했다. 이것은 현대 국가 자체가 수탈 기구라는 것과 특히 신자유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 모두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는 봉쇄된 정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는 일이 될 것인데, 이는 또한 새로운 주체를 요구하는 일이다. 물론 이런 테제에 대해 추상적이라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지금이 ‘정상 상태’라면 이런 테제는 시간성이라는 점에서 추상적이고, 적합성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4월 말미에 있을 재보궐선거를 ‘진보 재편’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계기란 게 주체와 무관한 흐름이 아니라고 할 때 그런 태도는 고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고 있는 ‘4자’의 모습은 계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면에서나 재편을 주도할 도덕적 헤게모니라는 면에서나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작 제기되고 토론되어야 할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누가 진보인가 아닌가가 아니고 우리 시대에 진보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고, 기성 정치에서 어떻게 하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헤게모니는 어디서 오는가에 대답해야 한다.

아마 과거에 진보 혹은 좌파는 누구나 이념의 마르틴 루터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87년체제 속에서 실제로는 정치의 필리프 멜란히톤, 그것도 작은 멜란히톤들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운동의 토마스 뮌처가 아닐까? 물론 훨씬 노련한 뮌처이겠지만 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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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4호(2015년 04월호) <책 머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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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 2015

2015 노동당 당대회(前) : (1) 4자 대표 공동선언에서 창당으로 – 수정되지 않는 기획?

정진우

2015년 노동당 정기당대회(이하, 당대회)는 예정대로 6월28일에 개최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사태 여파로 대회 연기 여부를 검토하였으나, 당 대표단회의에서는 최종적으로 (격리대상자들을 불참시키고, 예방조치를 제대로 실행한다면) 대회가 가능하다는 ‘노동당 건강위원회’ 의견을 인용하였다. 정부와 방역당국의 잘못된 대응으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당하고, 정치·사회·문화적인 일상도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대회를 ‘무사히’ 치러야 한다는 말이 원뜻 그대로 의미가 있는 시기이다. 모두의 건강을 간절히 소망한다.

한편, 우리가 애초에 당대회 개최를 통해 소망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당대회 소집 공고(5월27일)에는 대회 안건으로 “의장단 선출의 건, 2016년 총선 기본방침 승인의 건, 당헌 개정의 건, ‘당의 정치적 강화를 위한 특별 결의문’ 후속 안건, 특별결의문 채택의 건”이 적시되어 있다. 이후 6월14일자로 게시된 “당대회 안건 및 회의자료”에는 앞의 전국위원회 발의 안건과 구분하여 대의원 발의 안건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고, 그 아래에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 붙여져 있다. 이 안건 발의에 95명의 대의원이 참여하였는데, 대표 발의자는 나경채 당대표이다.

대표의 대표 발의

당대회 안건을 제출하는 기관인 전국위원회의 논의를 거치치 않고, 특정한 안건 내용에 동의하는 대의원들이 별도로 안건을 발의하는 것은 당규(제2호 제7조 2항)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다. 그런데도 뒷말이 무성한 이유는 안건 통과를 위해 당대표가 직접 대표 발의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 클 것이다. 전국 순회 당대회 안건설명회 자리에 참여한 당원들은 당대표가 자신이 (발의자들을) 대표하는 안건을 (당의) 대표의 지위를 활용해 안건 지지를 설득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며 자제를 요청하기도 한다. 급기야 당대표가 대표 발의하는 이 안건(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은 여느 전국위원회 발의 안건을 제치고 이번 당대회의 메인(?) 안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대표가 대의원 발의를 주도하고 있는 정당사상 초유의 당대회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 메인 안건의 제목은 올해 1월에 시행된 동시 당직선거의 특정 선본 슬로건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이른바 ‘재편파’ 선본은 “진보결집 당원총투표”를 기습적으로 내걸었고, 대표단 셋과 일부 시도당위원장, 전국위원들은 실제로 이것을 메인 구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결선투표 끝에 나경채 대표가 당선되자, 이는 “진보결집 당원총투표”의 승리임을 강조하며 진보결집 기획단 등의 활동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물론,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 이런 방식으로 메인 안건이 되리라고 예상하거나 바란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4자 대표 공동선언 당원총투표

특이한 것은 이 메인 안건의 제목(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에 당원총투표의 제목이 없다는 것이다. 당대회 안건 자료집에서 안건 내용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들은 이것이 실제로 어떤 투표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당,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4자 대표가 6월 4일 합의한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

(당대회 안건 자료집 중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의 당원총투표안)

안건의 실제 내용을 담아 제목을 달아보면, “4자 대표 공동선언 당원총투표” 정도가 될 것이다. 즉, 당대표가 참여한 공동선언(기자회견)에 대해 사후적으로 찬반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의 미래>(노동당 의견그룹)는 “진보정당 건설 추진을 시작할지 여부를 묻는 이러한 총투표는 무의미하며, 당원을 무시하는 행위로 판단한다”는 입장을 발표(6월22일)하였다. 평소에는 덕담과 조언이 오고가던 <당 고문단 간담회> 자리에서조차 당대표의 대표 발의 강행과 무리한 당원총투표 발의에 대해 강력한 성토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진보결집 추진투표” 또는 “진보결집 기획사업 중간투표”를 왜 이렇게 충격적인 방식으로라도 성사시키려 하는지 따지는 일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진보결집 기획의 파행

4기 1차 전국위원회에 집행부가 제출한 진보결집 사업계획은 전국위원들의 토론으로 수정 채택되었다. 첫째, 당원총투표는 필요에 의해 당헌당규가 보장하는 방식으로 안건을 부의하는 과정인데, 미리 사업계획으로 확정하는 것은 부적절하여 사업안에서 삭제한다. 둘째, 진보결집 사업의 추진 대상을 “진보결집에 동의하는 세력”에서 “진보결집의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는 세력”으로 변경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전국위원회의 재소집과 관악을 재보궐선거 파동(후보사퇴, 정동영후보로 단일화)을 겪으며 갖가지 상황이 이어졌고, 결국 당대회 안건을 제출하는 전국위원회에서는 진보결집 사업의 파행과 왜곡을 바로 잡으라는 권고안이 채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보결집 기획단을 재구성하고, 평가와 혁신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4자 정무협의회 참여를 중단하라”는 권고의 내용이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곧바로 무색해진다. 화답은 명쾌하고 신속했다. 당대표가 기획단장을 맡아 새로운 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를 추인하는 당원총투표안을 대표 발의하는 방식으로.

<4자 대표 공동선언 당원총투표>의 ‘무책임’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된다. 첫째, 의결기구의 앞선 결정을 무시하고 의결기구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의미에서 ‘의도의 무책임’. 둘째, 당원총투표의 요건과 운영세칙 마련을 회피한 과정의 무책임. 셋째, 당의 진로에 대한 전당적 합의가 아닌 파행과 혼란을 심화시키는 ‘결정의 무책임’. 넷째, 진보결집 최종안을 유보한 채로 극한 대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의 무책임’이 언급된다.

전국위원회를 통하지 않고 왜 하필 당대표 명의로 직접 발의했느냐는 질문(당대표 안건설명회, 6월11일 제주)에 대한 “당원총투표에 부칠 안건은, 당원들이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최소한 결집의 대상이 되는 외부세력과의 적절한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6월 4일 4자 공동선언에서 그런 요건이 갖춰졌다”는 답변은 오히려 ‘무책임’에 대한 근거를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시기와 절차, 내용과 방식을 가리지 않고 “왜 하필”이라는 질문이 연이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 <4자 대표 공동선언 당원총투표> 안건의 발의는 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보여준다. 의결기구의 결정 이전에 적절한 접점을 만들어야 할 결집의 대상이 선정되어 있으며, 4자 대표 공동선언이라는 정치행위는 그것을 기정사실화하는 핵심 요건이 된다. 전국위원회를 거치지도 않고, 많은 논란과 갈등을 초래하면서도 불가피하게 이번 당대회에서 당원총투표안을 성사시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창당일정을 미루면 국민모임이 독자 창당할 수 있다”는 답변은 새로운 당의 창당 시기를 미리 정해둔 것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과 9월까지 창당한다?

진보결집 기획단은 <진보결집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원칙>이라는 제목의 안건을 대표단회의(5월15일)에 제출하였는데, “우선 진보결집에 동참할 뜻을 밝힌 단위(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을 명시)와 진보결집을 먼저 추진하고 2015년 9월까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진보결집 기획단이 제출한 사업안이 대표단회의에서 수정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인데,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을 명시한 부분과 9월로 시기를 한정한 부분은 자체적으로 삭제된다. 기획은 있지만, 발표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운데 줄이 그어진 (4자의 9월 창당)기획은 곧이어 현실이 된다. 대표단회의 자료에서는 사라져버린 창당의 대상과 일정 부분이 진보결집 기획단의 순회 간담회에서는 수정 없이 등장한다. “6월초에 4자 대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는 발제자의 친절한 (성과 과시용) 설명과 함께. 덕분에 “진보결집 기획단 재구성 권고안”의 찬성 발언으로 이런 정보도 포함되었지만, 이미 전국위원회의 권고나 결정 정도는 4자의 창당 일정에 변수가 되지 못한다. ‘무책임’(의도/과정/결정/결과)의 원성을 무마하며 “대회 후에 보완해내자는” 식으로 답하는 것은 대상과 시기를 이미 결정한 이들이 어떻게든 <4자 대표 공동선언>을 당원총투표의 답안지로 확정하려는 기만이다.

노동당의 결정으로 창당 기획을 수정할 수 있는가

문제의 핵심은 누가 우리의 진로를 (미리) 결정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를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홍세화 전 대표(진보신당)의 그 유명한 글(2011년 겨울,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에 등장하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2015년 여름에는 유행처럼 이렇게 바뀌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당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백으로. 당내외의 집단 서명이 어떻게 부당한 압박이 되어 자존감마저 붕괴시키고 있는지. 명사들의 연속 기고를 보며, 차라리 시말서를 쓰라는 일갈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엄청난 공유와 덧붙이는 고백으로 답하며.

수정하고, 삭제하고, 새로운 것을 합의하는 과정에 대해 누군가는 파행과 흠집내기로 간주한다. 토론, 수정, 반려, 권고와 채택. 숱한 논의와 결정이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답안지에 인쇄될 문항이다. 노동당은 스스로 원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정치가 사라진 장소에서

이글은 연초에 월간 <좌파>로 연재한 “정치하는 당 2015 : 기획의 시작” 시리즈를 잇는 속편이다. 2015년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앞두고 ‘정치하는 당’의 가능성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이어지는 2편의 제목은 “사라진 정치의 장소에서 정치하는 당으로”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배제된 자들의 주체화”라고 정의한다. 몫 없는 사람들의 연대,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치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정치가 사라진 장소에서 다시 어떻게 시작할 지에 대한 제안이다. 어떻게 당을 하려는 지에 대한 고백을 담아.

글쓴이 정진우는 현재 다음의 몇 가지 일을 맡고 있다.
최저임금1만원 모든 노동자권리보장 노동당 운동본부장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민주노총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정책위원

노동자와 임차상인이 함께여는 최저임금1만원시대 기자회견

 [사진설명] 노동자와 임차상인이 함께여는 최저임금 1만원시대 기자회견_6.24 홍대입구 걷고 싶은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