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 2016

[제38호(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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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시간과 일상

시간의 위대함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참혹하거나 허망한 사건조차 대개 시간의 힘을 이기기 어렵다. 물론 사람들에게 이는 두 방향으로 나타난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사건 이전의 사고와 관행을 지속하는 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사건의 충격을 새로운 일상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어쨌든 겉모습은 차분하다. 하지만 그 밑에서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흐른다.

노동당과 같은 좌파정당이 지난 총선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은 비단 숫자로 나타난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당이 의지의 결사체라 할 때 당장은 득표가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말 그대로 저조한 득표로 이어져 온 이 당의 역사와 상태다. 따라서 사람들이 숫자에서 읽은 것은 어떤 경향성이었는데, 그 끝에는 아마 소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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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호(16년 6월호)]|추모|나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 김은진

[제38호(16년 6월호)]|에쎄|해방적 기본소득을 향하여:회고적 스케치 / 안효상

[제38호(16년 6월호)]|혁명가열전(Ⅱ)|승리한 패배자, 조봉암 / 안재성

[제38호(16년 6월호)]|서양철학 산책| ‘우연’ 이 우연이 아닐 때 / 임영근

1110, 2016

[제37호(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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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지연과 결여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은 2016년 총선은 환희나 실망만큼이나 숙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어떤 면에서 변화가 있되 또 다른점에서 보면 변화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며, 더 중요하게는 변화를 이끌 만한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 아는 것처럼 새누리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다. 멀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응부터 가까이는 공천 파동까지 새누리당과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했고,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균열을 낳았다. 여기에 더해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행태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럼에도 선거 전까지 이런 정도로 민심이 이반했는지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야당의 내홍과 분열,답보와 정체가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분위기 역할을 했다.read more

[제37호(16년 5월호)]|기획| 좌담: 4·13 총선이 남긴 것 / 강승, 금민, 허영구

[제37호(16년 5월호)]|기획| 감동이 있었던 낯선 후보의 선거운동 / 하윤정

[제37호(16년 5월호)]|논단| 탈자본주의 이행과 기본소득 전략 / 금민

[제37호(16년 5월호)]|기억| 5·18에 남겨진 것 / 김정한

[제37호(16년 5월호)] “노동자들 상처는 어떻게 치유받습니까?” / 정윤영

1110, 2016

[제36호(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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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말 걸기’로서의 정치

벤야민은 근대의 시간이 균질적이고 공허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시계의 시간에서만 그렇게 느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쁨의 시간은 찰나이고 슬픔과 고통의 시간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를 분명하게 느낀다. 이런 느낌이 어떻게 해도 세상은 잘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과 겹쳐질 때 우리는 중지 상태에 들어간 것 같은 제곱의 느낌을 가진다. 이런 시간 감각은 막혀 있다는 공간 감각과 닿아 있다. 막혀 있다는 공간 감각이 주로 통치자와 주권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왔다고 보지만, 주권자들 사이의 관계도 흩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갑갑한 시간적, 공간적 감각이 현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열려 있는 합법적인 집단적 의사 표출과 충돌의 장인 선거에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지켜보는 것은 일단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현행 대의제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고 또 이 정당들을 정치계급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흐를 수 있는 방향과 틀이 사전에 상당히 정해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보통선거권이 가진 위력 때문에 그 정당들도 대중이 느끼는 어떤 것을 최대한 (자기 식대로 포장해서) 제시하려 한다. 또한 정당민주주의의 선거는 정당체제라는 구도 속에서 진행되기에 반사적인 행위와 결집이 교차한다. 다시 말해 저들을 찍지 않기 위해 이들을 찍기도 하고, 저들이 모일 것을 두려워 해 우리가 모이기도 한다.read more

[제36호(16년 4월호) ]|초점| 후쿠시마 참사,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 양지혜

[제36호(16년 4월호) ]|초점| 제20대 국회, 기본소득법 입법으로 출발합시다 / 박선미

[제36호(16년 4월호) ]|국제| 미국의 거대 전략 : 아시아로의 회귀(!) / 안효상

[제36호(16년 4월호) ]|서양철학 산책|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시대인가 / 임영근

 

1006, 2016

[제35호(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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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숭고함과 우스꽝스러움

혁명이나 위기는 맑스의 말처럼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낸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과거의 투쟁들을 흉내 내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투쟁들을 찬양하기 위함이었고, 주어진 과제의 현실적 해결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 혁명의 정신을 재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이른바 테러방지법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한 것에 맞서 야당들이 필리버스터로 맞서고 있는 모습은 지금이 바로 위기라는 것을 보여 준다. 47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라는 망령, 기본적으로 10시간씩 사자후를 토하는 스펙터클을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른바 “독소 조항”을 제거하면 이 법안을 합의하여 처리하겠다는 야당의 태도를 보면 맑스가 같은 글에서 헤겔을 수정해서 인용한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read more

[제35호(16년 3월호)] |초점|노동개혁은 ‘알바3법’으로부터! / 우람

[제35호(16년 3월호)] |논단| 2016년 세계 및 한국 경제 전망 (2) / 유승경

[제35호(16년 3월호)] |기획|“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총선에서 싸운다”/ 울산동구 노동당 이갑용

[제35호(16년 3월호)] |국제|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5년 / 사코다 히데후미

 

405, 2016

[제34호(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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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경제민주화의 시대(?)

총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정당 내부에서 그리고 정치체제에서 꽤나 격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변화의 시작은 안철수 의원이 작년 12월 중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커다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고, 이는 국회선진화법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180석까지 이번 총선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까지 낳았다. 하지만 “정치란 생물”이란 말처럼 정치는 두려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어떤 것인가 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영입’하면서 지형은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인격은 추상적인 가치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정치에서 인격은 사실 ‘의제’의 체현자다. 이런 점은 과거의 이력이야 어떠하든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김종인 전 의원에 잘 들어맞는다. (김종인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영입한 한상진 교수와는 효과가 다르다. 한상진 교수도 한때‘ 중민 이론’이란 것을 제출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어떤 정치적 효과가 있는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김종인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의 주창자이며, 현행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 즉 119조 제2항이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김종인이기에 경제민주화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고, 정부와 새누리당이 급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얼마나 잘 이행되었는지를 발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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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호(16년 2월호) |초점| 노동 개악 반대는 알바노조의 슬로건이 될 수 없다 / 박정훈

[제34호(16년 2월호) |논단| 조세체제 개혁과 경제모델 전환 / 금민, 장흥배

[제34호(16년 2월호)] |에쎄| 포스트-알튀세르주의자들 (3) : 자크 랑시에르 / 박기순

[제34호(16년 2월호)] |작가의 시선| 미당 서정주, 시인이라는 이름의 재앙 / 임성용

 

1204, 2016

[제33호(16년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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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새로운 시작(!)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시간이 꼭 같지 않다는 것을 해가 바뀔 때만큼 심하게 느낄 때가 없다. 마음 같아서야 모두가 한 해를 보내고 또 맞는 시간을 차분한 휴식과 정리의 호흡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렇지 못하다. 우선 한국의 정치 일정 자체가 이를 가로막는다. 예산을 다루는 정기국회에 의해 언제나 임시국회가 국민과 민생의 이름으로 열린다. 그런데 이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는 법안들이 지금의 ‘노동 개악’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 국민과 민생을 어렵게 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연말연시는 고단하다. 물론 이것만이라면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겹겹이 쌓여 있는 모순들이 일부 해결되면서 언제나 새롭게 중첩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의 개악도 경제 위기 시대에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한국의 대자본이 결국 노동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를 벗어나 보려는,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고육지책에 불과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헬조선’이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가져야 하는 것은 섬광처럼 비치는 열망과 변화다. 2015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중의 정치적 표현이 가장 의미 있게 드러난 것은 1월에 있었던 그리스 시리자의 집권과 12월에 드러난 스페인 포데모스의 약진이다. 물론 시리자의 ‘굴복’이 커다란 실망감을 준 것이 사실이고, 포데모스의 약진도 등장할 때의 열광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보자.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이제 꽤나 오래된 일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받은 상처는 뿌리가 깊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지나면서, 좌파는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히틀러가 차근차근 군비를 증강하고 주변의 약한 곳을 침략할 때마다 거기까지만 양보하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른바 유화 정책과 비슷한 태도를 보인 게 좌파였다. 자기들은 살릴 수 없는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자들이 살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게 아닐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좌파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성공과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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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호(16년 1월호) |삶의 소리| “샤랄라 원피스도 못 입고 한 맺혔는데……그래도 우리가 옳았으니까.” – 7년 재판 패소한 김승하 KTX승무지부장 이야기/ 오준호

[제33호(16년 1월호) |기획| 총파업과 총궐기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약평/ 허영구

[제33호(16년 1월호) |인터뷰| “기본소득,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가 중요!” – 스페인기본소득네트워크 다니엘 라벤토스와의 인터뷰 / 안효상

[제33호(16년 1월호) |추모| 오래된 추모의 글 / 김태호

[제33호(16년 1월호) |탐구| 경제학의 역사 : 정통과 이단의 오랜 대립의 역사 / 유승경

803, 2016

[제32호(15년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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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역사라는 이름의 피난처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이런저런 이데올로그들이 벌이는‘역사 전 쟁’에 어떤 교훈적인 효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역사인식의 제고일 것이다. 이때 제고된 역사인식은 진보의 역전 가능성과 역사의 반복에 대한 깨달음이다. 에릭 홉스봄은 역사가의 임무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오른쪽에 있는 정치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 떠맡은 모양새다.

‘단기 20세기’의 시작인 제1차 세계대전이 진보의 부정적 효과 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면, 그 끝자락인‘역사적 사회주 의체제’의 붕괴는 진보의 역전 가능성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되었다. 이로부터 두 방향의 윤리가 나왔다. 하나는 인간의 분투를 포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감시하고 환기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역사의 반복이라는 주제는 헤겔과 맑스 이후 진부한 것이 되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소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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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호(15년 12월호) |논단| 저성장 시대, 대안은 무엇인가? / 금민

[제32호(15년 12월호) |시평| 이주의 위기: 현황과 쟁점들 / 윤철기

[제32호(15년 12월호) | 21세기 대한민국 자본주의 | “다시 반노예 생활을 할 순 없어” / 신정임

[제32호(15년 12월호) | 서양철학 산책 | 귀게스의 반지와『투명인간』 / 임영근

 

1502, 2016

[제31호(15년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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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반복과 차이

기시감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반복이라고 하는 게 나을 듯싶다. 기시감이라고 하면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반복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듯이 희극으로 끝난다.

역사 교과서라는 사태가 개인의 과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지 분명하게 알기 어렵고, 사태의 전개에 따라 다양한 이용 방법이 모색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의도는 더욱 혼탁해질 것이지만, 온 세상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홍해처럼 갈라진 건 분명하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대칭적으로 갈라진 것으로 아니라 매우 비대칭적으로 갈라져 국정화 반대 전선에 다양한 세력과 사람이 집결했다는 것이다. 만약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할 수 있다면 심판은 마음속으로 이미 승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더라도‘ 87년 체제’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우선 교과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에 담길 내용의 학문적 기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합의, 교과서 자체가 다양해야 하며 국가가 거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의 인정, 그리고 무엇보다 독단적이면서도 비밀리에 이루어진 그 과정에 대한 반발 등이 이 전선이 확대된 이유다. 그 위에 우리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최소한 하나의 정상적인 국민국가로서, 식민지 잔재에 대한 청산의 열망,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정치적 방향 등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압도하는 기초다. 87년 체제의 효과라고 하는 것은 이런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다수의 동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개인적 욕망이든, 그의 국가관이든, 그 무엇 때문이든 간에 이‘ 역사 전쟁’이 유신 시대의 모습과 판에 박힌 듯 똑같아 보여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극으로 끝날 것이다. 물론 그 희극을 보기 위한 우리의 투쟁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말이다.read more

[제31호(15년 11월호) |논단| ‘노동시간 단축 – 완전고용 연동제’의 쟁점들 / 금민

[제31호(15년 11월호) |기획| 민주노총 창립 20년, 현황과 과제 / 허영구

[제31호(15년 11월호) |기획| 1995년~2015년, 한국 경제와 노동자 양극화 / 유승경

[제31호(15년 11월호) |시평| 권력의 역사 유린: 박근혜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비판 / 이동기

1012, 2015

[제30호(15년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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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제레미 코빈, 구교현,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 있는 섬나라와 사실상 섬나라에서, 같은 로고를 쓰는 정당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었다. 같은 점 또 하나는 둘 다 당명이 노동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영국의 노동당은 보수당과 집권을 다투는 양당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의 노동당은 1퍼센트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는 소수 원외정당에 불과하다. 물론 더 큰 차이는 역사다. 전자는 100년이 넘은 정당이지만, 후자는 100년 정당을 꿈꾸지만 1년 앞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끝으로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레미 코빈은 60세가 넘은 ‘구닥다리 좌파’(old left, 당내 우파가 이런 말로 공격했을 때 만약 나이를 거론한 것이었다면 아마 난리법석이었을 것이다)지만, 구교현은 30대말의 알바노동자 출신 신세대(!) 활동가이자 정치가다.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비교는 심심풀이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말기, 경제 위기와 인도주의적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사실상 같은 현상으로 두 사람이 출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민중적인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를 형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일 것이다. 물론 지역마다 상황과 맥락이 다르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이런 체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른바 정치계급이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다수의 정치와 삶이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의 판 자체가 먼저 바뀌는 일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이렇게 삶과 체제의 간극, 보통사람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틈이 새로운 정치를 구상할 수 있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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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호(15년 10월호) |논단| 세계경제 위기의 구조와 양상 / 유승경

[제30호(15년 10월호) |편집위원회 좌담| 위기와 운동

[제30호(15년 10월호) |에쎄| 국가란 무엇인가? / 박기순

[제30호(15년 10월호) |서양철학 산책|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상상력 / 임영근

 

1012, 2015

[제29호(15년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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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희망 없음과 행동에 관하여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그리스에 관해 쓴 글을 아감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게 사유란 희망 없음[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지난 1월말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의 환호 속에 집권한 시리자가 지루한 협상과 국민투표라는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채권자들에게 굴복한 모습을 다루는 글의 시작으로 꽤나 어울리는 제사이다.

하지만 그리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장투’에서 ‘장기’란 거의 인생을 바치는 시간이 된 세상, ‘삼포’를 넘어서 사포, 오포, n포 등등 끝없는 포기 그리고 희망 없음의 다른 말인 달관이 세대를 묘사하는 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사회, 그 어떤 몸짓에도 아무런 메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탈정치화된 정치, 목함지뢰에서 시작해서 정신적 대량살상무기인 확성기로 이어진 전투가 유감과 이산가족상봉으로 나아가는 부조리한 대립의 땅. 이런 상황만큼 우리에게 희망 없음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어떤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유란 대안이라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을 낳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유로부터 나온 대안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인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의 계기이기 때문이다.read more

[제29호(15년 09월호) |시론| 버려진 산 자와 버려진 죽은 자들 ― 그들이 돌아온다 / 김성일

[제29호(15년 09월호) |논단|사회운동정당과 대중정당 / 금민

[제29호(15년 09월호) |국제|그리스: 또 다른 분기점에 서다 / 안효상

[제29호(15년 09월호) |서양철학 산책|어느 철학자의 자화상 / 임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