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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신 포도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지금 기억하기에, 맨 처음 가져 본 철학 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상에 딸려 온 상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딸려 왔다고 표현했지만 상장보다야 상품에 마음이 끌리는 법. 책이 귀하던 시절에 상품으로 받은 책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노란색 표지에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어서 매끄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로마의 황제가 썼다는 점이 흥미를 끌기는 했지만, 『명상록』이라는 제목이 썩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책을 펼쳐 보니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읽고 싶은 마음이 또 한 번 꺾였다. 그래도 몇 줄 읽어 보았지만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까까머리 남학생과『명상록』이 어울린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어린 내가 읽어서 도움 안 되는 내용이 많을지도 몰라.’ 아마 이런 식의 합리화도 했을 것이다. 비닐 커버를 씌우는 기술이 좋지 않아 비닐 커버에 갇힌 표지가 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명상록』도 표지가 비닐 속에서 울고 있었다. 나와『명상록』이 어긋난 것처럼.

그 뒤에 철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명상록』을 읽을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한참 뒤에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서는 한번 읽어 봐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회색빛 전투 장면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 한가운데서 마치 달관한 듯한 태도로 묵묵히 있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명상록』을 찾아 읽지는 못했다. ‘어차피 좋은 번역본도 없을 거야,’ 이런 자기 위안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며 뒤로 미뤄 둔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는가?

 

황제의 조언

『명상록』을 읽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믿을 만한 번역본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고, 사 두고 오랫동안 묵혀 두는 일이 민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121~180)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철학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명상록』은 후대에 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다고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대에 전두환이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펼친 적이 있는데, 우리들끼리 실컷 조롱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빌 클린턴에게는 『명상록』이 그런 책이었던 것 같다. 클린턴이 『명상록』을 즐겨 읽으며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고결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스토아주의 철학자의 책을 클린턴이 제대로 읽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르윈스키 스캔들을 생각하면 클린턴은 별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어떤 비평가의 말마따나, “왜냐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성적 열정의 무분별함을 설교했던 반면 빌 클린턴은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명상록』은 모두 열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의 구성이 특이하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이 첫 문장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이 가족들과 여러 스승에게 빚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일관성 있게 서술된 점으로 미뤄 볼 때 1권은 따로 쓰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권 끝에는 “그라누아 강변의 과디족 사이에서 적다,” 2권 끝에는 “카르눈툼에서 적다,” 이렇게 밝히고 있어 이 두 권은 전장에서 쓴 글임이 분명하다.) 나머지 권들은 모두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필사본에 제목으로 적혀 있다는 “자기 자신에게”처럼 이 책은 자기 자신에게 쓴 수상록 같은 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너”는 저자 자신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선 『명상록』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경구들이 가득했다. 몇 가지 경구를 먼저 읽어 보자.

네 안을 들여다보라. 네 안에는 선의 샘이 있고, 그 샘은 네가 늘 파내어야 늘 솟아오를 수 있다. (7권 59)

불의의 공격에 대비하여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는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 (7권 61)

네가 화가 나 폭발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8권 4)

남의 과오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라. (9권 20)

최선의 복수 방법은 네 적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6권 6)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유명한 대목도 있다. 마르쿠스의 풍부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수반되는 현상들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빵을 굽다 보면 몇 군데 균열이 생기는데, 이런 균열은 어떤 의미에서는 빵 굽는 사람의 의도에 어긋나지만 우리의 주목을 끌어 나름대로 식욕을 돋운다. 무화과도 가장 잘 익었을 때 갈라지고, 농익은 올리브도 썩기 직전에 아름답다.

이처럼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것들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얼핏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모습도 마르쿠스는 아름답다고 이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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