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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의 맥락과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혁명 다시 보기

노경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I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 등 우리 사회각계에서 이를 기념하는 크고 작은 회합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 회합들의 빈도와 규모는 불과 1년 전 이맘 때 즈음에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이른바 ‘민중의 힘’을 직접 목도하기 이전과 이후의 사회 분위기 차이 때문일 것이다. 촛불과 광장의 기억 속에 러시아혁명은 민중의 힘을 과시한 세계사적 선례로서 자리매김되는 듯하다. 자연히 러시아혁명의 현재적 의의를 찾는 작업들은 대부분 민중의 자발성, 민주주의, 대중 정치 등을 키워드로 삼는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정치 지평에서 이는 매우 중요하고 생산적인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작업은 러시아혁명을 야기한 고유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는 아쉬운 경향도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 경향은 러시아혁명을 과거의 세계사 속 여타 민중 반란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서, 그리고 이를 민중과 지배계급의 권력관계라는 모든 역사 시대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개념 틀을 통해 바라보면서, 더욱 강화된다. 물론 러시아혁명이 민중과 지배계급 간의 투쟁의 사례이며 대표적 민중 반란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혁명을 촉발시킨 그 시대 고유의 맥락을 경시하면서 그것의 의의를 적절히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맥락은 로마 시대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 종교개혁기 토마스 뮌처의 농민 봉기, 또는 심지어 1989년 동유럽의 반체제 운동 등을 빚어낸 상황들과는 달리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

러시아혁명은 특정 국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 사건이다. 그것은 19세기 초 유럽의 자본주의 및 산업화의 대두, 그리고 그것들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던 이후의 사회 및 국제 관계의 변동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맥락이 형성되는 시점, 즉 19세기 초반으로 먼저 시선을 돌려야 하며, 그 후 19세기 후반의 변화 역시 치밀하게 추적해야 한다.

이 글은 러시아혁명과 그 결과를 이런 유럽 역사의 변동 속에 위치시키며 넓게 재술하려는 시도다. 러시아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여러 주요 사회과학적 쟁점들, 즉 민주주의와 독재, 대중과 지식인, 민중의 자발성과 지도 등을 추출해 내어 그 현재적 의의를 살피는 노력은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유럽 역사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혁명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II

19세기 초 유럽은 거대한 격변 속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 중심의 전통적 지배 체제였던 구체제가 몰락했으며, 경제적으로는 한때 산업혁명이라 불리기도 했던 기술혁신으로 인해 공장제 기계공업이 주요한 생산 형태로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핵심 축인 사유재산권 관념의 보급과 공장제 기계공업이 만들어 낸 산업화는 여전히 압도적 다수가 농촌에 살았던 유럽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자본주의의 확대로 토지와 노동에 대한 근본 관념이 변했던 것이 이러한 변화를 강요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구체제에서 유럽의 농민들은 자영농 또는 소작농으로 토지에 대한 관습적 경작권을 유지하며, 곤궁했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공동체 관념이 여전히 강했던 농민들은 토지를 협동 노동을 통해 함께 경작하며, 이를 공동의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사유재산 관념의 빠른 보급으로 토지 매매가 자유로이 이루어지면서 부호들이 토지를 대량으로 사들인 후 이를 양목이나 공장 부지 등 사업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자신들의 토지를 매각해야 하는 입장이 되거나 또는 빌린 토지에 대한 관습적 경작권을 박탈당하면서, 도시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도시와 그 인근에서 일어나고 있던 산업화의 물결은 이제는 노동자가 된 이런 농민 출신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밀려드는 노동자들을 감당하기에 당시 공장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다. 주거, 교육, 육아, 위생 등의 기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다수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공장으로 몰린 탓에 저임금은 흔한 현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농촌적 심성과 생활 방식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이 농민 출신 노동자들은 도시와 공장이라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자연 리듬에 맞추어 노동하고 노동과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던 농촌과는 달리, 공장은 기계 리듬에 따른 노동을 강제했고 노동과정 또한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미리 짜놓은 일정에 억지로 맞춰져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 출신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겪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이 새로운 공장제 기계공업이라는 체제에 끝내 융화되지 못하고 도시 빈민, 부랑아, 범죄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불과 수십 년의 기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당시 언론 표현이 말해 주듯 그 시대 지식인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 모든 지식인이 느끼는 것이었다. 자연히 많은 이가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착목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나름의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비판자들 중 가장 낙관적이었던 이들은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대세로 보면서 당대의 문제들을 과도기적 고통으로 취급하려 했다. 물론 이들 역시 현재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당장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말이다. 반대로, 가장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던 이들은 이 문제들을 훨씬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산업화에 대한 전면 거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두 극단파 사이 중간 지점 어디엔가 있었으며 당대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상적 흐름이자 운동이 다름 아닌 사회주의였다. 사회주의자라 자처한 이들은 당시 산업화가 전달해 주는 근본적인 혜택과 장점을 십분 인정했지만, 그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던 경제체제인 자본주의가 그 혜택과 장점을 사회의 극히 일부분에게만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전달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산업화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이었다. 첫째, 자본주의는 사회에서 생산된 재화 모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체제다. 그리고 그 시장은 이윤추구라는 개인의 계산적 동기에 의해 점철된다. 그들이 보기에 그 동기는 전통, 도덕, 사회적 보호 등의 보다 인간적이고 감성적 측면을 점차로 차가운 계산의 속성으로 대체하며 인간 세상을 경쟁의 세계로 만든다. 나아가 시장은 그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에 입장하는 개별 주체들의 체급 제한은 없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일단 시장에 들어오면 그 헤비급이 스스로의 노동의 결과로 몸집을 불렸는지 아니면 단지 부모를 잘 만났거나 여타 부정한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점검할 길도 없다. 둘째,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이 같은 유통과 거래의 형태 말고도 생산양식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매우 지엽적인 생산방식이던 임금노동제를 사회의 주류로 만들어 놓고 있다. 자본주의는 위에서 말한 ‘경쟁’ 원칙 때문에, 인간 노동의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생산성 제고에만 골몰한다. 따라서 효율성만을 잣대로 생산의 도구, 즉 기계류를 만들어 내고 그 기계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려 든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이 도구와 이를 다루는 이들을 노동 현장에서는 가깝게 위치시키지만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분리시켜 놓는다. 하루 종일, 그리고 평생 생산도구를 직접 만지는 이들은 이에 대한 아무런 권리가 없는 대신에, 이를 시장에서 값을 주고 구입한 이들, 즉 소유권자들은 기계와의 먼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소유권을 행사한다. 법률적 차원에서 생산도구로부터 유리된 채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그 도구의 소유권자들에게 하나의 상품으로서 팔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위엄은 점차 사라지고, 생산자들은 대체 가능한 생산의 요소들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이미 취업한 이들은 하시라도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리고 아직 이런 ‘직업’을 찾지 못한 청년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팔릴만한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생산관계에서의 약자의 위치 탓에, 노동자들은 생산과정 내부에 은폐되어 있는 불공정한 잉여가치 분배 기작에 근본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거래 및 생산 구조에서 자본가의 노동력 착취는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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