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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2018년 들어서면서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엔 우리의 철학으론 상상도 못할 일이 수없이 많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70돌”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하여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고 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을 “한반도 평화 원년”으로 만들자고 화답하면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누이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방문했고, 폐막식에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물론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김여정 일행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은 ‘천안함 사태’의 책임 문제라는 명분 속에서 한국 내의 날카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낳고 있다.

올림픽이 서서히 무르익어 가던 2월 13일 지엠 본사는 한국지엠 군산 공장을 폐쇄했다. 폐쇄 결정을 발표하면서 지엠은 최근 3년간 군산 공장 가동률이 20퍼센트에 불과했고 한국지엠의 손실이 심각해서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장 군산 공장 폐쇄로 2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며, 1, 2차 협력업체 노동자 1만 명 이상도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많은 사람은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를 완전 철수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최대 수십 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인데, 이 때문에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지엠의 경영 행태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정부는 지엠의 지원 요청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 속에서 지엠 같은 글로벌 기업이 2008년 이후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향후 경영 전략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 아닌 소득일 것이다. ‘Government Motor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적 자금에 기대 생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는 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가 더 이상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

끝으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장기 지속적인 일의 표출인 ‘미투’가 있다. 사실 왜 안 터지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검찰에서 시작된 폭로는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에까지 나아갔고, 아마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분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간간히 노출되었던 학계와 스포츠계 등의 사건도 새롭게 주목받을 것이다. 도리어 문제는 이런 일이 문자 그대로 만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없는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이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투라는 사태 속에서,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개인들을 비난하거나 징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의 그런 행태가 가능했던 구조적 문제, 이른바 ‘권력관계’가 재구성될 수 있는가가 관건적인 문제이리라. 하지만 그런 권력관계가 재구성되어 모두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할까?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가 햄릿이 말한 “상상도 못할 일”인가? 누구도 그렇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합리적인’ 전략적 판단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주체라면 한편으로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재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이 국면에서 한국을 하나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는 이보다 더 예측하기가 쉬운 일이었다. 인천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엠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이 떠돌고 있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엠이 다른 지역에서 보인 ‘경영’ 행태를 보면 예측이랄 것도 없는 예측이었다. ‘미투’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가 문제였지 영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인지를 헤아릴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일 자체를 상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평화 체제라고 말을 한다. 과거에 열망하던 방식의 통일이 의제로 올라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든 평화 체제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변화까지를 포함하는 게 평화 체제이고, 또 평화 체제가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물론 세력 관계를 염두에 둘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약자도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일 것이고, 상상도 못할 일은 ‘일방적인 군축’이다.

지엠의 군산 공장 폐쇄에 대한 전통적인 대응은 지원과 일자리 유지일 텐데, 현재 지엠의 입장을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해법이 새로운 산업의 유치 혹은 공장의 전환이다. 새로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 자체가 현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의 전반적인 방향은 ‘생산’과 일자리의 탈동조화脫同調化다. 이 속에서 지엠과 같은 사태는 시작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한 마디로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활동 전반에 대해 다시 사고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새로운 경제로 가는 전환이 고통스럽다는 것까지 인정하면서 말이다.

독일의 화가인 샤롯데 베렌트 코린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해방되어야 할 여자란 없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자들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오래 전의 것이라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개의 젠더만 나오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고쳐 말해 본다면, 과거와 현재 권력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모두가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성숙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문명은 어떤 문명일까? 기존 문명의 옹호자들은 그걸 무질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돈에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세 가지 사태에 대해 상상도 못할 일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거나 실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거나 현재의 주체 역량을 벗어나 있기까지 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벌기’일 것이다. 물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항전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장소와 공간이 필요하다. 장소는 모이는 곳이고 공간은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 벌기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3월호 통권5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