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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관하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후안무치일 것이다. 거짓말과 사기꾼의 대명사로 남을 가능성이 큰 전직 대통령의 구속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지방의회의 양당 의원들까지 구석구석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게 우리네 현실이다. 물론 부끄러움은 기성 질서의 이른바 기득권층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갑을 관계의 연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아래 있는 사람을 짓밟고 서려고 한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그런다고들 말할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사회의 분할과 해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처럼 느껴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형성’된 데는 뿌리가 있을 것이다. 그건 식민지 시대, 해방 전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상실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있었는지 자체는 논외로 하자.) 물론 “헤게모니 없는 지배”는 사실상 불가 능하기 때문에 국시raison d’etat라는 게 제시되긴 했다. 그건 다 아는 것 처럼 반공과 경제성장 혹은 근대화였다. 이 두 가지 국시는 특정한 국면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 작동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냉전의 방벽이 단단하던 시절에는 반공은 대단한 주술적 효과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와 근대화를 뒷받침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그리고 1997년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 는 서서히 침식되어 갔고, 산업화와 근대화는 대중의 복지가 아니라 사회 양극화 속의 절망이라는 정반대 효과를 낳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국시는 있었지만, 대중을 사로잡고 그 힘을 특정한 방향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표는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리를 지키고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중의 다양한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분할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난 촛불혁명이 의미가 있다면 그건 이 ‘정치 공동체’가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근거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새로운 방향이란 민주공화국, 공정과 정의, 사람 사는 세상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발의하는 헌법 개정안도 대체로 이런 방향에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최근 기대를 가지게 하는 한반도 평화 같은 구호가 새로운 국시가 될 수 있느냐다. 물론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여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자체로 정치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방책을 선택하고 실행하는가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하고 그것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어떤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정치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합의 혹은 사회계약이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새로운 합의 혹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해서라도 이 정치 공동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아마 이 지점에서 ‘좌파’와 ‘민주파’ 사이에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물론 당장 이 쟁점이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합의와 새로운 합의를 위한 참여의 장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낡은 것을 청소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는 안팎의 반공주의를 일소하는 일이다.

하지만 좌파와 민주파의 논점은 머지않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현재와 미래의 삶의 절박함이 그리 많은 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좌파가 과연 미래를 향한 쟁점을 형성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다. 더 나아가 도덕적 설득력을 포함한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다.

아마 우리의 부끄러움은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이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후안무치가 아니라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고백의 부끄러움 말이다. 물론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면 약간이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4월호 통권57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