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혁명과 혁명의 새로운 정신

1968년 혁명에 어떤 혁명적 요소가 있었다면 그건 ‘혁명 속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어떤 연구자의 분석처럼 1968년 혁명의 독특한 면모는 지배세력에 대한 반항뿐만 아니라 기존 반체제세력의 나약함, 부패, 공모, 태만, 오만 따위에 대한 반항이 있었다는 것에서 나온다. 기존 반체제세력인 ‘구좌파’에 대한 공격 양상은 그 방향이나 정도에서 지역마다 달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는 나약함과 공모, 다시 말해 체제를 변혁한다는 좌파의 본령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죄목이었고, 중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곳에서는 부패와 태만, 즉 자기가 ‘대표하고 지도한다’라던 인민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도덕적 고발이 있었다. 비록 도덕적 고발이 더 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말이다.

1968년 혁명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면, 해당 사회를 근대화시키는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적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자기 변화를 옹호하는 레지 드브레 식의 평가이든, 자본주의 전환의 소실 매개자라고 하면서 무시하려는 태도이든, 아니면 세계체제론자답게 1917년의 지양이라는 월러스틴 식의 예언자적 시선이든, 다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 속의 혁명’이었기 때문에 1968년 혁명 자체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그 정신은 언제나 재활성화된다. 자본주의의 전환이든,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이전 혁명의 지양이든, 영구혁명이든, 혁명은 혁명의 새로운 정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이중의 의미에서 혁명의 (새로운)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급진적 이념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주류 반체제 운동은 이미 그 끝과 궤적을 알 수 없는 점진적인 변화의 열차에 올라탔다. 1968년 혁명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나약함’과 ‘공모’라는 죄악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주류 반체제 운동이 이런 상황이라서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혁명 속의 혁명, 혁명의 새로운 정신도 고인 물처럼 썩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태만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만이 아닐까? 높은 이상이 있고, 굳은 결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헌신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검은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프랑스대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정치문화의 일부분인 혁명적 결사에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난점이 있다. ‘대중’과 구별되는 이 결사가 어떻게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가, 자기의식이 어떻게 보편적 지향일 수 있는가 등등의 난점 말이다. 누군가는 변증법에 기대 ‘민주집중제’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하방에 기초한 대중노선’을 말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디어와 방식이 어떤 때는 잘 작동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시기에는 말장난에 그치기도 했다. 아마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결국 개방성과 수행성만이 잠정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런 구좌파적 해결 방식은 1968년 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잠정적 진리조차 매우 불안정하여 실체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보편성은 기각되고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진리의 담지자이자 방향의 제시자로서의 전위적 결사체는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의는 편재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인 것으로 보일 때 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어떤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의 페미니스트 이론가는 오래 전에, 피억압자 대변하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말 걸기’를 제안한 적이 있다. 좀 더 나중에 영국의 사회학자인 케빈 맥도널드는 1968년 혁명이 사회운동의 의제와 방식을 ‘우리를 만드는 것’에서 ‘타자와의 조우’로 바꾸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문 칼럼을 통해 케빈 맥도널드에 대해 알려 준 신현준에게 감사한다.)

어떻게 표현하든 결국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대화를 제대로 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적절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과 대화의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동등한 사람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결사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고 방에서 나와야 한다. 이럴 때에만 혁명의 새로운 정신이 가능할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8년 05월호 통권5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