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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돌보는 일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도덕의 무능력, 혹은 윤리와 정치의 분리

어느 때보다도 ‘윤리’나 ‘도덕’이라는 말이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사람들이 그동안 숨겨져 왔던 비도덕적인 행위들로 인해 비난과 한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떤 ‘구조’, ‘분위기’ 혹은 ‘상황’ 때문에 자신에게 행해지는 부당함을 온전히 감내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공감, 그리고 이제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우리 마음의 또 다른 한편에는 놀라움과 당혹감 또한 크게 자리하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당혹감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그동안 보여 주고 이룩한 것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일 경우에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윤리’와 ‘정치’를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동일 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사이의 이러한 친화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현실정치의 무대에서 정치인들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좋은 사람’은 타인, 더 나아가 공동체 전체에게 좋은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품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치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가장 고전적인 담론을 제시한 철학자는 플라톤이었다. 통치의 원리가 되어야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는 책 『국가』에서 플라톤은 통치술의 고유성을 설명한다. 모든 기술은 좋은 목적에 사용될 수도 있고 나쁜 목적에 이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의술은 병든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나쁜 의도로 사용될 경우 사람을 죽게 만드는 기술일 수도 있다. 따라서 통치술을 한갓 기술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정치를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플라톤의 적대자였던 트라시마코스의 주장대로 정의란 ‘강한 자의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에게 이러한 귀결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정치란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좋음을 돌보는 행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치 개념은 우리가 보기에 이중의 의미에서 윤리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좋음이란 무엇인지, 혹은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란 이익이 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것이 누구에게 진정으로 이익이 되는 것인지를 정하기란 쉽지 않으며 깊은 성찰과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음에 대한 인식, 즉 윤리학은 정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는 특별히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내가 아닌 전체의 이익과 좋음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치는 그 자체로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윤리와 정치가 사람들에게 분리해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러한 논리 위에 정립된 윤리-정치의 연속성에서 연원한다. 그리고 이 연속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윤리에 대한 특정한 이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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