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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위하여!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 사회평론아카데미, 2018년.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노아의 홍수 같은 ‘신적 폭력’을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건 깨끗한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인간사의 처지는 그런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가 가진 이상이 높다 하더라도 우리 발은 부드러운 흙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의 혁명 과정은 ‘테러’와 ‘독재’라는 형식으로 그 부드러운 흙을 쿵쿵 밟아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도약을 꾀하기도 했지만, 최소한 현재까지는 자기 발목을 부러뜨리는 효과를 낳았을 뿐이다.

오늘날 다양한 위기와 변화의 전망 속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운동’도 비록 정신적인 차원이긴 하지만 그런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지향하는 목표나 터 잡고 있는 근거에서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이면서도 급진적인 태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붕괴 속에서도 그 홍수에 함께 떠밀려 가지 않은 ‘최소 기준’으로서의 자유, 평등, 사회정의, 인간의 존엄성을 그 어떤 사상이나 정책보다 확고하게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예상되는 사회 변화에 가장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신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우월성과 현실적인 대안이기에, 머지않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적 폭력의 유혹을 피해야만 한다면 현실의 변화는 정치적인 것의 자리에 스며들어야 하고, 정치의 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는 여기서 시작해서 저곳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에 관한 경로를 제시하는 문제이고, 실제로 이 경로를 통과하는 실천이다.

스스로를 “상상하는 리얼리스트들”이라고 부르는 사회복지 연구자 네 명의 공동 저작인 『기본소득이 온다: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런 경로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네 사람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에서 도출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국형 기본소득”의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제도와의 실천적 비교 속에서 구체적인 이행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 논의와 실천, 정치적 투영과 전망 등을 검토함으로써, 한바탕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로운 정치적 실천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쉼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이 온다』는 구성이라는 면에서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무엇보다도 저자들이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라는 말로 포착하는 현실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은 저마다 독특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 기본소득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2017년에 기본소득의 베테랑들이 각기 출판한 책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야니크 반더보르트와 함께 쓴 책에서 기본소득을 “자유의 도구”로 제시하고 있으며, 가이 스탠딩은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하며, 애니 밀러는 기존 복지국가의 문제점에 자기 논의를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권의 책은 이른바 “철학적 정당화”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동안 국제 기본소득운동이 걸어온 궤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산주의는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었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 복지국가는 점점 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던 시점에서, 기본소득에서 어렴풋하나마 빛을 찾고자 한 사람들이 취할 수 있었던 태도는 무엇보다 그 정당성을 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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