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이 시작되는 곳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나무랄 데 없는 두 사람이 만난다. 첫눈에 반해 금세 사랑에 빠진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야 겪겠지만,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런 얼개의 이야기는 판타지일 뿐 현실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소개팅에서 첫눈에 반한 상대를 만난 적이 있다는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개팅이었으니 이런저런 사회적 배경은 맞췄을테니 뜻밖의 배경을 지닌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모나 매너에 반했다는 말일 텐데, 소개팅에서 첫눈에 반한 사람을 만났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금 남편 자랑하려고 이 얘기를 꺼내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선배 얘기로는 첫눈에 반하고, 그뿐이었다고 했다. 다음에 만날수록 조금씩 단점이 보이고 부족한 면이 드러나고. 만날수록 재미가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사랑의 힘은 설렘과 놀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쁘지 않네’ ‘호감이 가네’ ‘계속 만나 볼까’ 하는 정도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을 처음 만난다. 만날수록 이런 면모 저런 면모가 보이며, ‘어, 이런 면이 있었네’ 또는 ‘오, 멋진데’ 하며 놀라기도 하고, 이런 놀람에 다음 만남이 설레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감정이 확 달아오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을 지금까지 쌓아 온 믿음과 정으로 연착륙시켜서 오래 지속되는 관계로 만드는 것. 이런 관계가 아마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놀람-탐색-설렘이 이어지며 사랑과 믿음과 정을 쌓아 가는 그런관계말이다.

앎이란 무엇인가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논리학에서 시작해서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 저작을 펴낸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반전 평화 활동도 활발히 펼쳤고 대중서도 많이 펴냈기에 아마 가장 널리 읽히는 철학자 축에 낄 것이다. 그런 러셀은 자서전말고도 철학 자서전이라고 할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도 썼다. 그 책에 평생에 걸친 철학 연구의 여정을 담았다. 러셀은 자신의 길고도 다채로운 철학 탐구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간추려 말했다.

내가 평생 동안 계속 열심히 탐구했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다. 나는 철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며, 또 우리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확실할 수 있고 어느 정도나 의심할 수 있는 것인가를 몹시 알고 싶어 했다.

러셀만이 아닐 것이다. 앎이 무엇이며, 어떻게 앎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얻은 앎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은 서양철학사의 오래된 물음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이런 물음을 다룬 것으로 『테아이테토스』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로 테아이테토스가 나온다. 이 대화편에서 보면 플라톤이 몹시도 테아이테토스의 자질을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도 무리수 이론을 정립하고 입체기하학을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화편에서는 열여섯 살 정도의 어린 나이로 나온다.

『테아이테토스』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어렵기로 유명하고 그만큼 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도 많은 대화편이다. 그런 와중에도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 몇 가지 있는데, 저 유명한 산파술이 이 대화편에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상하고 건장한” 산파인 파이나레테의 아들로 소개하며 자신도 산파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단, 산파들이 사람들의 몸을 출산하도록 돕는 데 비해 자신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핀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네 기술에서 가장 대단한 건, 젊은이의 생각이 모상과 거짓을 출산해 내는지 아니면 씨알 있는 참된 것을 출산해 내는지 온갖 방식으로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네. ( 『테아이테토스』, 150c)

젊은이의 영혼을 돌보며 젊은이들이 참된 지혜를 산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산파는 산파일 뿐 스스로 아이를 낳지는 못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 스스로는 지혜를 낳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께서는 나로 하여금 산파 역할을 강제하셨지만, 직접 낳는 건 금하셨네.” 이렇게 말하며 “앎이 무엇인지” 젊은 테아이테토스가 깨달을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시작할 테니 같이 잘해 보자며 격려한다. 이렇게 “앎은 지각이다” 하는 문제를 테아이테토스와 함께 한창 탐구해 나가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에게 잘 따라오고 있는지 묻는다. 젊은이에게는 거듭 이어지는 이 모든 논의가 일종의 충격처럼 다가온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저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엄청나게 놀라고 있고, 때로는 저것들을 바라보다가 정말이지 현기증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 『테아이테토스』, 155d)

이런 말을 하는 테아이테토스에게 역시 뛰어난 자질을 보여 주는 젊은이라고 칭찬하며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상태이기에 하는 말이네. 이것 말고 철학의 다른 시작은 없으니까. ( 『테아이테토스』, 155d)

놀라워하는 것thaumazein,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경이로워하는 것. 이것을 철학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여기서 잠깐 놀람의 감정을 살펴보자. 놀라움은 원시 환경의 인간에게는 생존에 큰 도움이 되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맹수처럼 새로운 위험이 닥쳤을 때 놀라지 않고 무덤덤했다면 닥친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놀람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흔히 보이는 감정이다.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로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