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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대안’상임연구원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왔고, 정치인, 교수 들이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아래로는 작가, 예술가 들이 있고, 그 밑으로는 연예인, 체육인, 기자들이 포함되었다. 몸을 전문적으로 쓰는 스포츠맨들이 다소 의외인데. 과도하게 몸을 써서 평균수명이 짧은 경향을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들의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데, 격렬한 운동에 더하여 서로 심하게 몸을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면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이런 염증 반응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가, 예술가, 연예인, 기자 들의 공통점이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른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고, 특히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조사는 한국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훨씬 오래 전에 서양의 경우를 보도한 기사도 떠오른다.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휘자가 가장 오래 사는 직업이라는 결과가 또렷이 기억난다. 몸과 마음을 함께 쓰는 직업이라 오래 산다는 해석이 함께했다. 한국의 조사에서는 지휘자가 예술가 범주에 포함되어 결과가 분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휘자는 예술가 가운데서도 특이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창작에 대한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작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야 있겠지만 창작에 대한 압박감과 비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특별하다. 지휘자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과 몸을 가장 이상적으로 쓰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사는 철학자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수명은 어떨까?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젊은이’는 없다. 죄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고 게다가 모두 남성이다.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자료가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3세기 ~ 미상)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한국어판 제목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다. 고대 희랍철학자들을 다룬 이 책은 철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이 책에는 철학자들의 사망 연령도 나와 있는데 그 추정치가 거의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고대 희랍철학자 48명의 사망 연령을 정리한 내용이 『노년의 역사』에 실려 있는데, 한결 같이 오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젊어서 죽은 철학자는 에우독소스로 53세에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60세에 죽은 헤라클레이토스, 63세에 죽은 아리스토텔레스, 66세 죽은 아낙시만드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70대 이상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정확한 나이 없이 그냥 “늙어서” 또는 “매우 늙어서” 죽었다고 기록한 경우가 11명이다.) 100세 이상 산 철학자도 보인다. 데모크리토스 100세 또는 109세, 고르기아스 100세 또는 105세 또는 109세, 테오프라토스 85세 또는 100세 이후. 과음으로 죽은 인물도 더러 있고 노년의 무게를 벗어 버리려 자살한 철학자들도 몇 있다. 테오프라토스의 경우에는 장문의 유서를 실어 놓기도 했다. 그 가운데 스틸폰(기원전 380? ~ 300년)이라는 철학자가 눈에 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키티온 사람 제논(기원전 335?~ 263?년)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셨다”는 그를 위해 저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시가 실려 있다.

메가라 사람 스틸폰을 당신은 아마 알리라.
늙음과 병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한 쌍이 그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도주라는, 이 못된 한 쌍의 말[馬]들보다 나은 존재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비우고 서둘러 떠나갔으니. (『그리스 철학자 열전』 스틸폰 편)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철학자가 오래 살았다고 해서 고대 희랍의 철학자 전체의 평균수명도 높았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생존자 편향’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래 살면서 명성을 떨친 철학자들만 실려 있는 것이다. 젊어서 철학 공부에 매진했으나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의 데이터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명성을 누린 철학자들이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을 테고, 이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늙어감에 대하여 숙고하고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대한 글을 쓴 고대 철학자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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