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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입법’과 새로운 의회-시민 관계 ― 2018년 헌법 개혁 논의에 부쳐*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Tampere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울대 강사

 

1. 근대의 정치적 조건과 직접민주주의 논쟁

‘다수의 독재’ 또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접민주주의 구상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로부터 페이트만Carole Pateman(1940∼ )과 바버Benjamin R. Barber(1939∼2017)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여 민주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이들은 ‘회합 민주주의assembly democracy’에 대한 고전적 이상을 회복함으로써 선거 형태의 대의 정부가 지니는 민주적 결함을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정치과정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스위스의 사례는 직접민주주의가 근대사회의 정치적 조건 속에서도 실행될 수 있음을 입증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회합 민주주의와 달리 본질적으로 대의 정부 시스템의 기반 위에 수립된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과 매디슨James Madison(1751 ∼ 1836) 등은 (직접)민주주의의 불안정함과 인민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대의민주주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보편적 참정권조차도 20세기 초반 들어서야 도입되고 확대되었다.

스위스는 1848년혁명 이후 국민투표referendum 기반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투표와 (완전형) 시민발의 제도가 1874년과 1891년의 헌법 개혁들을 통해 각각 도입됐다. 이후 미국의 많은 주가 스위스 모델을 따르면서 주민투표와 시민발의를 제도화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과 나치 등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일어난 대중 참여의 남용으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면서도 의회와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선호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재생된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전후 구축된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복지국가 질서의 기반에 균열이 오면서 대안적 의제 설정과 직접 행동주의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이 출현했다. “비판적 시민들critical citizens”은 더 투명한 정부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직접적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의회와 정당 등 대의 기구를 우회하는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더 자주 활용됐다. 알트만에 따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총 949회(시민 주도 메커니즘 328회, 위로부터의 메커니즘 621회) 실행됐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적합성, 국민투표와 시민발의의 정책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 등은 계속됐다. 논쟁은 주로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의 고전적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벗지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비판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근대사회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결하도록 모든 시민들을 소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유권자들은 이미 총선을 통해 정당한 정부와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3) 평범한 시민들은 ‘숙고된 판단’을 내릴 역량이 없으며 정책 전문성을 결여하고 있다. (4) 다수의 전제專制와 소수자 인권의 침해라는 위협은 현실이다. (5) 정당과 입법부 등 ‘중간 매개적’ 제도들을 침식하는 것은 ‘일관성 없고, 불안정하며, 무분별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 이 글은 필자의 박사 학위논문 Reaching Out to the People? Parliament and Citizen Participation in Finland(Tampere University Press, 2017)을 토대로 작성됐다. 결론부의 제언은 2017년 11월 3일 국회 박주민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 Altman, D., Direct Democracy Worldw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 Budge, I., “Implementing popular preferences: is direct democracy the answer?”, Geissel, B. & Newton, K. (ed.), Evaluating Democratic Innovations: Curing the democratic malaise? Routledge, 2013, pp.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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