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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 이후를 생각하다*

박정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징역을 산 알바노동자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 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병역법」 제88조 제 ①항이다. 2014년 4월 15일, 나는 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울서 부지방법원에서 수갑과 포승줄을 찼다. 법무부 버스를 타고 달려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동했다. ‘쾅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히는 구치소 건물 안의 수많은 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드디어 좁은 방 앞에 섰다. ‘쾅.’ 마지막으로 방문이 닫히고, 나는 완전히 사회와 단절됐다. 나는 죄인이 됐다.

군복 대신 입은 수의와 내무반 대신 몸을 누인 감방이 내가 죄인임을 확인시켜 줬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교도관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사람들을 “확신범”이라 부른다며 다루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터라, 구속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항소이유서를 쓰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왜 무죄인지를 재판에서 항변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가 부담스러웠던 국선변호인은 변호를 그만두었다.

법을 잘 몰랐지만 항소 재판을 위해 법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치적 이유 이외에는 내가 감옥에 있어야 할 법리적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어설픈 항소이유서를 적었지만 판결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과거 ‘용산 투쟁’으로 추가로 재판을 받게 됐고 당시 청년좌파(현 ‘너머’)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김현성 변호사를 만나게 됐 다. ‘용산 투쟁’ 건은 뒤집기가 힘들어 보였고 (나중에 징역 10월 집 행유예 2년이 나왔다) 용산 사건 대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을 부탁드렸다. 일종의 반칙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받아들여 주셨다.

상고이유서와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죄가 확정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헌법소원을 냈다. 2015년 2월 23일의 일이다. 이날 감옥에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아팠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 6월 28일 드디어 이 사건의 판결이 났다. 28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이 병합된 선고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서

법조문은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읽으면 너무 어렵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 판결을 가지고 말이 많다.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병역법 제88조)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 제도를 만들지 않은 건(병역법 제5조)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잘못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게 합헌이라고 읽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역법 제5조다.

병역법 제5조는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역이 보충역이다. 흔히 공익, 공중보건의, 국제협력의사, 공익수의사, 전문연구원, 산업기능요원 등 군인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보면 이미 대체복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간 것인가?

우선 공익근무요원을 예로 들어 보자면, 공익은 가고 싶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공익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한 사람들은 현행 공익근무를 수행할 수 없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금메달 따고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뒤 4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뉴스를 볼 수 있다. 공익근무요원도 4주간의 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 따라서 총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이 4주 훈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누군가는 고작 4주를 못 견뎌서 감옥에 가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4주’ 대신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의 평화적 신념이 그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4주가 ‘그까짓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4주의 군사훈련을 없애는 걸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미 대체복무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 군대 대신 다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큰 문제일까? 이렇게 쓰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그간 대체복무를 주장해 왔던 사람들은 병역법 제5조에 군사 업무가 아닌 역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시대의 요청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게 만드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쉽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방치된 법조항 때문에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있으니 빨리 일 좀 해서 국민들 전과자 그만 만들라고 한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1950년 이후 오늘까지 6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만여 명의 전과자가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에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의 고통스런 희생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 그렇다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겠다는 병역법 제88조를 합헌이라고 결정 내린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대체복무제도도 거부하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라는 의미다. 이 혼란은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병역의 의무만으로 좁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군대 대신 다른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고 이조차도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또, 이것마저 위헌이라고 할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재심신청과 형사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감당이 안 될거라 판단했을 거다.

* 이 글은 2018년 6월 29일 《허프포스트코리아》 <블로그>에 올린 〈‘대체복무’ 시대에 우리가 맞 이한 과제들〉을 수정하고 보완한 글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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