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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노회찬의 죽음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자살이란 무엇인가?

지난 7월 23일 정의당 국회의원이었던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자살이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한국진보운동과 함께해 왔던 그의 삶을 알기에 많은 사람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슬퍼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은 ‘꼭 그래야만 했는지’를 물으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일반적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이라는 행위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때로는 목숨을 걸고 어떤 일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무릅써야’ 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욕구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살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는 자기모순적 행위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존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간주되는 인간은 살고자 하는 자연적 욕구를 거스르는 행위를 하는가?

현상적으로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는 행위들이 엄밀히 말해 모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견상으로는 자살이지만 실제로는 타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즈음 뉴스를 매일같이 장식하는 이러저러한 자살 소식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울해서, 살길이 막막해서, ‘왕따’를 당해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강제된 선택이다. 살기를 원했지만 최소한의 살아갈 의지마저도 앗아간 이러저러한 환경과 원인 때문에 더 삶을 계속할 의지를 상실한 것이기에, 최종 행위자는 자기 자신이지만 그 행위의 진정한 원인은 외부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 스피노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살은 우연히 칼을 든 손이 외부의 힘에 의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행위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살’로 부르지 않는 행위도 앞에서 말했던 자살적 행위와 같은 것이 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그것도 잘 살기 위해서는 부와 쾌락과 명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맹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삶은 황폐해지고, 돌보고 사랑해야 할 많은 것을 잃는다. 이 경우,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하는 많은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게 된다.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죽이는 것이지만, 실제로 여기에서도 죽음의 실제적인 원인은 내가 아니라 외부 원인에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즐거운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즐거운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이 나를, 나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그것들은 반대로 나의 삶을 불행에 빠뜨리거나 파괴한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나의 삶을 파괴하게 되는 것은 내가 행복(잘 사는 것, 잘 존재하는 것)을 쾌락적인 삶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혼동은 외부의 어떤 것(나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쾌락)에 굴복하여 그것을 올바르게(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것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잘못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살’이라고 부르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즉 그것은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는 타살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자살은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다. 고 노회찬 의원의 자살은 분명 앞에서 언급한 ‘자살의 형태를 띤 타살’과는 조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를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례 하나가 철학사에 있다.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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