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과 미국적 자유주의의 쇠락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1. 도입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7월 6일 이제까지 공언했던 바대로 34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실제로 부과했다. 중국은 그 즉시 같은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적으로 8월 23일부터 나머지 160억달러에 대해서도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국도 역시 이에 대해서도 같은 규모로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미국은 25% 관세를 2,000억달러어치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며, 중국도 그럴 경우에 600억달러어치의 미국 수입품에 대해서 5~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국제무역기구WTO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자유무역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이 WTO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1995년에 출범한 WTO는 냉전 종식 이후 조성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WTO의 출범은 분명히 미국이 대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Gregory Shaffer, China’s Rise: How It Took on the U. S. at the WTO, University of Illinois Law Review, 2018).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던 지역 내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강한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 보호무역은 국제무역을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분할로 이어져 국민국가 간 전쟁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1930년대에 미국을 필두로 서구 제국들이 보호무역을 실시한 것이 대공황을 심화시켰고 결국에는 세계대전을 야기했다는 널리 공유되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은 미국과 영국에서 발달한 주류 경제학에 의해서도 더욱 강화되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주의 경제학은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원형으로 삼아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이상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초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유로운 시장 및 무역의 승리를 역사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미국의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으며, 무역 전쟁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세계 경제의 혼란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 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서구 세계의 오랜 합의였던 자유무역을 부정하고 자국이 만든 WTO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미국이 WTO의 틀을 깨고 보호무역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다.

2. WTO 가입 이후 중국의 무서운 추격

미국의 표면적인 명분은 현재의 WTO 규칙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무역에서 벗어난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WTO 규칙이 미국에게 불리하고 중국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버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그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양국 간의 경제 실적의 놀라운 격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여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이 자유무역 체제에 들어오게 되면 미국의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많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중국이 WTO 규칙에 따라 관세를 낮추면, 미국이 우월한 산업적, 금융적 경쟁력을 통해서 중국으로의 수출을 확대하고 그것에 힘입어 미국의 고용도 확충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크게 빗나갔다.

그 결과는 통계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2000년 약 831억달러였는데, 2017년에는 약 3,756억달러로 거의 4.5배로 늘어났다.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수입의 증가에 의해서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무역 적자가 중국의 노동 집약적인 저가 상품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컴퓨터, 전기 장비, 전자 및 부품 등 고기술 제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7월에 발표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수입에서 “선진 기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3.8%에 이른다(Wayne Morrison, China-US Trade Issues, CRS, 2018).

대중 무역 적자의 문제는 단지 그 규모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역적자의 증대는 미국의 일자리를 감축시켰다. 2014년에 발표된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 사이에 대중 무역 적자로 인해 320만 개의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EPI, China Trade, Outsourcing and Jabs, 2014).

위 통계에 비춰 보면, 미국 행정부는 미중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계속해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런데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무역 적자의 규모 자체가 아니라 2001년 이후 중국이 보여 주고 있는 놀라운 정도의 경제적 추격이다. 2001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명목 GDP 기준으로 중국의 7.9배에 달했지만, 2017년에는 1.6배에 불과하다(IMF, World Economic Outlook). 이 추세라면 중국은 미국을 조만간 추월하게 된다.

중국의 추격은 거시적 차원의 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의 수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세계 4대 은행이 전부 중국 기업이며, 100대 은행에 속하는 은행의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Mark Wu, The “China, Inc.”, Challenge to Global Trade Governance, 2016).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의 WTO 가입이 중국을 미국적 규칙에 복속시켜 미국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17년이 지나고 보니 중국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은 현재 WTO의 규칙이 중국의 경제적 추격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중국의 세계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확립한W TO의 규칙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WTO 체제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돌출적인 정치인인 트럼프에 의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10년경부터 WTO가 중국에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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