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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과 고딕건축

임영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서양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읽어 내는 작업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읽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1892~1968)의 설명을 들어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파노프스키는 『도상해석학 연구』에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지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미술 작품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길을 걸어가는데 건너편에서 아는 사람이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한다. 순전히 시각 작용의 관점에서만 보면 우리는 한 “집합체의 세부요소들”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모습을 본다. 색과 형태를 지닌 한 집합체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집합체를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물”(내가 아는 사람)로 확인하고 세부 요소의 변화를 “사건”(모자를 벗는 행위)으로 받아들이면 이제 “형식적인 인식 행위”를 넘어서 의미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처럼 어떤 행위자가 특정한 행동을 할 경우 우리는 곧장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을 파노프스키는 “사실 의미”라고 부른다.

이렇게 확인된 물체와 사건들은 내 마음에 특정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나에 대한 그의 감정 상태가 살가운지 머쓱해하는지 따위를 곧장 알아차릴 수 있다. 일종의 감정이입 상태가 되면서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므로 이것을 “표현 의미”라고 부른다. 아는 사람이 모자를 들어 올리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림과 동시에 심리적 반응이 일어나므로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를 한 범주로 취급하여 “일차적 의미” 또는 “자연적 의미”라 하자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그런데 모자를 벗는 일을 인사 행위로 알아차리게 된다면 이제 전혀 다른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사실 모자를 벗는 인사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서양 고유의 인사법이기 때문이다. “무장한 병사들이 헬멧을 벗어 평화적 태도를 보이며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던 중세 기사들”의 습성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은 이런 행위가 “공손함을 뜻하는 기호”임을 알지 못한다. 어떤 행동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특정 문화의 고유한 관습과 문화 전통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이런 이차적 또는 관습적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차적(자연적) 의미는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이차적(관습적) 의미는 지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파노프스키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나의 친지가 한 행동은 이렇듯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운 사건을 구성하고, 분위기와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며, 관례에 따른 인사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파노프스키, 『도상해석학 연구』, 24쪽)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행동은 그의 ‘인격’을 드러내주기도 한다고 파노프스키는 덧붙인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사회적 교육적 배경은 무엇이며 사회적 경력과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지가 그의 인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며 아울러 “사물을 관조하고 주위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이 될 것이다. 흔히 우리가 세계관이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런 징후가 드러날 뿐이라고 파노프스키는 말한다.

단순히 이 행동 하나를 근거로 해서는 그 사람의 내면적 초상화를 그려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유사한 수많은 관찰 결과를 서로 조합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 국적, 사회계급, 지적 전통 등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연관시켜 해석해야만 그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적 초상화에서 명료히 드러나게 될 질적 요소들은 각각의 개별 행동에도 암암리에 내재해있다. 그래서 거꾸로 모든 개별 행동에서 그러한 질적 요소들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책, 25쪽)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일은 이를테면 내면의 초상화를 그려 내는 작업이 된다. 그 사람을 형성해 온 배경과 역사 를 샅샅이 살펴야 하는 한편, 개별 행동에 스며 있는 질적 요소들을 해석해 내기도 해야 한다.이런 식으로 발견되는 의미를 파노프스키는 “본래 의미”라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일차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가 현상에 해당한다면, 본래 의미는 본질에 해당한다.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시각이 전달하는 의미 아래 숨겨져 있는 본래 의미를 찾는 작업이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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