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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에서 마주한 국가의 민낯과 정부의 대체복무제 계획

오경택 병역거부자,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반전평화모임 공동대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주민들을 내쫓기 위해 아침부터 찾아온 강남구청 공무원을. 그 뒤를 따라 먹구름처럼 몰려온 용역 깡패를. 그들이 건너온 양재천 다리와 개천 건너 보이던 반짝이는 타워팰리스를.

지금은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타워팰리스가 ‘가장 비싸고 좋은 집’의 대명사였다. 바로 그 부자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이동 재건 마을’이 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로25길 32(옛 주소로는 포이동 266번지)에 위치한 이 마을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넝마주이’와 ‘부랑인’ 등을 자활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하면서 만들어졌고, 1990년대 말까지도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 가난한 상이용사 가정 등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강제로 이주한 곳이다.

2011년 6월 12일, 작은 불씨로 시작된 화재가 초동 진화 실패로 마을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강남구청과 서울시는 마을 주민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 했는데, 허허벌판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한 마을 부지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던 집들이 불타 없어지고 폐허만 남자, 구청은 주민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계고장이 나붙고 공무원들은 용역 깡패와 함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주민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마을에 머문 시간도 짧았고 성실하게 일하지도 않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국가’를 대신한 공무원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그들이 데려온 깡패에게 패대기쳐지는 주민들을 보고서 생각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최소한 ‘양재천 건너’에 서 있어선 안 되겠다고. 이후 주변의 동료들을 따라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끊임없이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찾고자 했다.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세월호와 같은 투쟁에 연대했고 제주 4·3, 광주민중항쟁, 베트남과 이라크 파병의 역사를 학습했다. 근래에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처벌하고 여군에 대한 성폭력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나라의 군대는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 요동치는 배 위에서

대학을 졸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영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입영 거부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사법 절차를 설명하자면, 입영 날짜를 어겨도 3일 이내에 훈련소로 찾아가면 ‘지연 입대’ 처리를 받을 수 있다. 그 기한마저 넘기면 병무청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를 거쳐 재판을 받으면 「병역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나 또한 그와 같을 줄 알았다. 올해 5월에 시작된 재판이 6월 변론 종결을 거쳐 7월 17일 제헌절에 선고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재판을 받던 중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 사건을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고 8월 30일에는 공개 변론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뒤 6월 28일에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일방적 처벌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다. 바깥세상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던 나로서는 마냥 기쁘진 않았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돼 버려 걱정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감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역거부운동에 이전과는 다른 국면이 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선고 날이 다가왔고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저 멀리 대체복무제라는 육지가 보이는데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할 듯 요동치는 처지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란스러울지언정 무력하지는 않았다 점이다. 사법부에서 넘어온 변화의 단초가 ‘병역’라는 단단한 벽에 조그마한 균열을 냈으니, 법정투쟁을 열심히 하면 정과 망치가 되어 유의미한 싸움이 될 것도 같았다.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항소심은 곧장 잡히지 않았다. 반면, ‘대체복무’에 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국방부, 법무부, 병무청이 공동으로 실무추진단을 꾸리고 국가인권위, 로스쿨 교수, 참여연대, 군인권센터 등 학계와 시민사회 진영을 아우르는 자문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두 기구가 중심이 되어 대체복무제 도입을 활발히 논의했으나 결과물은 썩 훌륭하지 못하다. 11월 중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대체복무제 정부 안’의 내용이 “교정 시설 36개월 합숙 근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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