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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 권문석을 추모하며

 

육 년 전 급작스러운 그의 죽음을 접한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속에 꼬박꼬박 그가 떠나간 날을 지나고 있다.

사회운동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으로 이루어질 터였다.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가 되자, 이 변화에 대한 태도 속에서 이른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맑스주의 등등.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가 다수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 사람들은 그 다수를 구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속에서 사회운동이 탄생했다. 사회운동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처럼 거대 담론을 가지고 국가를 투쟁의 중심 지점으로 보는 것부터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사회운동까지,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되었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라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권문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그가 진보정당의 활동가로, 정책 기획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은 적극적인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여성의 권리 등 새로운 권리 운동의 등장과 생태적 위기에 맞서는 환경 쟁점의 부상에 대해 힘겹게 즉자적으로 대응할 뿐인 상황이었다. 이 바탕에는 “보편적 계급”,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계급”으로서의 노동자운동의 정체성화와 주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지역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감지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늦게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몰랐다기보다는 기존의 진보운동이라는 틀로 다 욱여넣으려고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혁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원인을 다 드러내기는 어려우니, 일단 기존의 성취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추상적 대의와 현실적 전략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구성하게는 하지만 한번 구성된 정체성을 바꾸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니 목숨을 건 도약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낙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적절한 착륙 지점에 도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허공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어떤 준거점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이 감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권문석이 이 일의 선두에 섰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땅에 발 딛고 서기를 원했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그를 그 무엇보다 “사회운동가”로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오늘날에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게 사회운동가의 운명이 되었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알바노동이라는 형태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알바들의 내적 힘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변화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면, 알바노동의 가시화는 변화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알바들이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가리키려는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권문석을 창립 회원일 뿐만 아니라 명예 의장이라고 생각하며, 알바연대는 그를 대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내세운 의제, 그가 개척하고자 한 활동이 조금씩이나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단두대로 가면서 시드니 카턴이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라네.” 이런 점에서 조숙한 사람,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사람과 함께했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19년 06월호 통권69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