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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와 휴식

박기순 충북대 철학과 교수

1. 필요한 일과 필요하지 않은 일

플라톤이 남긴 저작들은 대부분 마치 희곡처럼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대화편”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글을 썼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에게 대화는 철학하는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철학적 방법으로 알려진 ‘변증술dialectics’이 ‘대화하다dialegesthai’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변증술은 말logos을 할 줄 아는 두 사람이 서로 주장하고 반박하고, 그리고 의견을 수정해 가면서 중요한 질문, 예를 들면 정의란 무엇인지 혹은 사랑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일컫는다. 플라톤의 각 대화편에는 고유한 대화 주제가 있고 그 주제를 논하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항상 주인공으로, 그리고 그의 적대자들이었던 소피스트들이나 깨우침을 받아야 할 젊은이들을 대화 상대자로 등장시켰다. 대화편의 제목은 보통 대화 주제나 대화 상대자를 따라 지었다.

『파이드로스』는 이 대화편 가운데 하나다. 파이드로스라는 대화 상대자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이 대화편은 사랑과 연설술을 논의 주제로 삼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대화편이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정작 이 주제들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오히려 이 두 주제에 관한 대화들 사이에 마치 간막극처럼 끼워져 있는 매미 신화와 관련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 곧 철학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파이드로스에게 설명한 후, 어떻게 하는 것이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대화의 도입부에서 파이드로스가 뤼시아스라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크라테스를 만나 뤼시아스가 사랑에 대해 아주 아름다운 말을 했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잘했다던 뤼시아스의 이야기는 결국 소크라테스에 의해 반박되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도대체 말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검토해보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안에 파이드로스는 이렇게 답한다.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막말로 그런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군들 뭐 하러 살겠어요?”(플라톤,『 파이드로스』, 258e, 김주일 옮김, 이제이북스, 103쪽.) 소크라테스는 필요한가를 물었고, 파이드로스는 긍정으로 답한다. 그런데 여기서 합의되고 있는 필요성, 즉 대화의 필요성은 어떤 종류의 필요성일까? 살기 위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잠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의 그 필요성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그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죽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생존을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그런 일은 아닌 것이다. 이 대화의 필요성은 그러한 필요를 넘어서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필요 이상의 것이고, 혹은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왜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에게는 필요한 일인가? 심지어 파이드로스는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살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삶에 필요한 것인가? 당연히 그것은 생존으로서의 삶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의미의 삶, 즉 생명의 단순한 보존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좀 더 고결한 삶에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파이드로스가 말하고 있듯이 그러한 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어떤 필연성에 얽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우리는 예속되어 있고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그러한 필연성에 얽매 있을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는 등의 일은 모두 생존의 필연성에 묶여 있을 때 사람들이 하는 것들이다.

반면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지만 좀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하는 일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해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그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타인과 나누면서 대화를 하는 일, 이것이 그러한 일에 속한다. 그래서 파이드로스는 삶은 오직 이것을 할 때만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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