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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정책의 파산에 대한 고찰

– 진보적 신자유주의란 가능한가?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들어가며

프랑스에서 지난해 11월 17일부터 ‘노란 조끼 시위 le Mouvement des Gilets Jaunes’가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마크롱 정부가 단행한 유류세 인상이다. 유류세 인상은 단순히 세수를 올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6년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가입국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래서 마크롱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통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한편 그 재원을 전기차 보조금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사안만을 놓고 보면, 프랑스 서민들의 거센 저항을 납득하기 어렵다.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것은 전 세계 환경 단체의 요구이자 대부분의 국가가 합의하고 있는 사안이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포퓰리즘의 도전으로부터 자유주의를 구원할 지도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당선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여 포퓰리스트로 지목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마크롱은 결국 시위대에게 항복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 12월 초 문제가 된 유류세 인상을 철회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부터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는 등 시위대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노란 조끼 시위가 마크롱이 추진하고 있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였음을 보여 준다.

이 글은 마크롱이 집권한 후 1년 반 동안 어떠한 구도에 따라 정책을 추진했는지를 검토해 봄으로써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의 의미와 파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지향

마크롱의 정책 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정치체제에는 수많은 흐름이 존재하지만, 1958년부터 최근까지는 대체로 두 개의 정치 동맹이 각각 하나의 지배적인 정당으로 결집해 있었다. 프랑스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교수인 필리프 아스크나지에 따르면, 자유주의자와 좌파는 사회당으로 결집해 있었고, 보수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했다(Philippe Askenazy, The Contradictions of Macronism, Dissent, Winter 2018).

전통적인 두 정당은 세부적인 정책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유럽 통합에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국수주의적인 극우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급부상하여 기존의 정치 구도를 위협하고 있으며, 좌파측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흐름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했다. 필리프 아스크나지 교수는 마크롱이 지배적인 두 동맹 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정치 동맹을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어떤 개념으로 사용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와 구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유주의는 대체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적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에서 벗어나 자유의 신장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자유주의의 내용 변화는 복지국가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하는데, 복지국가와 병존하는 자유주의는 미국에서는 근대적 자유주의Modern Liberalism로 불리기도 하며. 유럽적 맥락에서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포괄한다. 이에 반해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인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를 주창하면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시장 자유주의 혹은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개혁하자’라는 뜻으로 “근대화하자moderniser”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마크롱으로 결집한 정치세력들은 근대성에 대한 비전은 상이하지만 모두 프랑스를 근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근대성이란 대체로 소수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근대성을 프랑스를 디지털 혁명의 창업 국가로 만드는 것에서 찾는다.

마크롱은 이 두 흐름에 포함되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예를 들어 성소수자 조직에서부터 첨단 산업의 기업가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서 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할 것이며 성평등 혐오주의자와 싸워 소수자의 권리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지식인과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전직 투자은행가로서의 경력을 살려 일관되게 친기업적 강령을 내세움으로써 신자유주의자의 지지를 받았다. 마크롱으로 결집된 정치세력들의 공통점이라면 소수자까지 포함하여 동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한편 개방적이고 다문화적인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유럽 통합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정치적 동맹에 힘입어, 마크롱은 유럽 통합과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인 르 펜과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보수 가톨릭 신자인 공화당의 프랑수와 피용를 패퇴시킬 수 있었고, 디지털 혁명에 부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을 내세워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좌파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을 따돌렸다. 물론 그의 승리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마크롱은 1차 선거에서 24%의 지지를 받았지만, 르 펜과 피용도 각각 21.4%와 20%의 지지를 받았다. 만약 중도파인 프랑수아 바이루가 마크롱을 지지하면서 사퇴하지 않았다면 마크롱은 대통령 결선투표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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