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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과 북한의 미래 비전: 하노이 북미 정상 회담을 중심으로

차문석 통일교육원 교수

2018년 6월 12일과 2019년 2월 28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북미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2차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서로에게 추구하는 바와 자신이 세워 놓은 미래 비전이 극도로 상이한 두 국가는 두 차례 만난 뒤에 다시 뿌연 안개 속으로 진입해 버렸다.

안개 속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하노이 회담은 여러 모로 스펙터클한 이벤트가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협상의 진행과 결렬 과정은 이 두 상이한 세계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단면을 비추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양국 간 관계라는 것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주시하게 만들었다. 특히 실현 가능성을 떠나 북한이 추구하는 미래 비전을 이해하는 것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설명하는데 중요하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다. 북한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자신의 미래 비전의 실현에 불가결하고, 그 비전의 완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출발 지점과 결렬 지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는 2018년 10월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2018년 10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있었고 이때부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가 개시되었다.* 당시 협상의 출발점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 선언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었고, 정확하게 말하면 ‘출발 지점’이었다. 이후의 전개를 보자면, 미국은 영변 이상(이른바 ‘플러스 알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북한은 대북 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추어, 양자 간의 협상이 진행되어 왔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이외의 핵시설과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그렇게 한다면 미국은 제재 일부 완화와 연락사무소 개설로 보답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발 지점에서 무언가 변화가 발생한 것은 2019년 2월의 비건의 방북 때였다. 2019년 2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때 비건이 북한 측과 실무 협의에서 합의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심적인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면 미국은 제재 일부를 완화한다(US would lift some sanctions on North Korea in exchange for a commitment from Kim to stop nuclear-fuel production at a key nuclear facility)”라는 것이었다.*** 또한 연락사무소 교환, 평화 선언 체결, 미군 유해 송환 등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의 출발 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실무 협의를 진행한 비건의 명백한 실패이자 북한의 대성공일 것이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트럼프가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였다. 따라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결렬의 씨앗이 이미 존재했고 이 씨앗은 2월 28일 정상회담에서 발아해버렸다.

 

* 2018년 7월 6일 방북한 폼페이오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다. 7월 6일은 미국이 6월 15일에 기획을 완료한 중국에 대한 관세전쟁을 실행하는 날이었다. 따라서 4차 방북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본격적 논의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 애초에 판문점에서 실무 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으나, 북측이 비건을 평양으로 초대하였다.

*** VOX.com, 2019년 2월 26일.(http://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_board&wr_id=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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