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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는 회사

―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13년간의 눈물

임성용

2019년 4월 23일 콜텍의 노사가 드디어 합의문에 서명했다. “4,46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공동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출처: 임재춘 페이스북)

장장 13년의 투쟁이었다.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중의 한 곳이었던 (주)콜텍 해고노동자들이 13년의 복직 투쟁 끝에 마침내 회사와 합의했다.

지난 4월 23일, 노사는 아홉 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어렵사리 합의안을 마련하고 조인했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한지 4,464일 만이었다.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회사의 유감 표명, 그리고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의 명예로운 복직과 퇴사였다. 아울러 콜텍지회 조합원(25명)에 대한 합의금 지급과 민형사상 소 취하 등도 합의했다.

충남 논산에 있던 콜텍은 2007년에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콜텍에서 통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당했다. 해고노동자가 복직해도 지금은 돌아갈 공장이 없다. 그래서 합의문을 보면, 이인근(콜텍 지회장) 등은 “5월 2일 복직시키되 5월 30일부로 퇴직”하기로 했다. 또한 “소급해서 근로관계를 부활시키거나 해고 기간의 임금 등을 지급하지는 아니한다”라고 했다. “회사는 국내 공장을 재가동할 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 채용한다”라고 했지만, 그럴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콜텍 사장 박성호는 이미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타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인천 부평에서 함께 운영하던 (주)콜트악기도 폐업한 후 중국으로 이전했고 콜트 노동자들 역시 전원 해고되었다. 두 회사 모두 사장은 박성호이며 법인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콜트와 콜텍은 똑같은 정리해고 사업장이었고,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한 몸으로 연대해 왔다. 다만 콜텍이 먼저 합의했다. 합의서 한 장 받는 데 13년이 걸렸다.

2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던 사람

회사는 지독했다. 노사 협상이 시작된 것은 복직 투쟁이 시작되고 무려 12년 만인 2018년 12월 말이었다. 노동자들이 협상 당사자인 박영호 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13년 만인 2019년 3월 7일에 있었던 8차 협상에서였다. 사장을 만난 그날도 협상은 결렬되었고, 3월 12일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조합원이 단식을 선언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임재춘은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42일 동안 단식했다. 그의 나이는 57세. 흰색 한복을 입고 앉아서 단식하는 그의 머리카락은 한복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가 해고될 당시에 마흔네 살이었을 테니,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 온 세월이 버림받은 노동자의 이력으로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난 4월, 필자가 단식투쟁을 지지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몸무게는 47kg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약간 말을 더듬는 듯한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로 그는 말했다.

“13년을 길거리에서 싸우고 농성할 줄 알았으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깊고 강인한 눈빛을 가진 눈에 고인 눈물이 안타까웠다. 옆에 앉은 이인근 지회장과 김경봉 조합원은 차마 그 모습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전히 제 꿈은 명품 기타를 만드는 겁니다.”

과연 그는 이번 생에 다시 기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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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화물 운수 노동자, 시인. 시집으로 『하늘공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뜨거운 휴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