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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을 다룬 영화 《기생충》?

강준상*

한국 사회에서 영화 《기생충》은 그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이 된 듯하다. 많은 평론가가 《기생충》을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로 소개하고 있고, 연예계 뉴스가 아닌 정치·사회면의 기사와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빈부 격차나 갑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기생충》을 언급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평적 의미에서건 대중적 의미에서건 성공한 작품은 맞다. 칸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사회에서 소통되는 방식은 좀 불편하다. 《기생충》이 계급투쟁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거기서, 그 불편함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이 글은 《기생충》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영화비평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기생충》이 동시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계급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집중해 몇 가지 지점들을 짚어 보고, 영화의 의미를 조금 다른 길로 비틀어 보고자 한다.

산수경석! 상징적이네!

기택(송강호) 가족의 희비극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기우(최우식)의 친구 민혁(박서준)의 방문이다. 민혁이 와서 처음 한 일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선물로 준 산수경석을 전달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이상한 컷이 하나 있다. 바로 산수경석의 시점 숏(산수경석의 시점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선물함이 열려 산수경석이 보이는 컷 바로 뒤에 그것을 바라보는 기우의 묘한 표정을 산수경석의 시점에서 극단적인 로우 앵글(낮은 곳에서 위를 향해 찍는 앵글)로 보여 준다.

함이 열리고 보이는 산수경석(왼쪽), 바로 다음 컷(오른쪽)은 산수경석 시점 숏으로 기우를 보여 준다

이것은 비상식적인 시점 숏이다. 사물의 시점 숏은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점 숏은 대부분 사람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 간혹 동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 사물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러고 나서 평범한 앵글로 돌아가, 뒤의 민혁이 기택 가족들에게 산수경석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때, 기우가 돌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야,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후에도 그는 산수경석이 “상징적”이라는 말을 한 번 더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물, 돌덩어리에 불과한 산수경석을 의인화라도 하듯 시점 숏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기우가 산수경석을 보며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상징적”이라는 단어였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이후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는지는 글의 후반부에서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상징”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상징symbol은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어떤 유사성에 의해서 구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징으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승인된 약속’으로서의 사회적 성격을 보통 포함하고 있다.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가 사용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비둘기에게 평화를 의미하는 어떤 과학적이거나 물질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는 본성으로서 그 관습, 그 제도 중에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고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산수경석은 영화 《기생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고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강준상
다큐멘터리 《달려라 휠체어, 달려라 박정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을 연출했으며, 공연연출작으로 《옹달샘》, 《꼴》, 《줄탁동시》, 《스퀘어 – 다시 지금 여기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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