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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한일 연대 – 2019

이경자 반핵지구인행동(반지) 회원

AWC(‘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한국위원회와 일본연락회의는 정기적인 연대를 통해 핵과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와 도쿄올림픽에 대한 현황을 공유하고 한 걸음 진전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연대 행동을 마련했다.

“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인재. 국경을 넘어 연대하라!”
“福島, 終わらない人災, 国境を越えて連帯せよ!”
“NO MORE FUKUSHIMA!”

2019년 11월 10일 저녁

갑작스레 장대비가 쏟아졌다. 짧지만 꽉 짜인 일정을 앞두고 걱정이 많아졌다. 멀리 일본에서 달려온 이들이 무사히 1박 2일의 일정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중을 나갔다. 서울을 거쳐 대전에 도착한 일행들과 서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며 밀린 얘기들을 쏟아 냈다. 피곤한데도 기자회견에 쓸 피켓을 만들고 강연 자료를 수정하는 60∼70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몇 년 전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원전 필요 없다. 후쿠시마의 여성들原発いらない 福島の女たち’에서 활동하는 구로다세츠코黒田節子(69세) 선생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후쿠시마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그 단체는 후쿠시마 핵 참사 직후인 2011년 10월과 오오이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던 2012년 6월 각각 도쿄 경제산업성과 수상 관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며, 매년 3월 11일 집회와 시위를 이어 가고 있고, 1년 동안 활동한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끔찍했던 그때 일을 되돌아보자.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덮쳤고, 핵발전소에 전원이 끊기면서 1호기가 폭발했다. 4일 만에 2, 3, 4호기도 폭발했고,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다.

후쿠시마 전역에 걸쳐 피난 명령이 내려졌고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핵발전소 사고였다. 지진이 잦고,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여 안전 민감도가 높을 것이라 믿었던 일본의 민낯은 매우 처참했다.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체계도 없었고 훈련도 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 간 나오토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칭송되던 원자력–핵에너지의 위험하고도 무시무시한 실상을 목도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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