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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선거법 개정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러려고, 그 난리를 벌였나?’ ‘이러려고 내가 ○○를 지지했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법 개정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크리스마스 시기 무기 실험이 묘하게 비슷한 말처럼 들리는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물론 이러는 사이에도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온다.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니, 안타깝더라도 매듭지을 것은 매듭짓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과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절망을 느낀다.

인위적인 매듭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동기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끊거나 잇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토니오 그람시가 104년 전에 쓴 글을 권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일어날 때마다, 이게 나에게는 1월 1일이라고 느껴진다.

그게 내가 고정된 만기일처럼 도래하는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런 1월 1일은 삶과 인간의 정신을 최종적으로 깔끔하게 맞춰진 균형, 미결 금액, 새로운 경영을 위한 예산 등이 있는 상업적 관심으로 바꾼다. 1월 1일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정신의 지속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진지하게 한 해와 다음 해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심하고, 지키지 못한 결심을 후회하고 등등. 이것이 일반적으로 날짜를 가지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대기가 역사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좋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모든 선량한 사람이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는 네다섯 개의 중요한 날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날짜는 역사에서 농간을 부린다. 1월 1일도 이 날짜에 속한다. 로마 역사의 1월 1일, 중세의 1월 1일, 현대의 1월 1일.

그리고 이 날짜는 너무나 강력하게 스며들어 있고 화석화되어, 가끔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삶은 752년에 시작되었고, 1490년이나 1492년은 인류가 뛰어넘은 거대한 산맥이 되어 갑자기 신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날짜는 역사가 동일하게 중요한, 변화하지 않는 노선에 따라, 갑작스러운 중단 없이 지속해서 펼쳐지는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난간이 된다. 마치 극장에서 필름이 찢겨 잠시 밝은 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

이게 내가 1월 1일을 싫어하는 이유다. 나는 매일 아침이 내게는 1월 1일이기를 원한다. 매일 나에 대해 숙고하고 매일 나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 하루도 이렇게 하지 않는 날이 없게. 나는 내 휴식 시간을 스스로 정한다. 삶이 너무 격렬하다고 느끼거나, 좀 마음껏 즐겨 여기서 활력을 찾고자 할 때 말이다.

정신적으로 시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 순간이 지나간 것과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매 순간이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법으로 정해진 집단적 리듬으로 축하해야 하는 날은 없다. 나의 고조할아버지 등등이 축하했기 때문에 우리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껴야 한단다. 이는 불쾌한 일이다.

나는 또한 이런 이유로 사회주의를 기다리고 있다. 사회주의는 우리 정신에 울림이 없는 이 모든 날짜를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다른 날짜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최소한 우리 자신의 것이 될 것이며, 우리가 우리의 어리석은 조상에게서 아무런 유보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나는 1월 1일을 싫어한다」, 『전진』, 1916년 1월 1일. https://www.viewpointmag.com/2015/01/01/i-hate-new-years-day/에 실린 영어 번역본에서 번역.)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1~02월호 통권75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