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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사태(?)

모두의 바람과 달리, 살짝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던 코로나19 사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후 사태는 알 수 없는 위험과 인간의 의지 사이의 충돌 속에서 정말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기초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자연을 정복한 것처럼 보인 때가 있었지만 실상은 변형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 인류가 성취한 가장 큰 진보 가운데 하나가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 웰빙의 진전이었다. 의학이 우리 몸에 기생하는 미생물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던 전염병들이 다시 살아났다. 인간이 자연에 깊이 개입할수록 자연도, 이 경우에는 병원체들도, 진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공동체가 위협에 맞서는 가운데 점점 더 예외 상태가 정상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벽두인 2001년 미국은 “애국법”을 통해 법무부 장관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가 의심되는 모든 외국인을 “구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속에서 해당하는 개인들은 법적 지위가 철저하게 말소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구적 수준의 심각한 기후변화에 지구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 속에서, 이후 새로운 인간 공동체가 어떤 양태를 띨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구적 수준의 주권체가 형성될 것인가, 기후변화 이후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당연하게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끝낸 근대국가 체제가 위기에 빠져 있으며 이는 또다시 새로운 “혼돈”으로 우리를 밀어 넣을 것이고 이런 “긴급사태(필요성)”는 새로운 주권으로 나아가는 예외상태를 낳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감염의 급증이 또 다른 긴급사태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대의 국가는 이와 관련한 법률을 비롯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긴급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necessitas legem non habet”라는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아니면 이후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감염병이 의학계에서 말하는 “질병 X”일 경우, 그런 상황은 예외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우리의 삶은 예외상태가 정상상태가 되는, 새로운 일상화의 국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첫 번째로 우려되는 것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체제의 존재 이유나 원리가 파괴되는 경향이다. 이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예외상태가 프랑스혁명기에 나왔음을 감안하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그 반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우려는 이렇게 예외상태가 정상상태가 되는 상황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을 사람들은 당연히 피억압 계급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어찌 되었던 내전을 초래할 것이고, 그 내전은 폭력으로 얼룩질 것이다.

벤야민은 오래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예외상태가 도래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는 “진정한 예외상태”가 간헐적으로만 있었다. 그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것인가? 이 시대는 진정한 예외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3월호 통권76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