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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비극일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4월 말 현재 한국의 확진자는 1만 명이 넘으며 사망자도 250명 가까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확진자는 300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2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3월 초에 나사NASA가 발표한 것에 따르면, 초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중국의 경우 대기오염 정도가 전년도에 비해 10∼30% 정도 낮아졌다. 이는 산업 활동이 15∼40% 정도 감소하고 이에 따라 석탄과 석유 등 탄소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 결과다. 이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앞바다가 깨끗해져 돌고래가 돌아왔다거나 미국의 대도시에 코요테가 나타났다는 등의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오염에 기인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렇듯 재난은 고통이고 비극이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고통과 진전의 오랜 원천이었던 희망을 불러낸다. 하지만 그 희망이 근거를 가지려면 이 사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이 필요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이미 많은 사람이 예측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인지능력의 진화 등 복잡성을 추구하는 진화 전략을 택한 인간과 그 인간에 기생하면서 빠른 속도로 복제할 수 있기 위해 단순성을 추구하는 진화 전략을 택한 바이러스가 일대 격돌을 벌이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바이러스가 전적으로 유리한 형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인간의 생태적 영역 내에서는 지배적이지만 인간의 영역과 중첩되어 있으면서 전혀 다른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다른 수많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구 건강planetary health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의 창궐은 생물다양성을 파괴한 인간 활동의 결과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쾀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무를 베었다. 우리는 동물을 죽이거나 우리에 가두었고 시장에 보냈다. 우리는 생태계를 파괴했고, 우리는 바이러스들이 자연적 숙주에서 벗어나도록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보면 자연이 우리를 위협하는 원천이 아니라 진짜로 해를 끼치는 것은 인간의 행위일 것이다. 이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언제일지는 모르나 팬데믹이 확실히 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인간의 공통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인간 집단을 나누고 있는 다양한 분할선이 있고 이 선을 따라 이루어지는 차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공통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종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침투하고 있고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인식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설사 모두가 이런 인식을 지닌다 하더라도,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충돌 없이 미끄럽게 “뉴노멀”로 이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인식을 지니지 못하거나 그런 인식을 지녔음에도 이런 사태를 낳은 것은 바로 지배적인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적인 질서를 가리키는 이름은 그 질서의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 산업주의, 소비주의, 진보주의 등등. 그렇다면 그 반대편, 즉 인간의 공통성과 종들의 공생을 승인할 뿐만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질서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 이름을 붙이는 일은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자 주체를 부르는 일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이런 점에서 임시적인 이름일 것이고, 그다음 시대의 이름을 위한 쟁투가 벌어지는 이름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이 글은 『시대』 2020년 05월호 통권78호에 실린 ‘책 머리에‘이다.